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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25호-그림, 또 하나의 기록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4. 12. 15:51

그림, 또 하나의 기록


news letter No.725 2022/4/12

 



음주가무에 익숙한 80년대 대학 문화 안에서 내가 유일하게 수시로 찾아 들어갔던 곳은 어두운 동아리 방 한구석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줄곧 밑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새겼다. 그 시대에 주로 그렸던 홍성담 판화의 밑그림 초안을 두고 몇 번을 그리다 갖가지 색을 입혀 판화를 찍어내는 일을 반복했다. 묵묵히 손으로 작업하는 일보다 시대의 암울함을 견딜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시대의 기억이 유난히 도드라진 것은 한 달여 전에 치렀던 대선 직후부터였다. 출국을 미루면서까지 참여했던 선거 이후, 급작스레 찾아온 깊은 우울과 좌절, 어쩔 줄 모르는 공황 상태에서 한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손을 놓은 채, 멍해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이 일이 혼자 겪는 일이 아님을 차차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릎 꿇어앉은 인간 예수를 새겼던 나의 손을 아주 자세히 응시했다. 10대 시절에 들었던 사제의 강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를 위해 묵묵히 움직이는 손”이 당시의 잔상과 함께 스치면서, ‘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그림을 놓지 않고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이 마음에게, 마음이 머리에게 신경 회로를 바꾸어 명했다.

그림을 다시 그려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자, 머리속에는 어린 시절 읽었던 안데르센 동화 삽화부터, 그려야지 하면서 놓쳤던 상(象)들이 불뚝불뚝 떠올랐다. 인간의 인지란 하나의 방향이 정해지면, 기억의 밑바닥 깊은 곳에 묻혔던 일들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솟아난다. 생각이 글이 되기까지 문법과 어법의 얼기설기 구성이 엮어지듯이,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는 온갖 생각과 인상과 기억이 손을 통해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수 차례의 습작을 거쳐야 한다. 말 그대로 최후에는 ‘그려진다’는 것,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실 어린 시절에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바로바로 재미있게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렸던 그림이 전국 어린이 미술대회 입상에까지 이르자, 그 일이 그림을 통해 세상과 유기적인 정체성 관계를 형성한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가 그린 그림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내 그림이 다른 그림보다 못하다고 스스로 여겨서였다.

하기야 디자인과 그래픽이 날로 발전하는 시대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이 참 무모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글보다는 이미지를 기억하는 뇌가 조금 더 강하다는 것을 살아온 과정을 통해, 잘 인지하고 있기에, 그 무모하게 보이는 작업을 다시 하기로 했다. 손이 기억을 하게 하는지, 아니면 생각을 담당하는 뇌신경이 손에게 전달되는 힘이 더 발달해서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다가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로 했다. 눈, 코, 입, 얼굴 형태를 분할하여 그리기 시작했는데, 눈을 그릴 때엔, 나도 모르게 흠짓한 기운을 느꼈다. 내 손을 거쳐 태어난 내가 아닌 ‘타자’와의 조우(遭遇)다. 얼굴의 부분 부분을 나누어 그리다보니, 얼굴은 인간의 ‘얼’을 담아내는 ‘굴’이라 표현한 다석 유영모 선생도 떠올랐다.

수차례의 습작을 거쳐 한 얼굴을 그려내고, 내게 익숙한 그려진 얼굴의 눈을 응시하고서야 울컥했던 마음의 혼을 담아낸 손을 인식한다. 그림은 또 하나의 생생한 기록이었고, 나는 그 기억을 들이닥친 현실과의 조우에서 더듬거리며 찾고 있었다.

 

 

 







 


최현주_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종교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문학 서적을 출간하는 Crossing Boundaries Publications 대표를 맡고 있다. (홈페이지: cbpublication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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