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265호-불교학의 정체성과 종교학, 그리고 ‘라이프 오브 파이’(송현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3. 7. 11. 17:56

         불교학의 정체성과 종교학,

                                        그리고‘라이프 오브 파이’

                                                                                                            2013.6.4


 

 

지난 5월 25일 2013년 불교학연구회 춘계학술대회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연강홀에서 열렸다. 불교학연구회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이 학회에서는 “불교학의 첨단연구”라는 주제 하에 다섯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다섯 편의 논문은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구분이 가능했다. 앞의 세 편은 전통적으로 ‘불교학(佛敎學)’이라고 불러온 전형적인 논문들로 능가경과 같은 불교경전이나 원효의 논소의 주요개념, 그리고 중국선사의 사상을 조명하는 것이었다. 반면 후반부의 두 편은 앞의 논문들보다 큰 관점에서 근대불교의 특정한 주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한국불교학의 학문적 성격과 위상에 대한 분석적 성찰이었다.

 

<일본 불교는 정체성의 위기를 넘어 섰나>

 

각각의 발표에는 지정된 논평과 청중들의 질의응답이 뒤따르며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데, 필자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후반부 두 편의 논문이었다. 〈일본 근대불교계의 전쟁에 대한 인식 연구-『선과 전쟁』과 市川白弦의 논의를 중심으로〉에서 발표자 이태승 교수(위덕대)는 일본불교가 메이지 유신 이후 폐불훼석의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오늘날과 같은 수준 높은 불교학을 전개하게 된 배경에 기본적 관심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사회가 국가신도를 바탕으로 군국주의의 전쟁의 길에 접어들었을 때 인륜의 보편적 정신체계를 지향하던 일본의 불교계는 어떤 입장을 취하였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이 출발했다고 하였다.

 

논문은 브라이언 빅토리아의 저서 『선과 전쟁(Zen and War)』(1997)을 주요 자료로 삼았다. 빅토리아는 양심적 징병기피자이자 미국인 선교사로서 1961년 일본에 들어와 일본 조동종의 승려로 생활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선종간의 관계에 대한 자료를 모아 연구하였다. 이 저서는 2001년 일본어 번역판이 나오면서 일본 불교계의 전쟁책임론 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그보다 앞서 이 문제를 거론한 이치가와 하쿠겐(市川白弦, 1902-1986)은 빅토리아의 저술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빅토리아는 불교를 전쟁이나 정치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서양인의 일반적 불교인식에 대해 실제 불교는 정치나 군국주의에 동조하거나 협력한 점이 있었음을 밝히고자 했다고 한다. 일본의 근대불교는 국가불교, 황도불교로서 천황제에 근거한 군국주의에 적극 협력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논평자 허우성 교수(경희대)는 “제국주의 시대에 종교인들에게 보편주의 실천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하였으며, 청중 가운데서는 “메이지 시기 일본불교는 현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보다 자기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문헌학에 치중했던 것”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였다. 또한 “아직 일본불교가 한국 침략의 첨병 역할을 한 것에 대한 반성이 충분하지 않다”거나 한국불교계의 일본불교에 대한 인식이 보다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한국불교학의 위기, 원인은 무엇인가>

 

한편, 마지막 발표였던 〈국내 불교학계의 구성적 특징과 연구 현황〉에서 박재현 교수(동명대학교)는 한국의 불교관련 학계의 인적 구성현황과 불교학의 학문적 위상 및 관련 학술지의 영향력 분석을 통해 한국 불교학계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그는 근대 이후 한국의 불교학 연구는 많은 발전을 했지만, 내부의 학문적 성숙도나 인문학 보편의 의제 설정 과정에 얼마나 기여해 왔는지 의문이라고 하였다.

 

이 논문의 논점은 다음 몇 가지이다. 첫째, 불교학회의 구성원의 특징이다. 불교학연구회는 전문 학술연구자가 아니더라도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는 구조로서, 이는 일반적 학회 회원의 자격기준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다. 불교학은 다른 학문분야와 달리 학력과 상관없는 출가 수행자들의 수행경험을 학회로 포섭해야 하고, 연구 대상에서 현재의 불교계를 배제할 수 없다는 학문적 특수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회의 외연확대는 학술적 전문성의 훼손을 초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둘째, 불교학이라는 학문분야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으며, 추락하고 있다. 그 근거는 2012년 9월 개정 고시된 〈국가과학기술 표준분류체계〉(이하 ‘분류체계’)에 의해 확인된다. 이 분류체계에 의하면 총 33개 대분류 항목 중 인문학분야인 ‘인간’ 영역에 철학/종교, 역사/고고학, 언어, 문학, 문화/예술/체육 등 5개 영역이 배치되어 있다. 불교학은 이 가운데 대분류항목에도, 중분류항목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소분류항목에서 ‘불교학’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명기되어 있다. 불교학은 한국철학과 동양철학 그리고 동양종교 등 세 영역 아래의 소분류 항목 가운데, ‘한국불교철학’, ‘불교철학’, ‘불교’로 각각 제시되어 있다. 이런 상황은 2008년 고시되었던 <분류체계>에서 중분류항목에 불교학이 미학/예술학, 종교학, 신학, 유교학과 함께 나열되어 있던 것과 상당히 달라진 것이다.

 

박교수는 이 변화를 이제 불교학이 독립된 학문분야가 아니라 철학이나 종교학의 연구영역 가운데 하나의 소재가 되었다는 것, 불교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철학자나 종교학자로 분류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또한 불교학과 비슷한 처지로 신학의 위상변화를 들고 있다. 신학은 중분류인 ‘서양종교/ 기타 지역종교’의 소분류 항목의 하나가 됨으로써, 종교학보다 전통이 깊은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구조적으로는 종교학이라는 큰 범위 안에 포섭되었다. 반면에 종교학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인 학문분야로서, 막스 뮐러(1823-1900)의 사후 겨우 한 세기가 조금 지났을 뿐인 데도 학문분류체계에서 철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셋째, 발표자는 이와 같은 불교학계의 위상 하락은 국내 학계와 학술연구자들에게 미치는 불교학의 영향력이 미약해진 결과라고 해석하며,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 핵심은 불교학과 불교계의 관계의 올바른 정립이다. 그는 불교학계와 불교계가 그 경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학술적 진정성과 종교적 진정성을 서로 강요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 이야기로 구성된 종교학 담론?>

 

불교학의 정체성에 관한 이 발표는 종교학에도 매우 시사적이다. 종교와 종교인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학은 불교학과 유사한 문제를 공유한다. 학술적 진정성과 종교적 진정성의 충돌 가능성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학이 약진하여 철학과 함께 중분류체계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종교학이 중분류항목으로서 ‘종교학일반’이 아닌 ‘종교일반’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학문분류체계와 관련한 각 학문영역들의 정체성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종교학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 파텔(파이)은 바다에서 긴 시간 표류한 끝에 캐나다에 정착하여 한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가 되었다. 영화의 원작소설을 보면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토론토 대학에서 종교학과 동물학이라는 두 가지 학문을 전공했다. 이 소설과 영화에서 주인공이 종교학 교수인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이야기의 기본 테마가 종교학의 주요 연구주제와 많은 면에서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 이성(과학)의 관계, 퓨전적 종교다원주의, 검증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가지는 의미와 기능 등 종교학의 주요 주제들이 그 속에 녹아 있다.

 

파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소설가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두 가지 버전으로 들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다. “두 가지 중에 무엇이 더 믿을만합니까?” 그리고 또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가 더 좋습니까?” 파이에게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종교의 본질과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 도구적 장치로 기능한다. 또 특이하게도 그는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이라는 세 가지 종교를 - 또는 그 이상도- 동시에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종교학이 현대 한국의 학문분류체계에서 약진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기존의 학문분과에는 담을 수 없었던 새로운 종교적 이상과 모델을 담아내고, 전통적 신앙 중심의 종교관을 넘어서는 파격적 담론을 만들어내는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songcloud@naver.com
논문으로 <서구 근대불교학의 출현과‘부디즘(Buddhism)’의 창안>,<한용운의 불교·종교담론에 나타난 근대사상의 수용과 재구성>,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 1910-1930년대 불교잡지를 중심으로>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