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156호-정교분리의 현실을 다시 물음: 한중일 삼국의 종교정책(류성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5. 18. 15:53

정교분리의 현실을 다시 물음: 한중일 삼국의 종교정책

2011.5.3

1. 정교의 분리는 종교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적인 근거로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명문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에서처럼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제20조 ①)고 명백히 명문화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국가에 의한 종교차별이나 종교의 정치 관여를 제한하는 규정으로 정교분리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러 나라에서 정치 혹은 국가와 종교의 관계는 불가근(不可近)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불가분(不可分)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조하면서도 정부 기구에 종교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두고 있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종교정책이 거론되고 종교행정이 중요한 정부의 역할이 되는 것도 이 세 나라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다. 국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종교정책을 입안하여 실행하고 종교행정을 정부의 역할로 수용한다는 것 자체가 정교분리라는 고전적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분명하며,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해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종교편향이나 종교차별 문제가 불거진 것도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애매한 이해의 결과는 아닌지 자문해본다. 공직자나 공공기관이 공무와 관련하여 특정 종교에 편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공개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나 종교계에서 그러한 사례를 문제화하고 공직자 종교차별 예방교육을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게 된 것도 역시 정교의 분리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 하겠다. 말하자면 종교 신앙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자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에 국가와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러한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정교분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단지 종교 신앙의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만을 충족할 뿐이라는 것이다. 다종교사회가 불가피한 현실에서 종교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국가가 종교들에 대해 공정하고 공평한 중립적 입장에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종교생활을 용이하게 하고 종교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시 국가가 종교정책을 입안하여야 하고 적극적으로 그 정책들을 추진해야 하는 것인가? 종교와 국가는 정교분리가 아닌 다른, 새로운 관계 설정을 해야 하는 것인가?


2.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면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종교 업무 관련 정부 부서들이 있고 다종교 사회의 현실이 뚜렷이 나타나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아마도 중국은 한중일 삼국 가운데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철저한 종교정책을 추진하는 나라이다. 헌법이나 형법, 민법 등 주요 법령 외에 ‘종교사무조례’와 같은 행정법규, 지방성 법규, 규장(規章) 등 종교관련 각종 법령을 제정하여 이른바 ‘법제화’를 완비하여 왔다. 또한 이러한 법령을 집행하고 종교관련 행정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으로서 국무원 산하의 직속기관인 ‘국가종교사무국’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국가종교사무국’은 종교별로 업무가 분장된 각 부서 외에 종교연구와 정책 입안, 종교업무 담당자 양성, 각종 출판사업 등을 담당하는 직속기구들까지 총 망라된 거대한 국가 기관이며, 성자치구직할시마다 하부 연관 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또 그 하위 행정기관에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구들이 있다. 또한 국무원의 공안부와 당위원회의 통일전선 공작부분에도 종교 관련 담당자들이 있다. 요컨대 중국은 법제화를 통해 모든 종교 활동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면서 사회주의 체제에 종교를 적응시키기 위한 종교정책을 국가적 차원에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사실상 중국에서는 고전적 의미의 정교분리는 무색하다.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일본에도 ‘종교법인법’이라는 종교관련 법이 있고, 문부과학성 문화청 문화부 산하에 종교업무를 담당하는 종무과가 있으며 도도부현(都道府縣)에도 각각 종교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지정되어 있다. 일본의 종교관련 정부 부서는 ‘종교법인법’에 의거하여 종교법인제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동시에 그러한 운영과 관리를 위해 종교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종교연감을 발행하며 종교법인에 대한 심사 업무도 담당한다. 일본인 대다수가 특정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있고 심지어 여러 종교단체 중복 소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단체들이 단위 종교법인이든 포괄 종교법인이든 간에 법인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 대다수의 종교 활동이 국가의 조사망에 포착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관할 종교관련 부서는 ‘종교법인법’에 의거하여 종교법인에 대한 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종교법인에 대한 해산 명령도 가능하기 때문에 종교단체에 대한 국가의 감시와 감독이 가능하다. 결국 일본도 정교분리의 원칙은 명목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종교 활동에 관련된 독립된 법률이 없다. 물론 ‘전통사찰보존법’과 ‘향교재산법’이 있지만 그것들은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를 위한 법이지 종교활동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중국과 일본과 마찬가지로 종교 관련 행정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가 있다. 일부 시도 지방자치단체에도 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최근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없는 곳에서는 유관 부서에서 위임하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968년에 과(課) 단위의 독립부서로 출발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종무실은 수차례 개편을 거듭하여 10여 명의 소규모 실로서 유지되고 있다. 명시적인 종무실의 역할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종교행정 수행이지만 “건전한 종교문화를 정착시키고 종교가 지닌 본연의 사회적 역할을 다 하도록 종교의 긍정적 기능을 극대화하고 부정적 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구체화된 종무행정은 국가사회발전, 국민화합, 통일기반조성과 같은 활동에 종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요컨대 종교들이 우리 사회에서 순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무실의 인력이나 예산의 대부분이 그러한 지원에 투여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중국이나 일본과는 그 강도와 양태가 다를지라도 원칙적인 정교분리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3. 적어도 한중일 삼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확립된 정교분리의 원칙은 유명무실하다. 국가가 직접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든 간접적으로 감독하고 감시하든, 아니면 행정과 재정으로 지원하든 간에 국가가 종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교분리의 원칙은 재고되어야 하고 반성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한국종교학회는 금년(2011년) 상반기 학술대회를 “한중일 삼국의 종교정책”을 주제로 중국과 일본의 저명학자를 초청, 국제학술대회로 개최하기로 했다. 각국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과 현실을 바탕으로 종교정책을 주제로 한 정교분리의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심 있는 학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모든 분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종교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고, 특히 정부의 종교편향이나 종교차별이 여론의 지탄이 되고 있는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금번 학술회의는 의미 있는 모임이 될 것이라고 본다. 국가에 의해 종교정책이 추진되어야 하는가? 추진된다면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의 종교정책 혹은 종교행정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중국과 일본의 종교정책에서 어떤 시사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모든 물음을 함께 논의하는 장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류성민_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 한국종교학회 회장
sungmin@hs.ac.kr
위 글과 관련된 논문으로는 <한중일 삼국의 종교정책 비교>, <한미일 삼국의 종교정책과 종교교육 비교>, <중국 종교학의 현재와 미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