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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63호-E. B. 타일러와 《원시문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2. 26. 18:56

                           E. B. 타일러와 《원시문화》


          news  letter No.563 2019/2/26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상상 따위를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곤 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글이 한 권으로 묶인 것을 우리는 책이라고 한다. 잘 만들어진 책은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책이란 것이 재미있는 까닭은, 저자와 그가 쓴 책 사이의 관계가 생각처럼 선명하지도 않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책(가령 말리노프스키의 책이라든지)의 경우에는 저자의 개성이 강렬히 느껴져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저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반면, 또 어떤 책을 읽을 때는 책 자체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그 세계를 창조한 저자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게 된다. 타일러의 책은(적어도 그의 대표작인 《원시문화》 만큼은) 단연코 후자에 속한다. 《원시문화》의 우리말 번역본 출간에 부쳐, 타일러라는 인물과 그가 쓴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볼까 한다.

◈ E. B. 타일러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는 영국 인류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타일러는 그의 이름이 인류학사나 종교학사의 첫 페이지에 반드시 등장할 만큼 후광을 가진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나 성격, 인품에 대한 것들은 -가령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신화를 구축한 말리노프스키와 대조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타일러는 1832년 10월 2일, 서리주(州) 캠버웰에서 태어났고, 그의 부모는 독실한 퀘이커 교도였다. 그는 토트넘의 퀘이커 학교에 다니다가, 부친이 운영하는 황동제조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16세에 돌아왔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았던 타일러는 당시 부유층의 관습에 따라 요양을 위한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특히 1855년에 그는 아메리카로 여행을 떠났는데, 거기서 그의 삶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곧, 그는 쿠바의 하바나에서 퀘이커 교도이자 고고학자인 헨리 크리스티(Henry Christy, 1810~1865)를 만나서 선사시대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1856년에 그의 멕시코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멕시코에서 현지인들의 관습과 신념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생겨난 민족지적 관심은 좀 더 정교한 민족학적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타일러는 흔히 ‘안락의자 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연구의 주된 관심과 문제의식은 아메리카에서의 현지조사 경험과 밀접히 결합되어 있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타일러는 런던 민족학회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서른이 되기 전에 첫 번째 저작인 《아나우악: 혹은 멕시코와 멕시코인들, 고대와 현대 (Anahuac: Or Mexico and the Mexicans, Ancient and Modern)》(1861)를 발표하였다. 비록 대학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이후 타일러는 현존하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부족 공동체들의 관습과 신앙을 계속해서 연구하였고, 몇 년 뒤 자신의 본격적인 첫 번째 인류학 저서인 《인류의 초기 역사와 문명의 발달에 대한 연구 (Researches into the Early History of Mankind and the Development of Civilization)》(1865)를 출판했다. 그리고 6년 뒤에는 자신의 대표작이자 인류문명에 관한 기념비적인 저작인, 두 권으로 된 《원시 문화 : 신화, 철학, 종교, 언어, 기술 그리고 관습의 발달에 관한 연구 (Primitive Culture : Researches into the Development of Mythology, Philosophy, Religion, Language, Art, and Custom)》(1871)를 출판함으로써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어 놓았다. 

◈ 《원시문화》라는 책

     타일러의 모든 저술 중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원시문화》로서, 19세기에 나온 그 책은 오늘날까지 인류학 뿐 아니라 종교학, 신화학, 심리학, 철학 등의 인접학문 분야까지 아우르는 기념비적인 저서로 남아있다. 이 책에서 타일러는 자연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사유와 행동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원시문화》의 1권에서는 문화과학이 분야별로 다루어지고, 2권에서는 종교과학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타일러는 인류 문화의 역사적 발달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은 종교라고 보았다. 그렇지만 당대의 종교 이해만큼은 중세적 유형에 머물러 있다고 보았고, 특히 자기 종교의 교리를 중심으로 모든 종교현상을 바라보고 신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해온 신학자들의 편협한 시선에서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 신학적 입장을 배제하고, 민족지적 시각에서 종교 문화를 검토하는 가운데 타일러는 “애니미즘”, 곧 영혼과 일반적 영적 존재에 관한 교리의 발달에 관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게 된다. 

    《원시문화》를 찬찬히 읽어 보면, 타일러는 거의 ‘잡학사전’이라 말해도 될 만큼 동서고금의 온갖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관한 지식을 ‘덕후’적인 규모로 보유하고 있을뿐더러, 그러한 잡다한 지식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방대한 스케일의 통합적 이론으로 엮어내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컨대, 이 책은 오랫동안 찾는 이가 없어서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인 보물창고와 같다. 다루는 이의 손길에 따라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타일러는 이 책에서 당대에 구할 수 있는 동서고금의 방대한 자료들을 거의 백과사전급으로 수집해서 주제별로 제시하고 있기에, 언급된 사례들을 좇아가기만 해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재채기와 관련된 관용구나 축배를 들 때 사용하는 문구를 다룬 부분, 세계 각지의 수수께끼를 소개한 대목들은 그냥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인류가 유령의 목소리를 일종의 ‘지저귐(twitter)’으로 상상해왔다는 것은 트위터를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에게 새삼 재미있는 정보이다. 당시 타일러가 공자(孔子)에 대해 보이는 일종의 편견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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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여, 타일러가 집필한 《원시문화》의 원서는 영어권 독자에게도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이 책에는 라틴어, 그리스어 뿐 아니라 중세독일어, 중세영어, 로망스어, 중세 유럽 각지의 각종 방언들을 비롯한 온갖 낯선 언어들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대로 본문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까닭에, 이 책의 번역은 어둑한 길을 더듬어 가듯 어려운 작업이었다. 마침내 이 책이 -여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말로 번역되어 세상에 나왔다. 이제 보물창고로 가는 징검돌이 놓인 셈이다. 맑은 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보물을 발견하고, 또 그것으로 나름의 작품을 빚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유기쁨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등이 있고, 역서로《원시문화 1권, 2권》(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아카넷, 2018),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권~3권》(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아카넷, 2012), 《문화로 본 종교학》(맬러리 나이, 논형,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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