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201호-국가조찬기도회는 그들만의 잔치다(백찬홍)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2. 3. 28. 18:05

국가조찬기도회는 그들만의 잔치다

20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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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 6일 만해 NGO교육센터에서 마련한 ‘정치와 종교, 뗄 수 없는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백찬홍(에코피스아시아) 상임이사가 송기춘(전북대 법학대학원) 교수의 ‘국가조찬기도회의 헌법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한 내용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정리한 것이다. 본 토론문 모두에 ‘국가조찬기도회’가 기독교정신에 어긋난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으나 뉴스레터의 분량의 한계와 신앙적인 판단의 내용은 일부 제외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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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세확장의 도구였다.

국가조찬기도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모여 기도회를 갖는 것은 로마제국의 예처럼 복음을 확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체제의 희생제물이 된 예수의 삶을 구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여한 사람들 간의 모종의 정치적 동기와 야망을 실현하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국가조찬기도회를 둘러싼 논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속적인 검토를 필요로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시행되어 왔던 국가조찬기도회는 교회가 국가권력 내지는 정치권력과 유착하는 고리였다.

과거 기독교 인구가 5%미만으로 소수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미군정과 기독교 장로인 이승만의 영향으로 국가권력과 기독교의 관계는 매우 밀착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국가조찬기도회와 같은 형태의 모임은 없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정권의 성격으로 보자면 오히려 이승만 정권 때 이뤄졌을 법한데 박정희 정권 시절 때 이뤄졌다는 것은 이승만 정권 때 힘을 확보한 기독교가 교세확장을 위해 더욱 공세적으로 권력과의 유착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입장에서도 정통성을 인정받고 진보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반정부투쟁을 일정하게 제어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정권의 안녕을 기원하는 조찬기도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60~70년대 한국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폭발적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교회 내적인 동력도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의 도움도 매우 컸다. 조찬기도회를 통해 맺어진 유착과 비호 속에 1974년 세계적 부흥사 빌리 그레함 목사가 참여한 엑스폴로74 같은 초대형 집회를 연이어 개최하면서 기독교는 양적인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1974년 기독실업인회가 주최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김총리는 정권에 저항하는 기독교인들을 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당하다면서 “지난 10여 년간 교회증가 숫자는 2배, 교역자는 무려 6배의 증가를 보였다.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겠는가.” 박정희 정권은 이외에도 친정부적인 기독교기관과 교회가 건물을 짓거나 토지를 매입하는 경우 많은 특혜를 주어 교회성장의 물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70년대 유신통치라는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도 민의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국가조찬기도회는 그 자체로 정치권력과 종교권력간의 야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신도들은 가까이 할 수 없는 호화호텔 등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기도회를 갖고 있을 때 민주화 시위와 석유위기 등으로 위한 경제위기 등으로 국가와 민족은 소용돌이 속에서 편안하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은 광주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 때까지 이어졌다. 한마디로 70~80년대 국가조찬기도회는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임이었다.


-. 그들만의 잔치이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독재 권력이 무너진 이후에도 김영삼 정부에서 현재의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가조찬기도회는 정부자체가 절차적 정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독재 권력을 무조건 비호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는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형식적인 변화에도 교회와 국가권력간의 유착 고리로서 기본 성격이 바뀌었다고 볼 수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의 국가조찬기도회가 겉으로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은밀하게 정치권력과 거래를 해온 보수 기독교만의 행사였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의 국가조찬기도회는 진보적 기독교 인사까지 참여하면서 사실상 진보/보수를 망라한 범기독교적 행사가 된 것이다.

긍정적인 면은 독재시절 국가조찬기도회가 정권을 지지하면서 보수 기독교의 교세확장의 도구가 된 반면 문민정부이후에는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담아보려고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조찬기도회 역시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정치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경제적으로는 재벌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는 한미FTA, 이라크파병, 새만금방조제 공사, 원전방폐장과 평택 미군기지이전 등으로 시민사회와 많은 충돌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진보적 기독교 인사들은 제2건국위원장, 통일부 장관 등 정부 요직에 기용되면서 비판적 목소리 내기를 주저했고 국가조찬기도회 역시 현 질서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형식을 띄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진보개혁적인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국가조찬기도회는 국가라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언제나 ‘국익’의 논리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물러난 후 747공약을 통해 경제성장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개최된 국가조찬기도회에서는 국가번영의 신학이 아무런 성찰 없는 가운데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이는 국가조찬기도회의 타고난 운명상 불가피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국가조찬기도회는 로마제국이래, 정치와 종교 교회지도자들간에 정치적 동기와 야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활용되어왔을 뿐 지금도 여전히 삶의 질곡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과는 유리된 행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 신자들이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백찬홍_

에코피스아시아 상임이사


SNS :http://twitter.com/mindgood


저서로 <<종교의 안부를 묻는다>>,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공저)가 있고, 논문으로 <보수교회 극우행보, 어떻

게 볼것인가>, <한국 기독교 기복신앙의 현재와 미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