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라틴지구에 있는 팡테온(Panthéon)은 고대 로마의 기념비적 건축물 판테온(Pantheon)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기념비적인 현대의 만신전이다. 파리 팡테온은 코린토스식 기둥이 늘어선 고전적 파사드와 돔 지붕 위의 십자가가 눈길을 끄는 웅장한 건물로, 생트 즈느비에브 도서관과 파리5구청, 소르본 대학건물이 에워싸고 있는 광장의 중심에서 그 앞으로 펼쳐지는 유서 깊은 파리 대학들과 콜레주 드 프랑스와 같은 프랑스 지성의 산실들과 사르트르 대성당이 있는 시테 섬을 내려다보고 있다.
애초에 교회로 설계되었던 십자형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면 바로 목 잘린 프랑스의 순교성인 생 드니의 선혈 낭자한 벽화로 시작하여 중앙 돔의 천정화와 내부 벽면의 대부분은 프랑스의 수호성인 생트 즈느비에브의 거룩한 생애를 그리고 있으며, 프랑스 혁명의 용사들과 무명전사자들과 무명 예술가들의 기념상, 디드로, 베르그송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에 대한 헌사가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중앙 돔의 앞쪽 제단부에 자리한 프랑스혁명의 결실인 국민의회 기념조형물에 새겨진 비장한 혁명의 구호(“자유롭게 살거나 (싸우다) 죽자”(vivre livre ou mourir)와 후면 상단 앱스의 모자이크 성화 아래 글귀(angellum galliae custodem christus patrie fata docet: 갈리아의 수호천사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가르치는 그리스도)가 묘한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근대 국가와 종교의 타협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앞에 섰을 때 난 어쩐지 혁명의 종교화를 통한 근대 국가의 탄생신화를 목도하는 것 같았다.
제단 아래의 계단으로 내려가면 마주하게 되는 십자형 지하분묘는 그 결정적 이미지를 제공했다. 무덤과 제단을 통합한 그리스도교 성당의 지하납골당 구조를 차용하고 있지만, 생 드니 성당의 지하묘지와 달리 그곳에는 어떤 왕이나 그리스도교 성인들도 안치되어 있지 않다.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제시한 사상가 볼테르와 루소가 나란히 가장 입구에 안치되어 있고, 프랑스 공화국의 창건과 발전에 공헌한 정치가와 군인들,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알렉산드르 뒤마와 같은 문인, 팡테옹의 건축가 자끄 제르맹 수플로, 노벨상을 수상한 마담 퀴리. 피에르 퀴리 부부, 시몬느 보브와르, 콩도르세 등 근대 국가 프랑스가 칭송하는 위인들이 영웅적 시민들로 안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곳에 유해가 안치되려면 엄격한 공적 사은의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안치된 이후에도 국민적 여론과 평판에 흠이 생기면 철거가 결정되기도 하며, 때로는 가족들의 요청에 의해 철거되거나 유해는 가족묘로 이장하고 상징적으로만 안치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와 더불어 이 팡테옹에 안치되는 것은 국장에 해당하는 예우로서, 프랑스의 민족정신과 국가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통합적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을 행사하는 공적 권력을 창출하는 기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는 ‘사적인 ’죽음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고, 친밀한 가족의 일인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기념을 성대한 집단적 의례로 만드는 이른바 대규모 기념사업은 새로운 공동체와 권력의 창출과 무관하지 않다.
파리의 팡테온은 역사적으로도 종교적, 세속적 힘의 상징들이 중첩된 장소에서 종교적 성소와 비종교적 성소가 통합되며 교체되는 아이러니한 운명 속에서 탄생했다. 팡테온은 5세기 프랑스 지역 최초의 그리스도교 왕 클로비스가 세웠던 교회로 시작하여 중세 생트 즈느비에브의 유해와 성유물을 안치하기 위해 수도원 교회로 확장되었고, 다시 가톨릭교회의 공고한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루이 15세의 서원에 의해 프랑스의 구 체제 하에서 착공되었으나, 건물이 거의 완공될 즈음 발발한 프랑스 혁명의 격동 속에서 드라마틱하게 용도가 변경되어 프랑스혁명의 영묘(mausoleum)로서 세속국가 프랑스의 성전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근대국가와 종교의 긴장과 중첩과 교대에 대한 이론들의 증거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며, ‘위인들에게 사의를 표하는 조국’이라는 건물 정면 상단에 새겨진 문구처럼, 새로운 현대의 영웅들이 탄생하고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근현대 국가는 특정한 죽은 자들을 선별하고 공적인 죽음으로 다루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창출하고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래된 종교와 권력의 기제를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