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68호-정치적 메시아와 정치적 지도자(심형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5. 14:48
정치적 메시아와 정치적 지도자
2009.8.25
메시아, 제법 우리에게 익숙해진 기독교의 개념이지만 낯간지러운 면이 없지 않다. 특히 현실 정치의 지도자를 상상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소위 ‘-빠’의 출현이 정치의 장에서 나타날 때, 곁들여지는 여러 부정적 술어 ‘포퓰리즘’, ‘파시즘’, ‘중우정치’ 등등이 그 긍정적이고 설레게 하는 용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분명, 20세기 후반 한국이라는 나라의 근대화와 함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세계에 대한 희구는 긴 군부 정권의 억압적인 지배체제 덕분에 충분히 집단의 열망이 되었다. 공포와 불안에서 자유롭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근대적 한국인이 생존 본능에 입각한 상상을 ‘정치운동’을 통해서 현실화시키려 했다는 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이자 선배들의 생존 투쟁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러한 상상력은 현실적이었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박정희와 박빙으로 대결했던 40대의, 말은 유창하지만 발음은 우스꽝스러운 전라도의 중년 남성 정치인. 다시 대통령이 되면 종신 총통제로 정체를 바꿀 것이란 점을 힘주어 지적하는 얼굴이 달아 오른 젊은 정치인에게 암울한 군부 통치의 그림자에 짓눌린 사람들이 묘한 그리고 신비로운 상상을 덧붙이는 것은 그리 낯간지러운 일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선출되었던 92년 대선 당시 북한의 김일성이 가장 두려워하는 남한의 정치인이 김대중이라는 소문을 들은 바 있다. 나름대로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영웅성’을 강조한 표현이었다.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가 비약되어 그런 소문으로 어린 아이에게까지 풍문이 전해졌다.
자신의 정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JP와 정치적 연합을 해서 끝끝내 대통령이 되었다. IMF라는 큰 산이 가로 막고 있는 시기였다. 욕심이 과한 노인네라는 욕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거기에 머물러 있기에는 그 시대가 또 고난의 시대였다. 대통령으로서 그가 이끌었던 대한민국이 나름대로 경제 위기도 이겨냈으며, 평화 정착의 기틀도 만들어졌다. 그는 이러한 현실적인 큰 이정표를 남겼다. 아마 모든 국민이 기억하는 그의 치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빛과 그늘이 있다. 그늘은 카드대란과 대북비밀송금 특검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단골 비판 메뉴가 등장했다. 정치 지도자로서 실패했다는 것. 노벨 평화상도 돈 주고 산 것이라는 비난까지. 아마 그가 가지고 있던 ‘메시아’ 이미지가 깨져 버렸던 탓일 게다. 그러나 그의 치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 이후 국장이 어렵사리 결정이 되긴 했지만, 정치 지도자로서 한국에서 그만큼 그나마 오점이 적은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 편견이겠지만, 언론에서 그의 죽음을 평가한 내용들을 보면, ‘그래도 역시’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사적인 평가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 후광을 선사했던 시대감각이 낳은 꿈은 산산이 깨졌다. 그는 소외된 계층이 살맛나는 세계를 열어내지 못했으며, 어느 정도 자유의 길을 열어 놓았지만, 권위적인 정치권력의 폐해를 종식시키지 못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과도한 경기부양을 시도했으며, 부동산 투기 문제는 그의 집권기에 더욱 심화되었다. 이상적인 평가의 자로 재단할 때, 그도 그다지 성공한 대통령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격’을 맞추기 시작할 때, 메시아로서 평가되기 보다는 정치 지도자로서 현실적인 평가가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욕과 찬사는 공존할 것이란 것도 명확하다. 두 가지 진실이 현실의 장에서 혼란스럽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론적으로도 그러하며 정치 역학적으로도 그러하다. 우리의 시선도 혼란스럽지만, 정치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필사적으로 혼란을 유도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위대한 정치 영웅‘들’의 죽음은 분명 우리의 삶을 그려내는 꿈과 살아냈던 현실의 두 인식 논리를 아주 잠깐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혼란스럽게 한국인의 입을 지배하고 있으며 지배하게 될 것이다. 각자의 현실감각에 따라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고스트에 들리는 속삭임은 아마 다른 현실감각이 만드는 진실‘들’이 복잡하게 짜여 들어가는 짜임새의 지도를 볼 수 있지도 않은가 하는 희망이 될지도 모르겠다.
심형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회원 zeekfrid@gmail.com
서울대 박사과정. <종교 개념의 적용과 해석에 대한 연구>라는 석사학위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