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399호-새해 인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8. 24. 17:41

 

새해 인사



 

2016.1.5

 

 

올해는 병신년(丙申年)입니다. 왜 새해를 일컬을 때면 흔히 낡았다고 여기는 일상적이지 않은 천간지지(天干地支)를 끌어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거의 허옇게 퇴색한 전승이지만 옛날에는 삶을 제어한 우주의 질서를 설명한 틀이었기 때문에 자못 근엄해지고 싶은 새해에는 그 잊힌 전통의 때를 맑게 걸레질하여 다시 제 자리에 놓고 싶은 갸륵한 온고(溫故)의 태도에서 말미암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러한 일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어쩌면 사뭇 불투명한 ‘새 시간’이 펼쳐지는 마디에 부닥치면서 내 깊은 안에서부터 솟는 어떤 불안을 무의식중에 하늘의 운기(運氣)에 맡길 수밖에 없으리라는 감춰진 체념이 그런 우주적인 질서를 전제하면서 짐짓 겸허해지는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옛날 어른들께서는 늘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숙명론의 함정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태도가 그만큼 오만을 삼가게 한 것도 사실이라고 보면 새해를 맞으면서 간지(干支)를 일컫는 것을 넘어 토정비결(土亭秘訣)이라도 봐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조차 하게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새해가 ‘병신년’이라서 그 발음이 고약하여 사용하기가 마땅치 않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까 궁리가 분분하다는 소식입니다. ‘병신’은 병신(病身)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매우 부정적으로 불구자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용례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듣기 거북한 욕(辱) 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그렇게 불릴 때입니다. 자존심이 극도로 상합니다. ‘제 구실을 못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사태나 사물이나 사람을 희화화하는 데 마구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간교(奸巧)를 부릴 때 상용하는 것이지요. 서양 사람들은 이를 펀(pun)이라고 부릅니다. 한글전용을 기계적으로 주장하다보니 그런 사태를 막을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예 지지(地支)만 들어 잔나비해라거나 원숭이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들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서로 ‘모자란다’는 뜻의 ‘병신’이라는 호칭이 그리 고약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하게 됩니다. ‘잘났다. 그래 너 잘났어!’하는 삐뚤어진 긍정보다는 ‘이 모자란 사람아. 너나 나나 모두 모자란데 왜 너 혼자 아니라고 해?’ 그러면서 서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병신’이란 말을 직설적으로 내 뱉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호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뒤돌아보면 새삼 그런 것을 느낍니다. 호통치고 꾸중하고 질책하는 사람들만이 가득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다 그르다는 판단만이 넘실대던 한 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어차피 병신년(丙申年)인데 서로 마음껏 ‘병신(病身)’이라고 부르면서 ‘나는 온전하고 너는 온전하지 못하다’는 질병에서 벗어날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병신(丙申)을 병신(病身)으로 훼손하는 못된 짓을 새해 첫날부터 그렇게 무식하게 주장할 수 있느냐고 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이런 말씀이 그저 펀의 수준을 넘어 억지인줄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른 것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을 새해 스스로 다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모자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삽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회원님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삼가 새해에 더 좋은 일, 보람 있는 일 풍성하게 누리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사)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정진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