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지으며 산다 news letter No.849 2024/9/24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1986년 음악 밴드 부활의 첫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비 오는 날이면 라디오 음악방송에서는 종종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버스 안에서든 좁은 기숙사 방에서든 라디오의 썩 좋지 않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 음악을 들으며 창밖의 비 오는 거리를 바라본 적이 많았다. 지금도 비 오는 날에 잘 어울리는 노래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떻게 보면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지닌 독특함은 ‘비’라는 자연현상 혹은 물이라는 사물에 기대어 삶의 한 부분을 들춰내는 데 있는 것도 같다. 비라는 현상 혹은 빗물이라는 물질은 오래 묵은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현재의 감정에 미..
달 이야기: 고(故) 황선명 선생님을 기리며 news letter No.848 2024/9/17 종교와 신화 속에서 달의 지위는 통상 태양숭배 아래에 위치한다. 그러나 양면성 혹은 ‘반대의 일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달은 태양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변화무쌍한 의미를 보여준다. 달 이미지는 시공간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대체로 양면성을 띠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타일러의 《원시문화》에 의하면, 브라질의 보토쿠도족은 천체 가운데 달에게 최고의 서열을 부여하는데, 달이 천둥과 번개를 내리며 채소와 과일의 흉작을 야기하고 심지어 때로는 땅에 내려와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만든다고 믿었다. 달은 친절한 신으로도 혹은 사악한 신으로도 등장하며, 출생과 생육의 신이거나 또는 파괴와 죽음의 ..
요가는 종교인가? news letter No.847 2024/9/10 2009년 미국 미주리주는 요가 스튜디오들에 대해 판매세(sales tax)를 부과하였다. 미국의 판매세는 상품 판매와 서비스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으로서 우리 사회의 부가가치세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것이다. 그동안 미주리주는 축구장 입장료, 체육관 회비, 음악회 입장료 등은 여가산업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판매세를 부과했지만, 요가 스튜디오의 강습비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 그런데 미주리주 대법원이 각종 체육관에서 행해지는 퍼스널 트레이닝 강습비에 대해 과세할 수 있다고 판결하자 주 정부는 요가 스튜디오에도 과세 통지서를 보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요가 스튜디오의 운영자, 요가 강사, 강습생 등 요가 애호가들은 즉..
의롭고 충성스러운 노비 news letter No.846 2024/9/3 약 3년 전, 한 선배님으로부터 유교 국가였던 조선의 존비(尊卑)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유교 국가’라는 명명 자체가 기독교 국가 혹은 불교 국가 등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존비•귀천•신분•계급 등 몇몇 개념어의 주변을 맴돌다가 결국 ‘노비제’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에 관한 상당량의 기존 연구를 읽으면서 어떤 쟁점들이 있었는지 대략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나, 공감하기 어렵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노비제의 양상에 관하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존비의 질서를 철저히 고수하면서 19세기 말까지 노비제를 지속시켰던 조선의 통치자들은 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