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271호-不信으로 잉태된 盲信의 세계: 여론 조작이 그리는 미래 한국(심형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3. 11. 18. 17:27

 

                    不信으로 잉태된 盲信의 세계:

 

                  여론 조작이 그리는 미래 한국

 

 

 

 

2013.7.16


최근 한국 정국을 보고 있자면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가 떠오른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여긴다는 이 고사는 <<사기>> <진시황 본기>에 나오는 환관 조고(趙高)의 위세를 두고 한 말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적으로 인정하게 하거나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른다는 것을 말한다. 요사이는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현재 한국의 언론은 특정 정치 세력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정보를 은폐하거나 가공한다. 경찰은 국가기관의 비위 사실을 발견하고도 축소·은폐·왜곡하였다. 검찰은 그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윗선과 조율된 수준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주요 법 위반자들을 기소하지 않거나 기소하더라도 불구속에 그쳤다. 국정원에 의한 대선개입이 명백하게 밝혀졌지만 정부와 여당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듣게 되는 것은 이것이 야권의 정치공세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NLL 문제가 주요 언론의 첫 뉴스를 장식했다. 여권의 주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NLL을 포기하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위 국면전환을 위한 물타기 수법으로 이 건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NLL문제는 지난 대선에서 해당 대화록의 발췌문을 당시 새누리당의 선거 캠프 수뇌부에서 입수 활용한 일 때문에 국정원 대선개입의 또 다른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국정원 게이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사건이, 현재까지 보자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 오지는 못한 것 같다. 마치 7, 80년대 언론처럼 정부와 여권에 불리한 뉴스는 좀처럼 방송과 신문(주요 일간지)에서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설혹 국정원 관련 뉴스라고 해도 여권의 시각이 많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왜곡된 정보가 전달되기 일쑤였다. 이런 언론 상황은 지난 보수정권 때부터 만들어졌다. '언론장악'이라고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주요 언론사의 사장을 정권의 입맛대로 앉히면서 친정부적, 친보수적 언론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런 덕분에 우리는 정부와 여권의 일방적인 나팔수들만을 가지게 되었고, 많은 국민이 헌정 유린의 심각한 문제를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난 해 선거 국면에서 야권의 주요 언로 중의 하나는 <나꼼수> 같은 팟캐스트 방송이었다. 필두였던 <나꼼수>의 주요 내용들은 음모론의 기조로 다뤄졌다. 정보를 확인할 길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주어진 최소한의 정보로 추측과 추론을 해서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일 개연성이 높은' 이야기일 뿐이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 사실로 드러난 것도 있었고, 세부적으로 오류가 있었던 것도 있었다. 정보의 접근성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알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종종 범하게 되는 과오다.


 

진실이 은폐되고 제한된 정보로 만들어진 ‘사실’은 우리에게 현실로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은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이면의 은폐된 정보에 대한 욕망을 강화시킨다. ‘만들어진’ 현실의 세계는, 디스토피아적 정보 통제 사회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알고 있고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조작된 기억이다. 이제 참된 진실은 초월적 정보가 된다. 그것은 신비롭고, 성스러워진다. 누군가는 알고 있겠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만들어진 진실의 세계는 만들어진 진실 ‘들’의 세계로 인도한다. 우리가 작금에 목도하고 있는 현상이 그러하다.


 

정보가 제한되고 왜곡될 때 사람들은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것이다. 초월적인 진실의 계시로서, 성스러움의 위험한 모습을 본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같은 땅에 살고 있지만 다른 현실을 사는, 서로를 적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우리의 역사상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그렇지 않았던 시절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일상의 일이었지만 최근의 사태는 그 폭과 깊이를 더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불신의 시대, 우리는 맹신이 태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DNA에 새겨진 듯한 관습이 변형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상상된 현실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땅의 보수 세력이 새롭게 창조할 한국의 미래상은 그 언저리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전조가 일베* 일지도 모른다. 참된 진실이 베일에 싸인 사회에서,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은 늘 참과 거짓의 가치를 동반한다. 현실이 그렇게 값이 매겨져야 하는 만큼 그 현실은 초월적 현실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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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의 '일간 베스트 게시물'의 줄임말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사이트로 전대통령에 대한 상식 이하의 비하, 여성 비하 및 사회적 윤리 의식을 크게 넘어서는 내용의 게시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으며 현재에도 그런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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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zeekfrid@gmail.com
서울대 박사과정. <종교 개념의 적용과 해석에 대한 연구>라는 석사학위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