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80호-지령 16호를 맞이하여(이욱)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5. 15:38

지령 16호를 맞이하여




*이글은 <종교문화비평>16호(9월30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

2009.11.17



“종교와 인권”, “종교와 신자유주의”, “종교학과 인지과학의 만남”, “종교, 정치, 권력” 등은 최근 2년 동안 <<종교문화비평>>에서 특집으로 삼았던 제목들이다. 이러한 주제들은 종교를 당대의 사회문화 속에서 고찰하고 인접 학문과의 끊임없는 연대를 통해 종교학의 학문 방법과 비평의 지평을 넓히려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지난 연속된 주제들에 비하면 이번 16호의 특집 주제는 매우 ‘종교적’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죽음의례”라는 너무나 정직하면서도 수줍게 내미는 제목이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준다. 죽음을 논의할 때면 이것이 종교학의 주제인지를 굳이 묻지 않아도 된다.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제공해주길 바라는 타자의 기대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런 주제를 버려두고 자유, 과학, 정치 등을 논의하는 것은 종교학 본연의 의무를 외면하고 외도하는 것 같다.

최근 우리 사회에 ‘죽음’은 매우 민감한 화두이다. 더욱이 그 죽음이 많은 경우 ‘자살’로 인한 것이기에 더욱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다. 두렵지 않은 죽음이란 찾기 어렵지만 죽음으로 내몰아가는 현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번 특집호에 실린 죽음 이야기는 매스컴을 통해서 연일 쏟아지는 죽음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죽음의례를 다루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최대의 장례식이었던 국장 또는 국민장 같은 높은 사람을 위한 의례가 아니라 일상적인 사람들이 치르는 관습적인 장례를 다루었다. 기조발제를 포함하여 전체 7편의 논문을 모은 특집원고는 한국 전통 죽음의례, 불교의 죽음의례, 한국 기독교의 죽음의례, 병원의 장례식장화, 상조회사의 등장, 천도재 등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다.

이번 특집은, 각 종교들의 죽음관이나 의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 각 종교들도 피할 수 없는 장례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근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사회로부터 기는 도망자 신세였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늘 붙어있지만 죽음은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자신을 숨겨야 했다. 삼년의 긴 상기(喪期)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집이나 마을, 내 이웃에서 벌어지는 장례식의 풍경은 사라지고, 상여를 맬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언덕에 떼를 입힌 봉분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국전통 죽음의례의 변화>는 잊어버린 죽음의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유교와 무속, 정상적인 죽음과 비정상적인 죽음이 보여주는 의례의 차이를 고찰하고, 전혀 이질적인 것 같은 유교와 무속의 공존을 통해 죽음의례의 복합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 죽음의례가 단순화되고, 소략화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죽음의례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펼칠 장을 마련해주었다.

근대 이후 죽음의례의 변화는 종교 전통과 그 밖에서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한국 기독교 죽음의례의 변화양상>은 근대 이후 서구 기독교가 한국의 전통 문화를 만나면서 나타나는 의례의 변용을 고찰하였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구분하여 서술함으로써 기독교 내 두 공동체의 차이를 읽어낼 수 있으며, 전통적 양식의 축소나 변형 뿐 아니라 전통적 기본틀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기독교의 옷만 갈아입은 변용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최근 한국사회에 죽음의례와 관련되어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종교는 불교이다. 전통 종교 중 하나라는 장점 외에도 종교전문가가 뚜렷이 존재하고, 죽은자를 위한 다양한 의례들을 자산으로 간직한 불교는 죽음을 매개로 대중과의 만남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데 <불교 죽음의례의 유형과 변화양상>은 이러한 모습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리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죽음의례 중 하나로 낙태아 천도재를 다룬 <천도재의 새로운 양태: 낙태아를 위한 천도재>에서는 일본문화와 한국문화의 차이, 사령신앙과 신자유주의를 만날 수 있다.

죽음의례는 매우 종교적인 현상 중 하나지만 근대 이후 이미 종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변용되었다. 그러한 모습의 첫 번째가 “병원의 장례식장화”이다. 이미 일상적인 것으로 되어 전혀 낯설지 않은 병원의 영안실과 장례 풍경은 현대 한국사회 죽음의례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병원의 장례식장화와 그 사회적 맥락 및 효과>는 주거 환경의 변화, 정부의 정책, 병원이 지닌 위생의 마력 등이 만들어낸 “임종의 병원화” 현상을 고찰하고, 그 이면에 있는 병원의 이윤 극대화와 현대 문화의 편리함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상조회사의 등장과 죽음의례의 산업화>는 장례공간을 벗어나 죽음 ‘의례’ 그 자체가 상품화되고 전문화는 현상을 다루었다. 상조회사의 출현에는 공간의 선점과 독점을 통해 이루어진 병원 주도 장례 문화에 대한 저항이 깔려있다. 의례의 회복을 통해 소외된 죽음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의례가 종교적 신앙과 무관한 서비스로 통용되고 있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종교 조직이 관여하는 상조회사도 있지만 대부분 종교와 무관한 기업이 고객의 신앙에 맞추어 의례를 준비한다. 마치 상품을 개발하는 것처럼 대중의 취향에 맞는 의례를 개발한다. 대중들은 의례의 세련됨과 고급화에 반하고, 유명인이 했던 의례라는 자부심에 만족하면서 의례를 소비한다.

현대 사회에서 의례의 상품화는 비단 죽음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결혼식에서 볼 수 있듯이 의례는 이벤트화되고 소비되고 있다. 종교 현상의 대표적인 세 요소인 신화, 의례, 공동체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진행되던 전통의 종교 모습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의례는 의례대로, 신화는 신화대로 성장하고 발전한다. 삶의 현실이 신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시장이 신화를 원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대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전통 종교의 신화와 의례가 복원되고 있다. 복원의 사실성을 새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종교문화현상 속에서 가려진 종교 인식을 밝혀내고 인간다움을 실현하기 위한 지속적인 관찰과 비평일 것이다.

이러한 비평의 가능성을 특집의 원고 뿐 아니라 연구논문을 비롯한 다른 원고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번호에 실린 연구논문과 서평, 기행, 설림의 글 역시 고전적인 종교학의 주제인 의례와 신화이다. <통과의례와 젠더>가 고전적 통과의례에 관한 주요 이론과 이에 관한 비판과 새로운 지평을 젠더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시키고 있다. 한편, 신화에 대한 세 권의 책을 소개하며 현대 신화학의 흐름과 과제를 보여준 비평은 이미 비대해져 독립된 집을 꾸민 신화학에 대한 잔잔한 반성을 도와준다. <종교와 이미지>는 만화 속 이미지와 텍스트의 분석을 통해 역사와 신화의 만남과 변용을 다루었다. 한편, 설림에서는 클림트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그림 속 신화와 일본 문화 그리고 한국문화를 엿볼 수 있어 깊어가는 가을날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제 종교문화와 사회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창이 되려는 <<종교문화비평>>의 바람은 독자들의 관심과 질책 속에서 실현되리라 여기며 조심스럽게 16호를 여러분께 내밀어 본다.

이욱_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편집위원
leewk99@paran.com
주요 논문으로 <대한제국기 환구제에 관한 연구>, <조선후기 전쟁의 기억과 대보단 제향> 등이 있고, 저서로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한국종교교단연구 IV>>(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