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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홍의 살며생각하며](2)아침예찬

 

한국대학신문 [기획연재] 2014.03.09

 

*** 행복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고들 한다. 나날이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고 말들 한다. 우리 시대 종교학 석학이 보내는 '소소해서 종종 잊곤 하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메세지 <정진홍의 살며 생각하며>에서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나보자.

저는 아침이 좋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드린다면 새벽이 좋습니다. 당연히 저는 일찍 일어납니다. 새벽 4시가 좀 넘은 시간이 제가 잠을 깨고 일어나는 때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럼 잠자는 것은 몇 시쯤이냐고 궁금해 하실 텐데 어느 날은 자정을 넘기는 때도 있고 어느 날은 9시를 넘기면 졸음이 오기도 합니다. 물론 잠을 자지 않고 꼬박 지새우는 날도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10시를 넘기면 자고 싶어집니다. 그것도 아주 골똘하게요. 그래서 잠을 설치거나 잠이 오지 않아 괴로운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저녁의 아름다움을 모르지 않습니다. 저녁노을의 황홀한 신비를 감탄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이제는 그 신비의 품속으로 서둘러 걸어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초조감마저 지닙니다. 밤의 적막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그 고요의 발언을 듣습니다. 그것은 마치 계시처럼 제 안에 스밉니다. 어둠의 무게가 서서히 내려앉으면서 온갖 사물들이 그 형체를 숨기면 저는 낮에 없던 이야기를 서리서리 펴면서 저 나름의 누리를 짓습니다. 밤이 주는 자유는 낮의 환한 구체성 안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낮에는 걸어야 하고, 달려야 합니다. 신호등 앞에서 서야하고, 보이는 사물을 요리저리 피하면서 미로를 헤매야 합니다. 아니면 너무 많은 간판과 안내판과 표지판의 숲에서 나를 미아(迷兒)이지 않게 하려는 긴장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사람과의 만남은 때로 범람하는 강물처럼 저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어느 틈에 저는 익사한 채 둥둥 흐름을 좇아 맥없이 떠내려가는 저 자신을 확인해야 하는 데 이르게 합니다.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밤이 옵니다. 밤은 그래서 흔히 일컫듯 정지이고 휴식이고 위로입니다. 그 위로는 노을의 신비와 더불어 비롯하면서 고요의 발언과 어둠의 자유를 거쳐 제게 스밉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잊고 잠들게 합니다. 이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밤에 빠지면서 제 어깨를 토닥거리며 ‘너 참 오늘 애썼다. 잘 자거라’하고 말해주는 일 뿐입니다.

이렇듯 밤이 좋아서, 밤에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아니, 밤은 잠이라는 사실이 좋아서 저는 밤의 삶이 없습니다. ‘밤의 문화’가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어둠을 억지로 밝히고 짐짓 낮을 빙자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펼치는 온갖 삶이 낯섭니다. 자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저녁이나 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좋아한다고 말해야 옳습니다. ‘밤의 신비’는 제게 무한한 위로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침이 좋습니다. 신비를 견주는 일은 무엄하다 못해 신성모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둠이 가시면서 동터오는 새벽을 맞으며 온 누리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모습과 마주하게 되면 그 두근거리는 신비를 저는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황홀하게 당혹스러워집니다. 밤의 신비가 고즈넉한 위로로 다듬어지는 그윽한 신비라면 먼동의 터옴과 더불어 드러나는 아침의 신비는 미지를 만나는 설렘의 신비입니다.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의 펼침 그것 자체입니다. 아무런 발자국도 거기에는 없습니다. 설계된 어떤 암시도 없습니다. 상상도 이르지 못한 시간과 공간이 거기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라앉은 침묵의 발언도 없습니다. 어쩌면 있는 것은 저를 맞는 무한한 가능성의 기다림뿐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새벽입니다. 그래서 아침은 열림입니다. 창조의 계기라는 표현이 진부하다면 비록 개념의 휘어짐이 없지 않지만 바야흐로 ‘조판(肇判)이 이루어지는 때’이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새벽은 저를 그 열림 속으로 들어서게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제 이러한 발언에 꼭 일갈(一喝)하실 것 같아 갑자기 소침(銷沈)해집니다. “농경문화의 끝자락을 산 사람의 하릴없는 넋두리군!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데 아직도 아침이니 밤이니 하고 있으니. 쯧쯧!’

그래도 저는 아침이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늘 그렇게 살아왔고, 이윽고 ‘아침 없는 밤’을 맞을 텐데, 그 밤에 잠들면서 이런 아침을 황홀하게 그려도 괜찮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출처 링크: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3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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