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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의 조건에 대하여
news letter No.823 2024/3/26
사형은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제도이다. 사회적으로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죽임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중범죄로 인하여 사회구성원들이 받은 상처를 보상하거나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은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하나의 근거이다. 아직 사형제도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있는 한편 여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회도 있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사형제도 존폐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면 유지 의견이 79.6%, 폐지 의견은 20.4%였다. 세계적으로 사형제도 폐지가 대세인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의 정서는 여전히 유지 쪽에 쏠려 있다.
지금까지 사형제도 폐지 근거가 여럿 제시된 바 있다. 오심의 가능성으로 무고한 사람이 희생당할 수 있다거나,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에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 그런 근거에 해당한다. 사형판결이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는 사회구조적 모순도 거론된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Pew Research Center)의 2021년 결과를 보면 사형제도 찬성 의견이 60%, 반대의견이 39%로 나왔다. 백인보다 흑인이 사형판결을 더 많이 받는다는 의견은 56%, 동등하게 받는다는 의견은 41%였다.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은 78%, 그런 위험은 없다는 의견은 21%였다.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이 다수인 상황에서 많은 미국인은 이 제도가 지닌 문제점도 함께 인식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권은 사형제도 폐지에 가장 강력한 근거라고 생각한다. 인권은 국가권력을 포함하여 누구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리는 근대국가 성립의 배경이다. 어떤 이유로도 훼손당할 수 없는 생명권이 인권의 핵심이라면 사형제도는 결국 폐지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인권 개념의 정의와 범위도 역사적으로 가변적이었기 때문에 사형제도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인권 개념의 확장과 더불어 사형제도의 소멸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한국은 여전히 사형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이지만, 1997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사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다. 궁극적으로는 사형제도가 폐지되리라 예상한다.
사형제도를 유지하더라도 집행 과정 자체가 근대적인 방식으로 변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수많은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보여주려는 의도로 거행되었던 전통적 방식을 탈피하여 비공개로 전환한다든지, 신체적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약물이나 가스, 전기 등 다양한 방법을 고안한 점 등은 약간 역설적이지만 최소한 인권 개념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해도 될 듯하다.
종교학에서 사형제도를 연구한 사례를 찾아보았더니 눈에 띄는 자료가 있었다.1) 근대 사형제도,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사형제도를 희생제의 혹은 인간희생제의와 비교한 논문이었다. 세부 내용은 생략하고 그 대강만을 소개하면 사형의 집행 과정이 인간희생제의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사형과 인간희생제의는 인위적으로 통제된 환경에서 의례화된 살해를 지향한다. 사형은 의례적인 형식과 절차에 따라 집행됨으로써 ‘흠결 없는 살해(perfect kill)’를 구현한다. 이러한 의례적 살해는 범죄자의 질서 파괴적이고 정당하지 못한 살해 행위와 대비된다. 한편 범죄자는 ‘비합법적’ 폭력을 행사하여 국가가 지닌 ‘합법적’ 폭력의 독점권을 침해한 존재이다. 사형제도는 이렇게 침탈된 권력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려놓을 기회이다. 국가가 집행하는 사형과 범죄자가 저지른 살해 행위의 차이는 사형의 정당성을 보증한다.
사형제도를 인간희생제의와 비교한 연구는 흥미롭지만, 전자를 옹호하는 논리로 원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위 자료의 저자는 사형제도 분석에 동원된 ‘희생제의’ 모델이 ‘이데올로기’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형이 누군가에게는 희생제의일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 가령 피형자에게는 희생제의가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있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현대문화의 다양한 현상을 종교학의 개념으로 분석할 때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종교학자는 자기도 모르게 기존 현상에 가려진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전혀 다른 기반에서 운용되었던 두 요소를 비교하는 작업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사형제도와 희생제의가 아무리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인권이라는 가치 앞에서는 힘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인권의 보호를 표방하고 구축된 근대적인 법률 체계에서 사형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여기서 인권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인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어떤 근거에서 인간은 자유와 평등, 생명을 핵심으로 하는 인권을 주장하는가. 근대적 인권 개념은 좀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인간이 인권을 지닌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누구에 의해서도 그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천부인권설은 인권의 신성불가침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왜 하늘은 유독 근대적 인간에게만 인권을 부여한 것일까.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이다라고 말할 때 그러한 인권을 지닌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그러한 인간이 지닌 생명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근대적인 인간에게는 이러한 기원의 물음이 더는 의미 있는 것으로 제기되지 않는다. 이러한 물음은 전통적으로 종교나 신화에서 유효하다. 근대적인 상황에서는 비껴가는 물음이다. 종교와 신화는 인간과 생명의 기원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는다. 가령 신이 창조했다든가 하는 언급이 그러한 답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었다면 인간이 지닌 생명은 주인이 따로 있게 된다. 인간의 생명은 자기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다. 그런데 신은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며 살지 말 것과 그 선을 넘으면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고 공동체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면 그것은 신의 것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행위가 된다. 여기서 사형제도는 인간이 정한 것이 아니라 신이 정한 것이다. 사형제도는 법적 근거가 아니라 종교적 근거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종교와 신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형제도를 둘러싸고 정당성 여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적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인권의 개념이 발호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사형은 신이 주는 형벌이지 인간이 정한 인위적 제도가 아니다. 만약 그를 죽이지 않고 방치한다면 신의 노여움을 사서 사회적인 안위가 보장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형 집행은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사회질서와 안전을 보장하며, 같은 인간으로서 범죄로 인해 상처받고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계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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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rian K. Smith, “Capital Punishment and Human Sacrifice”,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vol. 68, 2000.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의 논문으로 〈서주 금문에 나타난 長壽와 宗法의 관계에 관한 소고〉, 〈상대 갑골 점복의 복조 해석에 관한 소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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