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885호-종교학적 신학자, 한국인 김경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5. 6. 3. 16:35

종교학적 신학자, 한국인 김경재

 

 

news letter No.885 2025/6/3

 

 

 

인간 현상으로서의 종교와 신학

 

종교는 없다. 불교, 힌두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이 있을 뿐이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은 없다. 불교인, 기독교인, 이슬람인(무슬림)이 있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살짝 가져오면, 불교든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모두 인간이라는 속성을 가지며, ‘인간이 종교를 종교 되게 해주는 종교의 형상’(eidos)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한 마디로 인간 현상인 것이다.

 

불교/, 기독교/인이라는 것도 허공에 환영처럼 떠 있지 않다. 불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한국이든 어디든 구체적 장소 안에 있고, 역사적 시간과 문화적 공간에 처해있다. 여느 인간이 그렇듯이, 특정 시간과 공간의 문법에 따르며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 현상이고, 이러한 종교를 다루는 종교학은 인간학의 일부가 된다.

 

신학은 어떨까. 신학(theology)(theos)에 관한 말(logos)’이다. 그런데 사이 괄호 속에 숨겨진 언어가 있다. ‘인간이다. 신학은 신에 대한 (인간의) 이다. 신학이 신, 초월, 창조 등 인간 너머/심층의 보편 세계에 대해 말하지만, 그렇게 말해진 신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초월과 보편과 신에 대해 말하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신학도 인간학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인간 현상의 일환이다.

 

이 지점에서 종교학과 신학은 만난다. 물론 이 둘은 입각점과 강조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종교가 인간 현상이듯이 기독교도 인간 현상이고, 기독교적 세계를 해명하고 이론적으로 지지하는 신학도 인간 현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고도 신학자라 할 수 있을까? 있다. 김경재는 그렇게 생각하는 신학자 중의 대표자이다.

 

 

종교다원성을 중시한 한국인

 

김경재(1940.3.6.~2025.5.3)는 신학자이되, 한국의 역사와 문화, 종교적 다원성, 정치적 현장을 고민한 한국인이다. 고교 시절 기독교인이 되어 한신대(당시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한 뒤 그는 내내 신학의 길을 걸어왔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신대 교수가 되었지만(1970), 연구자로서의 여정도 계속되었다. 미국 듀북대학에서 신학 석사과정(1975), 고려대학에서 동양철학 석사과정(논문제목: 율곡의 이기론과 사회 갱장론, 1981)를 마쳤다. 그의 한국철학 연구는 마음에 늘 한국이라는 현장을 두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는 한국의 전통적 사유를 더 알려 했고, 종교다원적 현상과 문화를 학문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종교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진작부터 그만의 종교신학을 구상했다. 연구년과 특별 휴가를 받아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에서 종교학으로 박사과정을 하고(1985-1987), 네덜란드 유트레흐트대학에서 뒤늦게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그의 학문적 지향을 잘 보여준다. 박사학위논문은 해석학과 종교신학(한국신학연구소, 1994)으로 출판되었다. 책 제목에 이미 함축되어 있듯이, 그는 종교 현상의 신학적 해석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신학과 종교학의 경계를 실선에서 점선으로 바꾸는 선구적인 작업을 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지만, 그의 종교학적 역량은 어지간한 종교학자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재준과 틸리히의 한국적 계승

 

김경재는 스승 김재준을 존경해 김재준 평전: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2001) 등의 책을 냈고, 씨알들의 믿음과 삶(1990)에서 함석헌과 서남동 같은 실천적 기독교인의 사상을 정리했다. 한국 정치의 폭력적 현실을 고민하며 민중신학 혹은 민중종교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그는 폴 틸리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틸리히에 관한 책을 세 권이나 출판했고, 틸리히의 실존신학과 문화신학을 한국 사상과 문화의 지평에 어울리게 해석하면서, 신학이 한국인의 종교적 영성과 만나도록 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수운의 시천주 체험에 대해 분석한 글에 대해서는 천도교 밖에서 천도교를 가장 잘 해석한 글이라는 천도교 내부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신학자로 평생 살았지만, 그의 신학 안에는 불교, 유학, 동학을 위시한 여러 종교 사상과 동서양 철학 등이 두루 체화되어 있다.

 

 

종교다원주의와 범재신론

 

그는 범재신론으로 자신의 연구를 뒷받침했다. 그의 책 이름 없는 하느님은 짧지만 범재신론적 성격을 잘 담은 책이다. 그는 범재신론을 충실히 소화하면서 종교다원주의 신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신약성서의 다음 구절,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사도행전 17,27)를 신앙의 동력으로 삼았고,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베소서 4,6)를 신학의 나침반으로 삼았다. 만물을 신과의 원천적 관계성 안에서 긍정하는 범재신론에 입각해 다양한 종교, 문화 등을 신학의 핵심으로 살려냈고, 정치와 사회의 치열한 현장에서 신을 보았다. 그렇게 그는 여러 학문을 소화하고 실선적 경계를 헐어낸, 그런 신학의 길을 걸었다.

 

 

대승 기독교인

 

그의 시야는 넓고 깊다. 그는 국내외 여러 신학 및 종교 사상가들을 체화하며 넘나들었다. 그는 김재준과 함석헌을 존경했고, 서남동과 유동식을 잘 모셨다. 칼 바르트, 폴 틸리히, 본회퍼 같은 실존적이고 실천적 신학자를 연구했고, 화이트헤드를 통해 과정신학을 연구했으며, 엘리아데나 오토 같은 종교학자의 이론을 수용하고, 가다머의 철학을 신학적 해석학의 준거로 활용했다. 원효와 같은 불교사상가, 율곡 같은 유학자, 수운과 해월 같은 영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지도자의 사상을 자신의 해석학 안에 융합해 냈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대승 기독교라는 말로 요약했다. 자기중심적 배타적 구원론과 성서 문자주의 같은 소승성을 비판하고, 성서를 보편구원론, 종교다원주의, 범재신론에 입각해 개방적이고 실천적으로 해석했다. 신학의 지평에 있으면서 모든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 큰 수레’[大乘]와 같은 학문을 구상했던 것이다. 그의 학문과 신앙적 실천은 향후 한국의 신학은 물론 종교학의 확장까지 견인할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 신학자가 종교학적 재료를 수용해 학문의 경계를 넓혔듯이, 종교학자는 그의 대승 기독교를 수용해 종교학을 심화 및 확장하는 데에 공헌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의 신학만이 아닌, 인품과 덕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이찬수_

종교평화학 연구자.

종교로 세계 읽기, 인간은 신의 암호, 평화와 평화들, 메이지의 그늘등 여러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