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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Tasha Tudor), 헨리 데이빗 소로우(Thoreau)의 전통과 근대

 

 

 

   news  letter No.542 2018/10/2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13일 다큐멘터리 영화 〈타샤 튜더〉가 개봉되었다. 제15회 EBS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2018)의 '나의 삶, 나의 예술' 섹션에 공식 초청된 영화 〈타샤 튜더〉는 9월 13일 전국 영화관에서 개봉되었다. 마츠타니 미츠에 감독이 10년간 취재한 타샤 튜더의 공간과 라이프 스토리를 담고 있다.

  타샤 튜더(1915~2008)는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삽화,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린 화가이자 베스트셀러 동화작가로서, 30만 평 화원을 가꾼 자연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개봉과 함께 올해 최고의 힐링 영화로 떠오르며 개봉 5일차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라이프스타일 지침서’로 떠오르는 영화 <타샤 튜더>의 어떤 ‘비밀’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타샤에게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동화작가이자 천상의 화원을 가꾼 최고의 원예가, 19세기를 사랑한 자연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에게 바쳐진 ‘라이프스타일의 아이콘’이라는 찬사일 것이다. 타샤의 자연주의적 삶과 인생을 즐기는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 타샤 튜더는 1915년 미국 보스턴에서 조선기사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타샤의 집은 마크 트웨인, 랠프 왈도 에머슨, 헨리 데이빗 소로우,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걸출한 유명인들이 오가는 명문가였다. 그러나 아홉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과 떨어져 부모의 지인과 살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개성적이면서도 역동적 방향으로 전개된다.

   스물세 살, 첫 동화책 <호박 달빛>을 출간하였고, <1은 하나>, <엄마 거위> 등을 펴내며 그림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칼데콧 상'을 2번 수상하였다. 이후 70년 동안 ‘빛나는 계절’, ‘코기빌’ 시리즈 등 100여권의 그림책을 내놨다. 최고의 동화작가에게 주어진다는 '리자이너 메달'도 수상했다. 따뜻한 수채화풍으로 19세기 미국의 목가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그의 그림은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카드에 실리며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농업에 흥미를 잃은 남편과 이혼 후 홀로 네 아이를 키우며 농사와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고단한 삶도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소망해온 정원을 일구기 시작하며 자연으로부터 치유를 받았다. 30여 년 후 18세기 영국식으로 꾸민 타샤의 정원은 사계절 내내 꽃이 지지 않는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며 전 세계 원예가들이 부러워하는 정원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

 ▶자연주의적 라이프 스타일의 아이콘 타샤 튜더
    “사람은 늘 자연과 함께 해야 해요. 우리 모두는 자연의 일부분이니까요. 따라서 소중한 자연에 상처를 입히는 짓은 내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지요.”(《맘 먹은대로 살아요: 그림같은 정원에서 동화처럼 살고 있는 타샤 튜더》 2004, 종이나라, 163. 이하 ‘맘’)

   미국 버몬트 주의 산 속에서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는 동화작가.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골동품 옷을 입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사용하며, 땔감을 사용하는 스토브로 음식을 만들며, 야채와 과일을 직접 심고, 염소 젖을 짜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치즈도 만든다. 예술가로서도 성공적이어서, 전원생활을 바탕으로 그린 그의 아름다운 그림책은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꿈같은 생활을 현실로 이루어 낸 타샤는 영화에서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고, 이 이상 더 행복할 수는 없다고 공공연히 밝힌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 삶에 후회가 없기 때문이에요.” (맘, 161)
       “우울하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아요. 좋아하는 걸 해야 해요.” (맘, 149)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어찌 그녀의 인생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타샤 튜더의 전통과 근대
    타샤 튜더의 삶에서 눈에 띄는 것은 19세기 미국의 삶의 전통 방식을 따라 사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1830년대에서 환생했다고 믿었고, 그 시대에 유행했던 옷을 입고 다녀서 가족을 걱정시켰다.

   “나는 원래 1830년대 사람인데, 오늘에 환생한 것이라고 굳게 믿어요. 난 죽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1830년대로 돌아갈 거예요... 난 1800~1840년쯤에 살았던 영국인 선장의 아내가 되고 싶어요.”(맘, 168)

  그녀는 뉴잉글랜드의 전통적 생활양식, 의상, 음식, 축제를 일상에서 재현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과거의 삶을 다만 동경하고 좋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생활에서 구현(embodying), 혹은 실현(realizing)한다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나는 진귀한 골동품 식기를 일상생활 속에서 늘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깨지기도 하지요. 골동품이라고 해서 아까워하며 상자 안에 고이 넣어 둔 채 평생 꺼내 보지 않는다는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지요. 난 150년 된 옷도 그냥 입고 다녀요... 어렵게 얻은 물건을 즐기지 않는 것이 더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요?”(맘, 149)

  그녀는 18세기 생활양식을 고수하는 아미시(Amish) 공동체의 삶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그녀는 아미시 친구에게서 산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밀가루를 사용한 ‘머핀 믹스’를 사용한다.(맘, 179) 타샤가 가꾼 정원도 그 모습은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매사에 복고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역사가 깃든 것들을 선호하며, 옛날에 쓰던 도구와 물건들, 아이디어들만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다. 그녀의 원예 기술은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이 핵심이다. 친구들과 지인들도 낡은 헛간, 오래된 도구, 고풍스런 옷을 함께 즐긴다.(《타샤의 정원》, 2006, 윌북, 270)

 ▶타샤 튜더와 ‘고요한 물’ 종교
    타샤 튜더의 종교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약간의 단서들은 그녀가 종교의 인습적인 측면을 거부했고, 범신론적 사상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타샤는 대중과의 만남에서 종교에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머뭇머뭇 대답했으며, 자신이 그린 종교적인 삽화를 난처하게 생각했고, 심지어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녀는 사람들이 영적인 고민에 너무 생을 낭비하다고 생각했으며, ‘크리스천에게 금지된 게 있다면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신을 두고 ‘자연’이라고 쓰기를 더 좋아했다.(《타샤의 그림 인생》, 2008, 윌북, 116)

   하지만 종교를 주제로 한 카드들을 보면 자녀들을 키우면서 종교에 대해 상당히 전통적인 접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탄생 장면들은 경외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소박한 여성으로서의 성모상들도 즐겨 그렸다. 크리스마스는 물론, 강림절, 성 니콜라스 탄생일 기념 파티, 부활절, 추수감사절, 할로윈 데이 등의 행사는 중요 가족 축제로 성대하게 치렀다. 크리스마스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트리를 장식하고, 아이들이 촛불을 밝힌 어둡고 긴 오솔길을 걸어가 바위 밑에 놓은 작은 구유 속의 아기 예수를 만나는 성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가지는 않았다.(《나의 엄마, 타샤 투더》, 윌북, 2009, 144)

   특이한 것은, 타샤의 가족이 재미삼아 ‘고요한 물(Still water)’이라는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종교는 타샤가 장로였고, 세례요한 축일의 전야에 큰 잔치를 열어 신나게 춤추고 맛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다였다. 이 ‘고요한 물’교가 추구한 것은 고요한 마음의 상태였다. 고요한 물이란 아주 평화롭고, 스트레스 없는 삶을 의미한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정신없이 살아요.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텐데’라고 그녀는 말했다.”(《행복한 사람, 타샤 투더》, 90)

    또한 ‘고요한 물’교의 신자들은 쾌락주의자들이기도 했다. 인생은 짓눌릴 게 아니라 즐겨야 한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종교였다. “세상의 우울함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뒤,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을 누리십시오.” 바로 이것이 ‘고요한 물’교의 첫 번째 계명이라고 한다. 기쁨은 누리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확실히 낙관론자로 태어났다”고 타샤는 말했다.(《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92)

 ▶타샤 튜더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목할 것은 타샤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1817~1862)를 자신의 롤 모델, 혹은 자신의 삶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로 즐겨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바랄 나위 없이 삶이 만족스럽다. 개들, 염소들, 새들과 여기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다. 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없다. 철학이 있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 ‘꿈을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가라.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인생의 목표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면, 어느 새 성공은 당신 손안에 있을 것이다.’(《월든》의 한 구절) 그게 내 신조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내 삶 전체가 바로 그런 것을.”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174; 맘, 177)

   잘 알려진 것처럼 소로우는 1845년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메사추세츠 콩코드 인근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의 생활을 했다. 《월든(Walden)》은 ‘월든’ 호수 주변에서 저자 자신이 영위했던 2년 2개월간의 실험적 삶의 기록이다. 《월든》이 생태문학의 고전으로 읽히고 있는 것은 자연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자연에서 동시대 사회의 위기에 대안을 추구하려는 소로우의 치열한 모습이 긴밀히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월든》은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자본주의로 인한 물질주의에 물들어가고 있는 미국인들의 탐욕과 정신적 가치의 상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자아와 문화를 추구하는 소로우의 실험이었다.

   소로우는 에머슨의 계보를 잇는 초월주의자(transcendentalist)로 알려져 있다. 초월주의는 낭만주의(Romanticism), 개인주의(individualism),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찾을 수 없는 순수성을 자연 속에서 찾는 흐름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월든》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기술문명과 자본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근대주의와 그런 근대주의에 대한 반발로서의 ‘전근대로의 회귀주의’를 동시에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다는 것에 있다. ‘과연 우리 모두가 월든 호숫가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며 또한 바람직한가? 근대에 대한 저항을 관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자각하고, 그 가능성을 일상의 생활에서 실현해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어떤 것일까?’ 등의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타샤 튜더가 얼마나 소로우의 《월든》의 실험을 계승하고 보다 구체화했는지, 그 자세한 면모는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타샤 튜더의 자연친화적 삶과 전통의 고수가 현대인들의 영혼에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문화적 대안인지 여부이다.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은 우리의 도시 생활 중심의 자본주의적 근대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삶 속에서 근대 너머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대안적 삶의 모델의 가능성을 보았고, 그래서 열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미래만 보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지나간 우리의 전통적 삶의 고즈넉한 삶 속에 평화의 비법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근대를 넘어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가능하며, 또 바람직하지는 않을까?’ 등을 고민하게 한다.

   또한, 타샤 튜더의 삶과 실천은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말하는 《현대종교의 다양성(Varieties of Religion Today)》(문예출판사, 2015)의 한 현상으로 해석될 가능성은 없을까? 타샤 튜더는 전통종교를 고수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문화로서의 종교전통을 완전히 배척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찰스 테일러가 말한 ‘표현주의적 개인주의’, ‘표현주의적 신앙’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많은 생각을 가능하게 한 영화 〈타샤 튜더〉이다. 

      


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교수
논문으로 <서구 근대불교학의 출현과‘부디즘(Buddhism)’의 창안>,<한용운의 불교·종교담론에 나타난 근대사상의 수용과 재구성>,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 1910-1930년대 불교잡지를 중심으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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