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884호-레오 14세 교황 시대의 가톨릭교회 전망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5. 5. 27. 14:35

레오 14세 교황 시대의 가톨릭교회 전망

 

 

 news letter No.884 2025/5/27

 

 

 

 

레오 14

 

프란치스코 교황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새로운 교황이 탄생했다. 레오 14세다. 그의 나이 69(1955년생). 건강이 허락된다면 그는 대략 20여 년 가까이 교황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아우구스티노회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가톨릭 남자 수도회 총장직을 두 차례 역임했다. 총장에 선출되기 전에도 두 관구에서 관구장을 역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런 그를 2015년 교구장 주교(페루 치클라요 교구)로 임명하였다. 2023년에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동시에 추기경으로도 서임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3분의 1(청년 시절 이전) 미국에서 살았을 뿐 대부분 페루와 로마에서 살았다. 그 경력의 대부분은 선교사였다. 전공은 교회법(1987년 교회법 박사학위 수여)이었다.

 

 

조용한 출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었을 때 그가 보였던 파격적 행동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새 교황의 첫 활동과 메시지가 다소 싱거워 보였을 것 같다. 그가 역대 교황들이 머물던 숙소(교황궁)를 다시 선택했고 새 교황이 선출 후 관습적으로 해오던 일들을 순순히 따랐기 때문이다. 그는 전임 교황처럼 착좌 후 상징적인 장소를 방문하는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다. 그가 선출에서 착좌 때까지 세 가지 중요한 행사에서 했던 연설(선출 후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한 인사말, 추기경단에 한 연설, 교황좌 착좌 미사 강론)도 눈 밝은 신자가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내용이 평범했다.

 

호사가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가 중도일 것이라느니 보수파를 의식하여 더 오른쪽으로 갈 것이라느니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그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사람으로 알려져 지금까지 밝힌 것만으로는 그의 생각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착좌 직후 전임 교황 때 임명한 장관들을 유임시켰는데 자신이 있던 주교부 장관에 누구를 앉히는지가 일차 시험대일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거 직전 2028년까지 각 지역교회에서 시노달리타스 실천 계획을 수립하여 이행한 결과를 평가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수용할 것인지 여부도 그의 교황직 수행 방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겠다.

 

이른 감이 있지만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제일 먼저 말하는 경향이 있기에 새 교황도 그리했을 것이라 보고 선출에서 지금까지 그가 말한 내용과 주변에서 평한 내용을 토대로 그가 펼쳐갈 교황직의 미래, 그리고 그가 이끌 교회의 미래를 가늠해 보려 한다.

 

 

전임 교황 노선 수용 여부

 

나는 따를 것으로 본다. 그에 대해 평을 한 사람들이 하나 같이 이 점은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그가 전임 교황을 그대로 따라 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따르되 자기 색깔대로 하리라는 것이다. 나는 그가 추기경단에 한 연설(510)에서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전임 교황의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인용한 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 교황권고에서 전임 교황이 제시하였던 다섯 가지 요점을 언급하며 이 길이 보편 교회가 수십 년 동안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 함께 투신하며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하였다. 나에게는 이 말이 그가 전임 교황의 시대 인식, 교회 쇄신 방향을 계승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다만 그는 이 과제를 전임 교황과 같은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 같지는 않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내 보수 인사들에게 다소 일을 급하게 풀려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그는 예언자이지 행정가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으로 치면 늘공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건강이 좋지 않았고 나이도 있어 마음이 바빴다. 그런데 새 교황은 젊고 건강하다. 수도회에서 그가 주로 맡았던 소임이 사목과 행정을 다 잘해야 하는 일이었다. 교황 직무를 수행할 시간도 충분하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는 전임 교황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 나갈 것이라 보게 된다.

 

 

레오 14교황명 선택 이유

 

새 교황이 교황 명을 선택할 때 이미 그 행위에서 교황직 수행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가 전임 교황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자 했다면 프란치스코 2를 교황 명으로 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레오 14를 택했다.

 

새 교황은 레오 13세 교황이 역사적인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1차 산업혁명이라는 맥락에서 사회 문제를 다룬 것을 그의 이름을 따르게 된 첫 번째 동기로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과 인간 존엄성, 정의, 그리고 노동 수호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대응할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19세기 말 레오 13세가 당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교회의 사회 참여, 노동 문제로 보았듯이 자신도 이 시대에 그런 문제와 씨름해 보겠다는 것이다.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러한 동기 외에 레오 13세가 당시 전통 수호 측면에서는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보였던 점을 의식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게 된다.

 

레오 13세가 교황으로 선출될 때(당시 67. 당시 남성의 평균수명을 넘긴 나이) 당시 추기경들은 그가 오래 살지 않을 것 같아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93세까지 살았다. 역대 교황 중에 두 번째로 오래 직무를 수행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임 교황들이 기피했던 교회 현대화 노선을 용감하게 걸었다. 새 교황이 이런 점을 의식했다면 속도는 점진적이지만 내용은 급진적인 방식으로 교황직을 수행하지 않을까 짐작해보게 된다.

 

 

추기경단이 그를 교황으로 뽑은 이유

 

새 교황이 선출되고 나서 몇몇 추기경이 그를 교황으로 선출한 이유를 그가 선교사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사실 새 교황의 이력을 보면 그는 확실히 선교사였다. 선교사는 인내, 경청, 대화의 자세를 몸에 익혀야 하는 신분이다. 새 교황은 이런 자세가 몸에 밴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내롭게 경청하고 대화하는 데 익숙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게다가 그는 평생 수도자로 살았다. 수도 생활은 공동체 생활이 본질 가운데 하나다. 공동체 생활에는 순명(順命)이 핵심 덕목일 만큼 자신을 늘 비워야 하는 삶이다. 이 경험도 선교사 경험 못지않게 교황 선출에 큰 영향을 준 요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시대의 예언자로서 안일하게 살아가던 교회를 근본에서 뒤흔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런 방향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나타났다. 큰 방향에 동의해도 추진 과정에서는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많았다. 그러니 교회 내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불만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새 교황은 이를 의식했는지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앞의 세 연설)에서 친교, 일치, 화합,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이는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선을 따르면서도 교회 안에서 어떻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일을 풀어갈지 보여주는 상징적 단어로 읽힌다. 아마도 그의 선교사, 공동생활을 한 수도자, 공동체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를 노련하게 조정해 온 리더로서의 경험을 추기경들이 높이 산 것이리라. 게다가 그는 여러 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전임 교황에 기대를 걸었던 신자들의 요구도 충분히 메시지에 반영했다. 새 교황은 이런 교회 내 요구를 잘 알고 있으니 중심을 잘 잡으며 직무를 수행해나가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는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사실 신자 대부분은 교황에게 별 관심이 없다. 존경은 하지만 가까운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교구장도 가까이 느끼지 못하는데 멀리 사는 교황을 어찌 가까이 느끼겠는가? 그럼에도 신자들은 그가 보여주는 모습에 따라 친근함을 느끼기도 따르고 싶어 하기도 할 것이다. 새 교황은 평생 선교사로 살았고 앞에서 말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한국 신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그를 가까이 느낄 것 같다.

 

그가 행정직무도 잘 수행할 것이라 보면 그는 일(개혁)도 잘 해낼 것이다. 전임 교황은 사제들로부터 지지를 많이 받지 못했는데 그는 이들의 저항을 잘 다독거리면서 교회의 고질적 문제인 교계의 경직성, 성직주의 완화 과제를 잘 수행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이나 어디나 같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사태와 같은 문헌을 내고 이를 교회 안에서 실현하려 노력하게 되면 교회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움직임이 될 것이다.

 

 

새 교황에 거는 기대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나온 논의들을 종합해보면 새 교황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을 계승하면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낼 것이라 보게 된다. 속도는 완만하지만 일(개혁)은 되게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나도 그가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는 남반구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랬듯이 남반구(신자 숫자도 북반구의 2배다)의 교회, 사회 사정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 큰 기대는 걸지 않으려 한다. 2천 년을 한 결같이 제도를 강조해 온 가톨릭교회가 한두 명의 교황 때문에 많은 것을 바꿀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박문수_
우리신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