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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속에 우주를 넣다: 한국의 불복장(佛腹藏)

 

 

news  letter No.571 2019/4/23       

 

 

 

 


필자가 불상 안에 여러 물목(物目)을 봉안하는 불복장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물질종교’의 시각에서 불교의 물질적 토대에 초점을 맞추면서 부처의 사리, 즉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연구주제로 택하면서부터이다. 왜냐면 사리는 탑을 세워 모시는 것만이 아니라 불경이나 불화•불상 안에도 봉안되었기 때문이다. 불상 안에 사리를 안치한 시기도 일러, 간다라 불상 가운데 정수리 부분에 홈을 판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사리나 그 대체물로 보주(寶珠)를 봉안한 것으로 추정하며, 3~4세기경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 조성된 일련의 불상 정수리에서 사리봉안 장치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후 점차 불상의 몸체 내부에 사리를 비롯한 다양한 물목을 납입(納入)하기 시작하는데, 가장 이른 시기의 불복장으로 4~6세기경에 조성된 아프가니스탄 석불에서 사리, 직물, 경전 등이 발견된 것이다. 중국 당나라 때에는 불상 안에 사리가 아닌 여러 공양물을 납입하였고, 9세기가 되면 비단으로 오장육부의 모양을 만들어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등 각 장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사리, 옥, 향 등의 물목을 넣게 된다. 일본에서도 10세기 말 불상 안에 물목을 납입하는 전통이 형성되고, 한국에서도 불복장이 고려 시대부터 본격화되면서, 10세기 무렵 동북아에서는 불복장이 널리 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의식으로서 불복장이 거의 사라지고, 대신 불상의 점안과 개안이 행해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독자적인 불복장 의식을 발전시켜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불복장 의식은 불상의 내부를 채우는 복장의식과 점안의식으로 구성되며, 현재와 같이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한 데는 《조상경》(造像經)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조상경》은 조선시대 불상 복장이 보편화되면서, 1500년대 우리나라에서 성립된 것으로 여러 경전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편집한 의식집이다. 무엇보다 《조상경》은 밀교 경전을 바탕으로 하기에, 복장 의식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오방(五方), 오색(五色), 오불(五佛), 후령통(喉鈴筒) 등은 밀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다. 불복장에는 많은 물목이 들어가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 혹은 오장(五臟)에 해당하는 후령통으로 이를 조성하는 과정이 의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장 의식은 장시간이 소요되는 매우 복잡한 의례로 여기서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간략히 기술하고자 한다.

5명의 법사가 오방(동서남북 사방과 중앙)에 각자의 자리를 잡으면 의식문 염송과 함께 먼저 후령통에 들어갈 오보병(五寶甁)을 조성한다. 오보병은 금속, 비단 등으로 만드는 5개의 통으로, 이 안에는 오곡(五穀), 오보(五寶), 오약(五藥), 오향(五香), 오개자(五芥子) 등 13가지의 물목이 오방의 색깔에 따라 안치된다. 다음은 오보병과 여러 물목을 넣어 후령통을 조성하는 과정으로, 후령통은 원통이나 방형으로 만들어서 뚜껑 위로 후혈(喉穴)을 뚫으며, 마치 목구멍에서 방울 소리가 울리듯 법음(法音)이 흘러나온다는 뜻에서 ‘후령통’이라 불린다. 후령통 속에 오보병을 넣고 그 위에 사리함 등을 올린 후 오보병을 감싼 오색실을 후령통 뚜껑의 후혈을 통해 바깥으로 빼낸 후 뚜껑을 덮는다. 이후 5개의 거울을 각 방위에 맞추어 후령통 외부에 배치하고 후혈에서 나온 오색실로 각각 고정한다. 여기서 오경(五鏡)은 5가지 지혜[五智] -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 방편구경지(方便究竟智) - 를 뜻하며 각각 색, 방향, (방위에 따른) 모양 - 방형, 삼각형, 원형, 반월형, 원형 – 이 정해져 있다. 마지막 과정으로 황색 비단으로 만든 황초복자(黃綃幅子) 위에 발원문과 다라니를 놓고, 그 위에 땅을 상징하는 열금강지방도(列金剛地方圖)를 놓은 다음, 그 위에 조성한 후령통을 안치하고, 후령통 위에는 팔엽대홍련도(八葉大紅蓮之圖)와 천원도(天圓圖)를 놓은 다음 비단 보자기로 묶고 후혈로 나온 오색실을 보자기 매듭 밖으로 빼낸 뒤 몸통을 가로세로 교차하여 엮어 마무리한다. 완성된 후령통은 단에 올려놓고 부동존진언(不動尊眞言)과 알가공양(閼伽供養)을 마친 후 불상의 배꼽 가운데에 안치하고 불상 내부에 각종 경전과 다라니 등을 모신 후 복장 의식을 마친다. 이후 불상은 점안의식을 봉행한 뒤 불단 위에 부처님으로 모신다.

위의 의식절차에서 보듯이 불복장은 밀교에서 말하는 세상을 구성하는 5가지 (비물질적) 원리와 매우 구체적이고 다채로운 물목으로 구성된다. 강희정에 의하면 후령통은 후기 밀교 금강계 오방불(五方佛)의 철학체계를 함축하여 구체화하고 있다. 즉 후령통은 불교의 법계, 혹은 불교의 세계관을 구현한 우주의 축소본으로, 이를 불상의 뱃속에 안치함으로써 불상은 우주를 품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불상 자체가 소우주가 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불복장 연구는 최근 들어 매우 활발하며, 불교미 (사) 전공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불복장이 단지 물질인 부처의 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식으로 불상이 단순한 조각이 아닌 생명체임을 상징한다며, 이를 통해 불상은 진정한 신앙과 경배의 대상이 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북볼장은 불상 속에 진신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불상이 진짜 부처로 화할 수 있다고 믿는 생신사상(生身思想)과 같은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에게 드는 의문은 왜 개안•점안 의식만으로는 이러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정교하고 복잡한 불복장 의식을 발전시켰는가이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밀교의 영향을 물론이고, 복장물은 반드시 시주로 채워야 한다는 경전의 가르침에 따라 신도들이 각자의 여건에 맞춰 물목을 보시하거나 사경에 참여함으로써 다양하게 공덕을 쌓을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불복장을 통해 부처(불상)의 영험함을 확실히 하려는 욕망 등등. 무엇보다 억불정첵이 가장 강하게 추진되었던 조선시대에 불복장 의식이 가장 활발하게 행해졌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불복장 의식은 근래 들어 불교무형문화유산 혹은 한국전통문화유산으로 재평가되면서, 점점 많은 사찰이 이 의식을 공개적으로 봉행하면서 불자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또한, 사찰 밖의 장소에서 시연회도 열리면서 불복장은 퍼포먼스로 관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 예로 2014년 7월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에서 불복장 의식 시연회가 열렸는데, 한 기사(《불교신문》 2014.7.21.)에 의하면, ‘불교종합예술’이 펼쳐진 동안 300명 ‘관객’들이 숨죽여 무대에 집중했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의식 과정은 전문가 해설도 곁들여졌다고 한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그간 발굴된 유물을 보더라도 옷가지와 같은 매우 사적이고 세속적인 물품들이 복장물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2008년 5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모신 법보전에서 거행된 석가모니불 불복장 의식을 보더라도 복장물로 각종 성보를 비롯하여 팔만대장경연구원 데이터 CD와 종정 스님과 총무원장 스님의 장삼도 봉납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복장물은 미래로 가는 타임캡슐이기도 하다.

필자는 지난 2017년 8월 이화여대에서 불복장과 관련하여 “Consecreating the Buddha: On the Practice of Interring Object in Buddhist Statues”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바 있다. 이 학술대회에는 필자 외에 다른 종교학자는 참가하지 않은 듯했고, 필자는 이렇게 흥미로운 주제에 종교학자들이 왜 관심이 없을까 한동안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학문적 분업에 서서히 맥이 빠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 학술대회 분위기는 매우 활기찼고 불복장 연구는 무엇보다 진보된 기술 덕분에 불상을 훼손하지 않고 내부를 자세히 촬영할 수 있게 됨으로써 크게 고무된 듯하였으며, 외국 학자들은 연이어 많은 관련 사진을 스크린에 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불복장을 공부하면서 이를 전형적인 감춤의 종교성으로 보았던 필자는 현대에 이런 도식이 과연 성립할까 하는 회의가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불복장은 물질이 신성이 되는 의식일까? 아니면 신성이 물질이 되는 의식일까? 여러 질문을 던지는 불복장은 한동안 필자를 잡고 있을 것 같다.

* 끝으로 본 글의 내용은 불복장 관련 선행연구(강희정, 구미래, 이선용, 이승혜 등)에 많은 부분을 의지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현대사회에서 성물(聖物)의 유통방식에 대하여: 부처의 진신사리를 중심으로>, <성물(聖物), 전시물, 상품: 진신사리의 현대적 변용에 대하여>,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종교현상>, <현 한국사회에서 합동천도재의 복합적 기능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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