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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96호-성스러운 ‘벗음’ - 또 다른 절망과 희망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9. 19. 16:34

성스러운 벗음’ - 또 다른 절망과 희망

 

news letter No.796 2023/9/19

 

 

 

 

20221126, 호주 시드니의 본다이 비치(Bondi Beach)에서는 2,500명의 단체 누드 촬영 작업이 이루어졌다. 한국 언론에서도 이 기사는 여러 매체에서 보도된 바 있다. 보도의 전반적인 내용은 호주의 피부암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미국의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Spencer Tunick)2,500명의 지원자를 모집하여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누드 촬영 작업을 한 것이다. 2,500의 의미는 매년 호주에서 발생하는 평균 피부암 사망자 수를 의미한다. 동 행사를 기획한 비영리 자선 단체 스킨 체크 챔피언스(Skin Check Champions)는 사진작가 스펜서와 함께 정기적인 피부암 검진을 장려하는 의도에서 본 행사를 기획했으며, 행사 참가자들은 자발적으로 전국적인 피부 검사 시범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본 행사는 단순한 이미지 작업을 넘어 피부암과 관련된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참가자들의 벗음은 피부암의 높은 발병률에 대한 경각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자신의 몸으로써 피부 건강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벗음'이라는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 참가자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 개별적인 경험을 나누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표현했다.

 

2022년 당시, 호주 현지에서 이 소식을 접한 나는 (문화적 충격이 아니었음에도) 서구에서는 질병의 아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렇구나 하는 어설픈 공감을 했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 의도를 이해한다고 해도 2,500명 지원자의 자발적인 지원 동기에 대해서는 과연? ? 어떻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들은 왜 함께 벗기로 했는가? 피부암 치료를 위해 나체로 검진받을 권리는 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시 한국 언론에서는 본다이 비치 누드 촬영을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진풍경으로 보도하는 듯했다. 호주에 거주하는 나에게도 2,500명이 이룬 인간 나체의 군집은 현실이 아닌 영화 장면 같았다. 내게도 한국 사회에서 늘 접했던 나체, 나신은 음란물이나 성매매, 성범죄 등과 연관된 불온한 그림자가 의식 안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유튜브에 등장하는 간디와 어린 소녀의 동침을 성적 문란으로 묘사하는 도발적인 썸네일은 한국에서 성장한 이들의 판단과 관점으로는 당연할 수 있겠다. 그러나 수년 전 인도의 거리에서 나신으로 걸어가는 자이나교 승려와 그에게 정성으로 축성을 비는 인도인들을 보았을 당시, 나는 벗음에 대한 적잖은 사유의 자극을 받았다. 자이나교에서는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른 영적 스승인 구루만이 모든 옷을 벗을 수 있다. 만일 구루 중에 한 조각의 천이라도 거친 이를 만난다면, 그는 아직 수행의 단계에 있는 수행승을 의미한다. 채식과 엄격한 수행을 거쳐서 이르는 완전한 벗음의 단계를 글이 아닌, 현장에서 마주한 당시에 발가벗은 구루에게 최고의 존경과 축성을 표하는 인도인의 모습은 종교학을 전공한 나에게마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인도를 여행한 후에 돌아온 한 한국인 여성이 인도 여행담을 방송에서 토로한 적이 있다. 이 여성에 의하면, 여행 중에 만난 구루에게 자신이 약혼한 사실을 알리자, 구루는 약혼자의 반지를 달라고 청한 후에 자신의 성기에 끼웠다. 그 여성은 당시를 회상하며, 더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위험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여성의 회고담이 끝나자 당시의 사회자는 인도 사회의 성범죄율과 함께 종교계 인사의 부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방송을 보았을 당시, 난 한국 여성이 느꼈을 당혹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도 구루의 이 기이한 행위는 외국인 여성에게 혼인과 출산을 기원하는 축성의 예를 행한 것이다. 자이나교의 승려는 일생 금욕하며 수행하며, 이로써 영적인 힘을 갖는다. 그의 몸의 모든 부분은 성화된 존재이며, 살아있는 생명에게 축성을 베푼다. 간디가 어린 소녀와 나체로 동침한 것도 인도의 수행 전통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의 수도승이 자신의 욕구를 정화하고 검증받는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관습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표면의 도덕과 사회적 가면, 타자에 대한 투사와 무자비한 공격, 이에 대한 방어 등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잠재적인 범죄자일 뿐이며, 본다이 누드 비치의 광경 또한 하나의 컬트(cult) 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사회적 현상과 다른 문화적 양상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도 다른 맥락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또한 그 맥락과 관점을 허용하는 사회가 의식의 진화를 이루어가는 공동체다.

 

인도에서 목격한 나신’(裸身)이 종교적 상징을 함유한다면, 호주에서 목격한 벗음은 좀 더 현실적이고, 죽음과 질병 앞에서 평등한 인간의 커다란 외침을 보는 것 같다. 호주 본다이 비치 누드 작업은 자연 앞에 벌거벗은 인간이 겪고 있는 질병과 그 질병에 대해 치료받을 권리가 예술가와 지원자의 공동 작업을 통해 재창조되었다. 본다이 누드 비치 행사 이후,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지속적인 피부병을 앓게 되었다. 단순 알레르기로 생각했던 가려움이 몸 이곳저곳을 옮겨갔다. 발바닥의 가려움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도 처음 겪어보았다. 한밤중에도 몸의 이곳저곳을 긁다가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었고, 피부에 닿는 옷감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수개월 동안 의사에게 처방받은 크림을 늘 지니고 다니면서 몸의 이곳저곳에서 가려움증이 유발하면, 곧바로 문대어 발랐다. 알레르기는 여름 내내 지속되었고, 여름이 지난 이후에는 눈 주위의 붉어짐과 부종으로 옮겨가며 증상이 지속되었다. 반년 이상 지속되는 피부질환을 겪다 보니, 바다 모래사장 위에서 모든 옷을 벗어버린 지원자의 동기와 심정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피부질환을 경험했거나, 피부암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몸소 피부병을 앓고 나자 호주가 피부암 발병율 1위 국가라는 통계 수치가 몸의 감각으로 읽어지기 시작한다. 또한 그들의 벗음을 통한 내적인 욕구의 표출이 하나의 성스러움으로 인식되어 간다.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원초적 모습인 벗음을 통해 서로 일면식이 없는 이들이 모여 하나의 예술 행위를 이룬 본다이 누드 비치는 피부병에 대한 일상적 고통과 함께 종교학의 개념적 이해를 떠오르게 했다. 세계 여러 곳에 존재한 생명체의 근원으로 돌아가, 죽음과 고통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한계 안에서 섞일 수 없는 존재를 한데 모은 공동 출연작이 그간 내가 느껴온 종교학의 속성과 많이 닮아 보였다.

 

본다이 누드 비치 행사 이후, 2023824일에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폐기물 방류가 시작되었다. 이 사건으로 향후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계심이 인류의 의식 안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경계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국가 간의 동맹과 안보 이익에 따라,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불온한 의식이 되어버렸다. 만일 어느 집단이 후쿠시마 바다 앞에서 집단적인 나체 시위를 한다면, 불온한 집단의 정치적 움직임으로 파악될 것이다. 그러한 가상의 사건에 성스러움은 곧 생명을 내건 정치적 충돌로 일단락되며, 인간의 벗음을 통한 집단 의지의 표출은 또다시 불온한 영역으로 나락 할 것이다.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은 본다이 비치 나체 작품을 촬영할 당시, 100대의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것과 같은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폐기물을 안은 바다의 소리는 누구도 듣지 말아야 할, 들려도 들리지 않는 소리가 되어야만 하는 웃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인간 무의식의 공통된 서사를 만들어갈 자유를 상실한 시대에서 정치 이데올로기의 일환으로 표출되는 자유는 인간의 고통과 자연의 외침을 묵살하는 자유를 말하는 것인가.

 

신화가 살아있는 시대를 넘어, 아픔의 성스러움을 허용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신음을 무음 처리해야만 하는, 그래도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시대가 본다이 누드 비치 행사 이후 채 1년도 되지 않아 와버린 것이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해저 깊은 곳에서 피부질환을 앓기 시작할 해양 생물체는 어떤 벗음을 통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인가. 인간의 성스러움이 사그라지면, 지금까지 생명으로 존재했던 바다 생물의 성스러운 벗음은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참조

ABC News, Bondi Nude Beach https://www.youtube.com/watch?v=8086A-ePDpA

허핑포스트, "피부암 경고 위해"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이 해변에서 공익 누드 사진을 찍었는데, 무려 2,500명이 모델로 자원했다“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205066)

 

 

 

 

 

 

 

 

최현주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종교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호주에 거주하며 “호주 원주민의 종교문화”, “신화의 변용으로 바라보는 K-드라마” 등을 주제로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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