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9호-존재할 수 없는 자 - 이주와 추방, 귀환의 상상력
존재할 수 없는 자 - 이주와 추방, 귀환의 상상력
news letter No.879 2025/4/22
인류의 역사는 곧 이동의 역사다. 인간은 늘 이주해 왔고, 정착과 유랑의 교차점에서 문명을 만들어왔다. 현대 세계에서 ‘이주’는 국경, 정책, 체류 자격의 문제로 환원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주는 인간 존재 자체의 본성에 가까운 경험이다. 종교학은 이러한 이동의 서사를 사회적 현상만이 아닌 “존재의 변이, 신성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한다. 이 글은 두 개의 다큐멘터리와 한 편의 영화, 즉 넷플릭스의 Immigration Nation (2020), 호주 SBS의 First Australians (2008), 미국 서부 개척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Geronimo: An American Legend (1993)를 중심으로 현대의 이주를 조망한다. 이 세 작품은 각각 이주자의 존재가 국가 권력에 의해 어떻게 규정되고 파괴되는지, 또 이주하지 않았음에도 강제된 ‘이주’를 겪은 원주민의 고통과 저항, 존재를 지키기 위한 신화적 저항을 보여준다.
이주의 경계에서 탄생하는 고통과 윤리: Immigration Nation의 풍경
다큐멘터리 Immigration Nation (2020)은 트럼프 행정부 하의 미국 이민 정책을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다. 작품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며, 하루아침에 삶의 궤도를 바꾸어야 하는 이민자의 실존적 고통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체포된 이민자는 가족과 분리되고, 기약 없이 삶의 재구성을 기다리는 상태에 놓인다. 작품은 이러한 이민자의 고통과 함께 단속을 시행하는 ICE 요원의 내면을 조명하며, 제도적 폭력과 개인적 윤리 사이의 갈등을 교차적으로 부각한다.
이주자의 존재는 이곳에서 국가의 승인 여부에 따라 조건적으로 인정받는다. 여권, 비자, 체류 자격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non-beings)처럼 취급된다. 그들의 얼굴에는 체류 자격이 없는 아버지가 가족과 생이별하고, 국경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침묵을 강요당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러한 장면은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어떤 윤리적 책임을 감당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대가 된다.
원주민의 이주: 호주 원주민의 추방된 정주와 성스러운 땅의 상실
19세기 이후 유럽 식민 정권은 원주민 공동체의 영토를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땅(Terra Nullius)”이라 선언하며 점유했다. 이는 단순한 토지 강탈이 아니라, 존재론적 제거(ontological erasure)다. 원주민의 ‘Country’는 단지 생존의 공간이 아닌 조상과 영혼, 신성한 법률(Dreaming law)이 깃든 성스러운 장소다. 이 땅과의 단절은 곧 신성과의 단절,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호주 원주민의 서사는 ‘이주’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First Australians는 호주 대륙의 주인인 원주민이 유럽 식민화 이후 어떻게 뿌리 뽑히고, 추방되고, 사라져야 했는지를 기록한 7부작 다큐멘터리다. 이들은 스스로 이동한 적이 없음에도, 삶의 터전, 성스러운 공간, 신화적 시간(Dreaming)으로부터 강제로 이탈 당한다. 원주민의 드리밍 (Dreaming)은 땅 위에 흐르는 영적 시간으로서 땅과 조상, 의례가 하나인 전체적 세계관을 구성했다. 그렇기에 원주민의 비자발적 이주는 성스러운 공간의 말살이다. 본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원주민의 토지 소유권 운동, 예술, 언어, 춤, 노래를 통한 드리밍(Dreaming)의 복원, 식민 지배자와 맺었던 복잡한 상호작용까지의 모든 것은 정치적 투쟁만이 아닌 종교적 세계관을 되살리려는 성스러운 회복의 노력이다.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성과 속』(The Sacred and the Profane)에서 성스러운 공간이 존재의 중심이며, 그 중심이 무너질 때 인간은 방향을 잃는다고 말했다. 호주 원주민에게 ‘Country’는 조상, 신화, 법, 노래가 깃든 살아 있는 존재였으며, 결국 식민주의는 공간적 신성을 해체했다.
여기서 Immigration Nation에 등장하는 미국의 불법체류 이주자와 First Australians의 호주 원주민은 존재의 위기를 겪는 방식에서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 이주자는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법적·제도적 경계에 의해 배제되며, 타지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이동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반면 호주 원주민은 국경을 넘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 이주자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추방되고, 자신이 속해 있던 땅에서 점차 '내부의 난민'이 되어간다. 전자는 이주한 땅에서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방인이며, 후자는 제도적 이주라는 역사적 폭력에 의해 고향을 상실한 토착민이다. 이 두 사례는 ‘이동’이라는 행위 자체보다 더 본질적인, 존재의 박탈과 귀속의 위기를 보여준다.
전설이 된 저항자: Geronimo와 미국 원주민의 성스러운 저항
영화 Geronimo: An American Legend (1993)는 19세기 말 미국 아파치 부족의 지도자 제로니모의 삶과 저항을 다룬다. 제로니모는 미국 정부의 정착 정책과 인디언 보호구역 제도를 거부하고,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성스러운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운 마지막 전사 중 하나였다. 영화에서 그는 전사를 넘어선 존재의 방식을 관철하는 ‘성스러운 저항자’로 그려진다.
미국 정부는 그를 반역자이자 불복종의 상징으로 보았지만, 영화는 그의 내면과 공동체의 삶을 조명하며, ‘이주’를 강요당한 원주민의 고통과 분노, 정체성 회복의 욕망을 보여준다. 특히 제로니모가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이 땅은 우리 조상이 걷던 길이며, 신이 함께한 곳이다”라는 말은, 그에게 땅은 단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신성의 장소이자 존재의 기반임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의 투쟁을 넘어, 신성과 인간, 공간과 존재가 맞닿는 경계의 이야기다. 그는 ‘도망자’가 아니라, 성스러운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순례자이며, 그의 귀환은 귀속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는 곧 이주라는 개념을 '경계의 이동'이 아닌 '존재의 회복'으로 다시 정의하게 한다.
이주는 단지 국경을 넘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질서를 뒤흔드는 경험이며, 문화적·정치적 경계에서 인간됨이 시험받는 사건이다. Immigration Nation, First Australians, Geronimo: An American Legend는 각기 다른 시대와 공간 속에서 제도적 폭력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정체성을 침묵시키며, 존재를 불법화하는지를 보여준다. 공통적으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국가가 승인하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한” 죄로 인해 추방되고, 통제되고, 말소된다. 이는 곧 “존재의 방식 자체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세계, 즉 정치가 인간의 생을 ‘관리’하는 방식의 민낯을 드러낸다.
주목할 점은, 이주나 이동이 단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과 장소, 소속과 귀환을 둘러싼 깊은 문화적 충돌”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이민자, 호주의 원주민, 아파치의 지도자 제로니모는 각기 다른 형태의 강제 이주를 경험하며, 문화적 경계에서 ‘말해질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하지 않는다. 망각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을 복원하며, 잃어버린 공간을 되찾기 위한 저항을 지속한다. 그들의 저항은 단지 무장 투쟁이나 거리 시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와 노래, 공동체와 이야기를 통해 이어지는, 잃어버린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환의 상상력’이다.
이주의 서사는 단지 개인의 고난이 아니라, 근대 국가와 식민 권력이 그어놓은 경계선에 대한 질문이다. 누가 경계를 설정할 수 있는가? 누가 환대받고, 누가 추방당하는가? 우리는 어떤 언어로 이들을 기억할 것인가? 이 질문은 곧 인간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결국 “모든 인간은 이주민이다”라는 명제는 단지 생물학적 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는 선언이다.
_최현주
성균관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