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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가르치기에 대한 단상
2015.10.27
“신(kami)을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
동아시아 종교 전문가이자 문화인류학자 존 넬슨은 “어떻게 일본에서 천황이 신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신도와 정치권력의 관계를 파헤친 논문(John Nelson, “Teaching Ritual Propriety and Authority through Japanese Religions”, Catherine Bell, ed., 《Teaching Ritual》, Oxford University Press, 2007)을 썼다. 맨 처음에 인용한 문장은 그 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논문의 저자는 일본의 뚜렷한 두 종교전통, 신도와 불교에 주목한다. 특히 그는 일본신도를 종교학 수업에서 의례 가르치기의 좋은 사례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의례의 핵심은 의례를 의도한 기획자가 만들어내는 권위의 작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의례화의 정치학’(politics of ritualization)을 가르치는데 실패하게 되면 학생들이 종교전통의 주요한 역동성에 대해 근시안이 되기 쉽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을 읽는 내내 ‘의례화’라는 말과 근대 ‘신화 만들기’(myth-making)라는 말을 함께 생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신화 가르치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첫째, 신화가 고대문헌에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가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그것이 당대의 요청에 의해 어떻게 읽혀졌는가 하는 문제를 정치적 차원에서 조명해봐야 한다. 둘째, 이러한 근대 신화 만들기의 과정과 그 양상이 어떻게 나타났는가의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봐야 한다.
주지하듯이 일본의 경우 고대 율령제 국가의 정치사상이 반영된 고대의 천황 신화는 근대의 일본신화로 다시 읽히면서 신민(臣民) 국가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졌다. 대다수 일본인이 그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착각하는 천황숭배는 메이지 정부가 기획한 작품으로 일종의 창조된 전통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이 서구의 제국주의에 편입하려고 필사적 도약을 꾀하는 과정에서 메이지 정부의 주도하에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창조되었다. 19세기말 메이지정부의 초대천황 무쓰히토(睦仁)는 일본 근대화 프로그램의 핵심적 자리를 차지했다. 이때 민족, 인종, 애국주의가 뒤섞인 신화 만들기를 통해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 되었다. 일본의 신(かみ)은 전통적으로 자연적 존재였지만, 메이지시대 이후 천황은 훨씬 더 우월한 신적 존재로 숭배되었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과 역대 천황 및 국가의 영웅을 기리는 새로운 신사가 전국각지에 세워졌다. 특히 이세신궁의 경우는 자연신과 천황신의 위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에도시대의 이세신궁 참배는 민간신앙 차원에서 풍요와 번영의 여신인 도요우케오미카미(豊受代身)를 숭배하는 외궁 쪽의 비중이 컸지만, 메이지시대 이후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내궁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 하지만 일부 집단에서는 일본 근대 제국주의의 동력이 된 기기(記紀)신화에 기반을 둔 천황제에 저항하며 ‘의례 되찾기’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마치 이들은 물리적으로 강탈당했던 영토의 탈환을 꿈꾸며, 전통적인 신도 의례의 회복을 위해 천황제 신화에 저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메이지 정부의 천황신 숭배가 기존의 자연신의 심기를 건드려 신이 화를 내지 않도록 다시 새로운 의례화가 필요한 상황인 셈이다. 이와 같은 일본신도의 신화만들기와 의례화의 정치적 차원을 살펴보고 든 생각은 다음과 같다. 즉 수업에서 신화를 다룰 때는 신화가 아득한 옛적의 이야기라는 식의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신화의 탄생을 꿈꾸는 역사적 맥락을 비판적으로 주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1920년대-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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