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호-종교-과학-미신의 3분법과 종교의 자유(이진구)
종교-과학-미신의 3분법과 종교의 자유
2013.4.2
1860년대 후반 대부분의 일본인은 천황(天皇, 텐노), 우두천왕(牛頭天王, 고주텐노), 사천왕(四天王, 시-텐노)을 서로 비슷한 종류의 초자연적 존재들로 간주했고 실제로 이 용어(텐노)들은 혼용되었다. 그런데 메이지헌법(1889)이 제정되면서 이 세 텐노의 운명은 결정적으로 달라졌다. 천황은 역사적 존재, 우두천왕은 허구적 존재, 사천왕은 ‘종교적’ 존재로 각각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일본 천황의 신성한 기원과 계보에 대한 믿음은 법령으로 ‘강제’되었고, 우두천왕에 대한 믿음은 ‘금지’되었고, 사천왕에 대한 믿음은 개인의 ‘선택’에 맡겨졌다. 하루아침에 천황은 국가적 충성의 대상, 우두천왕은 미신타파의 대상, 사천왕은 개인적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는 일본종교의 ‘탄생(발명)’과 ‘종교자유’에 대해 다시 상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로 보인다.
그 동안 일본 근대종교사는 ‘국가신도체체’의 형성과 해체라는 관점에서 주로 연구되어 왔는데 이 틀을 따르게 되면 일본 근대종교사 연구는 ‘신사비종교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즉 메이지 정부가 신도(神道)를 종교의 범주에서 제외시킨 다음 그것을 모든 종교 위에 군림시키는 방식으로 종교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일본 근대의 종교자유는 심각하게 제약되고 정교분리원칙도 온전하게 실현되지 않았다는 비판적 논의가 주조를 이루었다. 이러한 방식의 연구는 종교-세속의 이분법에 근거한 ‘국가와 종교’ 혹은 ‘정치와 종교’라는 주제 하에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본 근현대 종교사에 대한 연구 특히 종교자유에 대한 연구는 종교-세속-미신의 삼분법을 취할 때 좀더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종교-세속의 이분법에 근거한 종교자유 연구는 공사이분법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서구 근대의 공사이분법에 의하면 국가는 공적 영역을 관할하고 종교는 사적 영역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서구 근대성 하에서 종교의 자유는 사적 차원 즉 개인 내면 차원(양심)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는 종교가 공적 차원으로 진입할 경우 엄격한 통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와 반대로 사적 차원에 머물 경우 무한정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념(belief)-행위(practice)의 이분법과 맞닿아 있는데 이러한 분류법에 의하면 어떤 것을 믿어도(belief) 좋지만 그것을 외적으로 표현할 때(practice)에는 통제를 받아야 된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외적 행위의 통제 측면이 아니라 내적 신념의 자유 문제이다. 공사이분법과 신념-행위 이분법을 토대로 하는 종교-세속 이분법에 의하면 근대 세속국가의 시민은 적어도 내적 신념의 차원에서는 국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우리가 종교-세속 이분법을 넘어 종교-세속-미신의 삼분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 세속국가는 ‘종교의 자유’ 혹은 ‘신앙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사적 영역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믿어야 되는 것’과 ‘믿어도 되는 것’, 그리고 ‘믿어서는 안되는 것’을 국가가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국가는 믿어야 되는 것(fact)은 ‘과학’, 믿어서는 안되는 것(delusion)은 미신, 믿어도 되는 것(faith)은 ‘종교’에 배치하면서 이미 개인의 내면세계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우두천왕은 믿어서는 안되고 사천왕은 믿어도 되는 세계가 근대국가인 것이다. 근대사회에서 ‘미신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우두천황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개인은 근대국가가 설정한 테두리 안에서만 ‘행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고할’ 수 있다. 이는 서구 근대의 종교-세속-미신 3분법에 따른 ‘종교의 발명’이 무엇을 의미하며 근대 세속국가 체제하에서 종교의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다시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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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3년 3월 16일(토) 한종연 집담회에서 다룬 Jason Ananda Josephson, <
이진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실장
jilee80@dreamwiz.com
최근논문으로 <최근 한국사회의 안티기독교 운동과 기독교의 대응양상>, <한국 종교사의 자리에서 본 기독교계 신종교>,<종교 근본주의의 진상과 폐해>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