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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신작 인어공주(2023)에 관한 몇 가지 생각

 

news letter No.782 2023/6/13

 

 

 

디즈니사의 신작 영화 인어공주(2023; 이하 실사 인어공주’)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그 말들은 긍정적인 것에서 부정적인 것까지 다양한데, 후자가 좀 더 우세해 보인다. 이는 현재 이 영화의 세계적인 흥행 부진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흥행은 영화를 평가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고, 이 영화에도 나름의 장점들이 있겠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가 당시 침체기에 있던 디즈니사를 회생시킨 주역이었던 것과 달리, 이를 영화화한 실사 인어공주가 새로운 침체기 조짐이 보이는 디즈니사를 회생시키는 주역이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실사 인어공주가 비판을 받고 흥행이 부진한 데에는 좀 억울한 면이 있다. 비교하기 쉬운 걸출한 기존의 다른 영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어공주에서 핵심 장소는 바닷속이고, 이는 CG로 구현되었다. 당장 영화 아쿠아맨(2017)아바타: 물의 길(2022)이 떠오른다. 두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CG로 구현된 두 영화의 바닷속 이미지는 화려한 빛과 색 그리고 낯설고 아름다운 온갖 상상적 수중생물들로 가득해 경이롭고 황홀한 경험을 안겨준다. 이런 굉장한 시각적 경험을 해본 사람에게 실사 인어공주의 단조롭고 고요하며 다소 어두운 바닷속 이미지와 현실 그대로의 평범한 수중생물들의 모습은 좀 밋밋해 보일 수 있다. 제작비 규모나 CG 기술력이나 감독과 제작진의 역량에서 별 차이가 없음에도 결과물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관람등급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고, 실사와 원작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아쿠아맨아바타: 물의 길12세 관람가이지만, 인어공주는 전체관람가이다 (미국에서는 PG, 즉 부모지도-전체관람가 등급인데, 이는 영유아를 제외한 7세 이상 관람가를 뜻하기에 보통의 전체관람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낮은 연령대까지를 대상으로 하려면 아무래도 영화를 덜 강렬하고 덜 화려하게 만들게 될 것이다. 실사와 원작의 차이는 더 크다. 아쿠아맨아바타: 물의 길에는 원작이 없다. 아바타: 물의 길, 잘 알려져 있듯이, 오리지널 시나리오 창작 영화다. 아쿠아맨은 원작처럼 보이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있지만, 어느 것도 원작은 아니다. 영화의 아쿠아맨이 만화/애니메이션의 아쿠아맨에서 파생되었고 주요 설정이 비슷하지만, 그는 전혀 별개의 세계인 영화적 확장 유니버스 속의 고유한 캐릭터다. 준거가 될 원작이 없기에, 두 영화가 그려내는 이미지는 제약 없는 무한한 상상력에 맡겨진다. 반면, 원작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영화인 인어공주는 아무리 각색을 하더라도 원작 존중과 보존이 필수다. 실사화 영화는 작품성에서나 흥행성에서나 원작 애니메이션이라는 준거를 피해갈 수 없다. 실사화 영화의 이미지는 원작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로부터 끊임없이 간섭당하며, 그 상상력에는 수시로 제동이 걸린다. 이미지의 상상력에 무한한 자유가 허용된 영화와 태생적 제약이 가해져 있는 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부당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는 감독과 제작진이 고민할 문제이지, 관객이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실사 인어공주와 비교되는 영화가 또 있다. 디즈니사의 또 다른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인 정글북(2016)라이온 킹(2019)이다. 두 영화의 동물 캐릭터들은 모두 CG로 만들어졌는데, 정글북에 모글리 역의 실제 인간 아역배우가 한 명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동물들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만 빼면, 정글북라이온 킹이 그려내는 동물 캐릭터들의 이미지는 매우 비슷하다 (애초에 두 영화의 감독과 제작진이 같다). 두 영화는 CG만으로 자연과 동물의 놀랍도록 생생한 실사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는데, 특히 동물 캐릭터들의 사실적이고 정교한 움직임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두 영화는 애니메이션 실사화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속 동물들은 과장되게 의인화되고, 인간 못지않은 풍부한 감정과 다채로운 표정을 지닌다. 반면 실사화 영화 속 동물들은 의인화보다는 사실성이 강조되고, 감정과 표정도 밋밋하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에서 심바(사자)와 티몬(미어캣)과 품바(멧돼지)가 함께 노래하는 하쿠나 마타타장면은 무척 신나고 즐겁다. 세 친구는 다채롭고 생생한 표정으로 노래하며 경쾌하게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인다. 반면, 실사화 영화 라이온 킹의 같은 대목에서 세 친구는 표정이 미미하고 몸짓도 미약하다. 입을 벌려 노래하지만, 표정은 밋밋하고, 몸을 들썩이지만, 경쾌함이 덜하다.

 

인어공주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유명한 장면으로 주요 수중생물 캐릭터인 세바스찬이 언더 더 씨”(Under the Sea)를 노래하는 대목이 있다 (바다게 세바스찬은 안데르센 원작 동화에는 없었으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새로 추가된 캐릭터다. 바다게의 종은 매우 많으며, 애니메이션과 실사판의 세바스찬들은 종이 다른 바다게다). 세바스찬은 물론 그와 함께 노래하며 춤추는 다른 수중생물들도 모두 과장되게 의인화되어 표정이 다채롭고 몸짓이 경쾌하다. 반면, 실사 인어공주의 같은 대목에서 세바스찬과 수중생물들은 표정이 거의 없고, 움직임도 매우 느리다. 원작과 비슷하게 뮤지컬적 설정으로 구현한 군무 장면은 나름대로 흥미롭지만, 물속에서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경쾌함이 덜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실사 라이온 킹이 사실성을 위해 만화성을 포기했다면, 실사 인어공주는 나름대로 사실성과 만화성을 조화시키려 시도한 편인 듯하다. 물론 그 시도가 충분히 성공적이었는지는 새로 다루어야 할 또 다른 이야기가 될 터이다.

 

실사 인어공주가 비교되는 또 다른 작품으로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드라마 퀸 클레오파트라(2023)가 있다. 두 작품 모두 오늘날의 뜨거운 논제인 PC(정치적 올바름) 이슈를 직접 건드린다. 실사 인어공주3년 전 붉은 머리 백인 여성인 애니메이션 속 아리엘 역할로 갈색 머리 아프리카계 여성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PC 논란에 휩싸여 왔다. 그런데 이런 실사 인어공주가 개봉하기 바로 직전에 아프리카계 여성 배우가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한 다큐-드라마가 공개되면서 두 작품을 둘러싼 PC 논란이 더욱 뜨거워졌다. 물론 두 작품은 차이가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고, 아리엘은 창작물 속의 허구적 인물이다. 퀸 클레오파트라제작진과 그들이 의지하는 비주류 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주류 학계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인종은 논란거리가 아니다. 그녀는 그리스인이고,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를 부정하고 아프리카주의를 내세운다면 사이비학문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어공주는 허구적 인물인데도 왜 이토록 PC 논란이 뜨거운 걸까. 이는 오늘날 인종, 젠더, 성향 등의 다양성과 차이를 둘러싼 PC 이슈를 제대로 파고들어야만 풀 수 있는 복잡한 사안이고, 여기서는 더 파고들지 않겠다. 다만, 흥미로운 점이 좀 있다. 실사 인어공주가 과도한 PC주의라고 비판하는 이들은 대개 자신은 절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들은 자신이 문제 삼는 것은 작품성과 개연성이지 배우의 인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변명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인종차별 혐의로부터 자유로운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한편, 실사 인어공주PC 전략이 과연 바람직하고 충분한지도 역시 진지하게 되물어야 할 문제다. 아리엘은 단순한 허구적 캐릭터가 아니다. 아리엘은 스노우화이트(백설공주)에서 모아나까지 여러 공주/족장녀들과 함께 디즈니 프린세스라는 거대한 브랜드를 이루는 열두 명의 캐릭터 중 한 명이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는 디즈니 프린세스에 속하지 않는데, 이는 그들이 독자적으로 거대한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엘사와 안나도 디즈니 프린세스들과 점차 많은 것을 함께하고 있다). 디즈니 프린세스들은 각종 트랜스미디어(미디어프랜차이즈) 콘텐츠와 테마파크와 완구인형 등에서 실제로 살아있다. 그들은 분명 허구적 캐릭터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실존 인물 못지않은 사실성을 지닌 캐릭터로 존재한다. 한편, 아리엘은 디즈니 프린세스들 중에서도 공주와 왕자가 결혼하여 이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한 뻔한 해피엔드를 지닌 부류에 속한다. 슬프고 가슴 아릿한 안데르센 원작 동화를 심하게 훼손한 대가로 획득한 해피엔드 말이다. 디즈니 프린세스들의 존재론은 허구와 사실, 상상과 실제, 신화와 현실, 전통과 혁신, 상투성과 새로움 사이의 어딘가에 걸쳐 있다. 허구적 캐릭터 아리엘과 역사적 인물 클레오파트라를 둘러싼 PC 논란이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해지고, 서로 갈라지면서도 자꾸만 다시 겹쳐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윤성

한신대 디지털영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공저로 〈종교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역서로 〈신화 이론화하기〉, 논문으로 〈종교학과 문화비평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전망〉, 〈브루스 링컨의 방법 테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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