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2호-미연방수정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
미연방수정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
news letter No.862 2024/12/24
17세기 유럽의 많은 국가에는 국교가 있었다. 잉글랜드에는 성공회, 스코틀랜드에는 장로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는 가톨릭이 국교로 되어 있었다. 이들 나라에서는 국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 이에 수많은 유럽인은 국교로 인한 차별과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나선 이들에 의해 세워진 국가인 미국에서 1791년 미연방수정헌법 제1조에서 ‘국교의 금지(Establishment Clause)’와 ‘종교행사의 자유(Free Exercise)’를 규정하고 이를 보장하는 방식에 대해 상당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적 다양성으로 인해 국가와 종교, 종교와 종교, 신앙인과 비신앙인 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신앙인의 종교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법 현실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평등권 사이의 긴장이 상존하고 있다.
미연방대법원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함에 있어 보수와 진보 성향의 대법관 각 입장에 따라 실질적 변화를 보여 왔다. 우선 국교금지조항을 해석할 때 수용설, 중립설, 엄격분리설의 세 가지 관점 중 각 대법관이 무엇을 지지하는지에 따라 판결의 결론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1989년 앨러게니 카운티 대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사건1)을 들 수 있다. 이는 12월에 앨러게니 카운티 법원에 있는 두 개의 대형 전시 공간 내에 예수 탄생화가 전시된 것과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 시청 건물 앞에 유대교의 하누카 명절을 기념하는 종교적 상징물인 메노라(menorah)라는 큰 촛대가 설치된 것이 국교금지조항을 위반한 것인지가 문제된 사안이다. 당시 미연방대법원 내에서는 “국가와 종교 사이에는 벽이 있어야 하므로, 종교적 상징물이 정부 청사의 경내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보고 예수 탄생화 전시와 메노라 설치 모두 위헌성이 있다는 엄격분리설과 정부 청사 내 종교적 상징물 설치를 합헌으로 판단하며 “정부가 특정 종교를 설립하거나 종교 활동을 강요하는 경우에만 ‘국교금지조항’ 위반”으로 보는 수용설의 대립이 있었다. 반면 “정부가 특정 종교나 단체를 지원하는 경우에만 ‘국교금지조항’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는 중립설에서는 “예수 탄생화 전시는 특정 종교를 지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메노라 옆에는 크리스마스트리도 있었고, 준수해야 할 종교 관련 칙령도 있었기 때문에 메노라는 전체 전시의 일부에 불과하므로 위헌의 소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예수 탄생화 전시는 위헌(5:4)으로 메노라 설치는 합헌(6:3)으로 판시되었다.
이처럼 연방대법관이 어떤 관점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판결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1940년대부터 1980년대 미연방대법원은 엄격한 정교분리론의 입장이 우세했다. 그러나 2017-2020년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이 세 명의 보수 성향의 판사를 대법관에 임명함으로써 5:4로 보수주의 대법관이 우세하게 되었다. 이는 정부가 종교를 지지하고 정부 내에서 종교적 활동을 허용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미연방대법관의 구성이 바뀌면서 ‘종교행사의 자유’ 조항의 해석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즉 “일반법률을 적용하면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적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1990년 스미스 판례2)의 폐기를 원하는 대법관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예를 들면 2021년 필라델피아 시가 가톨릭 사회봉사단체(CSS)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3)을 들 수 있다. 민간 용역 기관과 계약을 체결한 후 아동 위탁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필라델피아 시가 ‘인종, 성별, 종교 및 성적 지향을 이유로 아동 위탁 가정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기관에 한해 계약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CSS가 “이를 이행할 수 없다”며 종교적 신념으로 성소수자 가정에의 위탁을 거부했다. 해당 사건에서 미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CSS가 종교적 이유로 성소수자 가정에게 사회봉사의 기회를 주지 않았음을 이유로 필라델피아 시가 비종교단체에게도 부여하는 세금면제의 혜택을 종교단체인 CSS에게 거부한 것은 비례의 원칙에 위반하므로 CSS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그 논거로 “필라델피아 시의 세금 면제거부 처분은 CSS가 종교행사 자유의 제한을 감수하면서 종교적 양심에 반하는 결정을 하도록 하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보았다.4) 이처럼 미연방대법원은 스미스 판결을 폐기하지는 않았지만, 성소수자 가정의 평등권과 종교단체의 종교자유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종교의 자유를 평등권 차원에서 접근하며 종교의 자유를 보다 중시했다.
미국 사회는 지난 50여년 간 평등권을 보장하는 것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제 종교의 자유가 평등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종교행사의 자유’ 규정을 수호하고 있다. 국교금지 조항과 종교행사 자유의 조항에 대한 실질적 이념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즉 이전의 국교금지 조항은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을 따랐다. 그러나 이제 수용설의 입장에서 종교를 종교 활동의 일부로 허용하면서 종교를 지원하는 규정이 되었다. 그리고 일반법률을 적용할 때 종교적 예외를 허용하면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2000년대 이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각 종교계의 성지화 사업에 국고지원금을 배분하는 등 재정적 지원을 함으로써 성지를 둘러싼 종교 간 갈등이 심화되었다. 관련 분쟁에서 대법원은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특정 종교의 성지 조성 사업에 국가 재원을 지원하는 논거를 구축하기 위해 ‘종교’에 대한 정의를 문화라고 함으로써 성지를 종교가 문화 또는 문화재로서 존재하는 하나의 양태로 본다.5) 그러나 이처럼 종교를 문화로 변형시켜 세속의 공간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지원에 있어 수반되는 형평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다른 종교의 자유 관련 재판에서도 이익형량 원칙이나 기본권의 규범조화적 해석에 기반해 종교의 자유 뿐만 아니라 평등권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종교의 자유와 관련한 풍부한 사례가 축적되어 있는 미연방대법원 판례의 추이 및 해당 법리에서 시사점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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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llegheny County v. ACLU, 492 U. S. 573(1989).
2) Employment Division, Department of Human Resources of Oregon v. Smith, 494 U. S. 872(1990).
3) Fulton v. City of Philadelphia, 593 U. S.__(2021).
4) Fulton v. City of Philadelphia, 141 S. Ct. 1876(2021).
5) 2022. 9. 1. 선고, 대법원 2022두42631 판결.
임복희_
연세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 취득(Ph. D. in Law) 및 미국 코네티컷 로스쿨(University of Conneticut School of Law) 졸업(LL.M).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최근 연구 논문으로 〈한국 법원의 종교 성지 공간에 대한 이해: 성지 공간을 둘러싼 종교 간 갈등에 관한 두 판례들을 중심으로〉, 저서로 《세상을 바꾼 영화 속 인권 이야기: 필름의 눈으로 읽는 법과 삶》(오디세이북스, 2024)이 있다. 법학자로서 법의 외부에서 법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