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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28호-목련꽃 그늘 아래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4. 4. 30. 18:49

목련꽃 그늘 아래서

 

news letter No.828 2024/4/30

 

 

 

* 이 글은 <종교문화비평> 45호(2024년 3월 31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 입니다.

 

 

봄이 오기는 올 모양이다. 전방의 장병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강원도 철책선 근방에는 아직 눈이 내린다지만 머잖아 그곳에도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며칠 사이에 매화가 피기 시작하여 은은한 꽃향기를 퍼뜨리고 있다. 본지가 독자들을 찾아갈 때쯤이면 완연한 봄소식도 함께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본지의 특집에 관하여 간단히 경과 말씀을 올리겠다. 이번 호의 특집 주제는 김효경의 종교연구와 식민지 아카데미즘이다. 지난 2023111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정기 심포지엄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학술대회가 처음에 기획된 것은 2017년 민속원이라는 출판사에서 간행된 김효경 저작집에서 기인한다. 엮은이 전경수 선생은 저작집 제1권에 실린 해제를 이런 말을 맺었다. “김효경은 기본적으로 종교학자로서의 자세를 균형 있게 갖추고 있음에 대해서도 중후하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김효경의 업적은 인류학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종교학적인 입장에서도 집중적으로 조명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그럴 경우, 필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김효경에 관한 또 다른 문제의식들도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학자 전경수 선생이 애써 김효경의 저작들을 수집하여 영인본으로 내놓으며 한국의 종교학자들에게 분발을 촉구한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이에 화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두 분의 선배 종교학자들이 김효경에 관한 단평을 내놓은 바 있어서 참고로 삼을 수 있었다. 먼저 김종서 선생이 한말, 일제하 한국종교 연구의 전개(1993)라는 논문에서 김효경을 짧게 소개하였다. 이어서 장석만 선생은 한국 종교학: 성찰과 전망(2021)에서 아예 한 절을 할애하여 김효경을 다루었다. “김효경은 당시 일본 종교학의 연구 경향을 체득하여 연구 활동을 펼친 학자이고 조선 종교에 대한 글을 다수 발표하였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종교학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장석만 선생의 이러한 언명은 김효경에 관한 종교학자들의 연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이처럼 한국 종교학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 학문적 정신과 연구의 계보를 찾아갈 때 김효경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인물임이 선배 종교학자들에 의해서 제기되었으니 이제 후배들이 나설 차례가 되었다.

 

전경수 선생이 촉발하고 김종서, 장석만 선생이 연구의 지남이 되어준 덕분에 김효경의 종교 연구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심포지엄의 주제로 삼을 수 있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섭외하여 연구 모임을 꾸리고 심포지엄을 준비하였다. 본지에 실린 다섯 편의 특집 논문은 모두 심포지엄에 발표되었던 글을 다시 조금씩 다듬은 것들이다. 수고하신 필자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김효경 연구를 위한 예비적 검토: 연구 이력과 독서목록을 중심으로는 특집의 서막을 여는 논문이다. 일단 김효경에 관한, 이른바 사실들을 정리하였다 그의 이력, 저작 목록, 독서목록이 작성되었다. 김효경 연구의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 김효경의 생애와 저술에 관하여 기존 연구의 공백도 메우고 오류도 바로잡았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새로 발견된 김효경 저술도 목록으로 제시 하였으니, 기존에 나왔던 저작집을 보완하는 의미도 클 것이다. 이 논문이 역점을 둔 부분은 김효경이 어떤 글들을 읽으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로 어떤 글들을 남겼는지를 살핀 것, 그의 연구 관심이 변화한 궤적을 그린 것, 나아가서 연구의 외연일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질곡일 수도 있을 교육 이력을 추적한 것 등이다. 저자는 파편적인 사실과 견해를 어수선하게 뿌려 놓았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김효경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충분한 학술적 성취라고 평가하고 싶다.

 

김효경의 한국 신종교 연구 시각 고찰은 한국 신종교에 대한 김효경의 시각을 살핀다. 사실 김효경이 한국 신종교 관련 글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다. 게다가 김효경의 시각이 해방 이후 한국 종교학의 신종교 연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는 천도교, 시천교, 훔치교 등 신종교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천도교는 민족운동의 주도권을 두고 사회주의 세력과 경합할 정도였다. 그런 만큼 김효경도 신종교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김효경의 신종교론을 분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저자가 선택한 것은 당시 한국 신종교 연구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던 이능화, 무라야마 지준과 관련지어 김효경의 신종교 연구 시각을 규명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이 생산적일 수 있는 이유는 김효경의 종교학이 담겨 있었던 근대 학술의 네트워크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조선과 일본, 양쪽에 발을 담그고 있던 김효경이 식민지 조선의 토종 학자 이능화, 그리고 동경제대를 졸업한 제국 일본의 관방학자 무라야마 지준과 일치하는 지점, 갈라지는 지점 등을 드러내는 것은 한국 종교학의 초창기 모습을 살피는 데 매우 적절한 접근법이다.

 

무당이즘, 점복, 의례: 김효경 무속 연구의 주제들은 김효경의 종교연구에서도 가장 분명하게 두드러지는 무속 연구를 다룬다.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20세기 초 당시 종교학의 이론적 관점과 연구 방법이 김효경의 무속 연구에 개입하고 있는 방식이다. 그래서 김효경의 독특한 조어 무당이즘이 깔고있는 샤머니즘 이론 일반, 김효경의 점복 개념이 기도, 주술 등 유사한 범주와 맺는 관계, 방법론의 측면에서 아키바 아카마츠나 손진태의 현지 조사나 의례연구가 김효경의 무속 연구에 반영된 측면 등을 분석한다. 이 역시 식민지 아카데미즘 속에서 김효경의 종교 연구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점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연구라 하겠다.

 

중국의 타자화와 김효경의 도교 연구는 제국 일본의 국체 관념, 중국과 조선의 타자화라는 다소 예민한 주제를 제기한다. 김효경은 중국 도교 문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중국 도교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하위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저자는 김효경의 중국 도교 관련 서술이 신선, 향락, 현실도피, 아편 중독이라는 스테레오타입으로 귀결되는 경로를 밝혀주었다. 학문의 역사를 다루는 묘미는 일방적인 찬사와 의미 부여를 넘어서 빛과 그림자를 모두 조망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논문을 통해서 김효경의 종교 연구가 지니는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을 김효경의 개인적인 한계라고 단정하지 않고 당시 학술의 지형으로 읽을 때 새로운 연구를 촉발하게 될 것이다.

 

1930년대 김효경의 조선 풍수신앙 연구에 관한 비평적 검토는 이번 호 특집을 마무리하는 논문이다. 김효경은 왜 조선의 풍수신앙에 관심을 가졌을까? 나아가서 김효경이 많이 참고하였던 무라야마 지준은 왜 조선의 풍수신앙에 관한 책을 썼을까? 저자는 식민정책학이라는 범주로 통칭할 수 있는 조선총독부의 옛 조선 관습에 관한 조사 그리고 식민지 관변사학의 조선사 편찬과 모종의 관련이 있다고 본다. 확실히 풍수지리 관념에 입각한 양택과 음택에 익숙하지 않았던 일본인들에게 조선인들의 살 곳 찾기, 묻을 곳 찾기는 기이한 관습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식민지 시기에도 여전히 풍수신앙은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식민 지배를 위해서 필요한 연구였을 것이다. 그러면 김효경의 연구는 무라야마의 연구와 차별점이 없다는 것일까? 저자는 이 지점에서 김효경이 풍수신앙을 효도 관념과 연결하거나 동기감응론으로 해석한 것을 특징적인 면모라고 바라본다.

 

본지의 이번 호 특집으로 종교학자 김효경을 한국 종교학의 역사 속에 자리 매김하는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김효경에 관한 더 많은 연구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김효경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조선으로 돌아온 뒤부터 한국전쟁 발발로 행방불명되기까지 썼을 것으로 짐작되는 한국어로 된 저술 원고들도 발굴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김효경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하였는지도 밝혀졌으면 좋겠다.

 

일반 논문은 세 편이다. 먼저 근대적 학술 범주로서 풍수학의 정립: 핫토리 우노키치의 <풍수론>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중국학자 핫토리가 남긴 풍수 관련 저술을 분석한 논문이다. 핫토리가 중국의 풍수신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 연원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풍수와 도덕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를 밝혔다. 일본을 대표하던 중국학자 핫토리의 풍수론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로서 손색이 없다. 이와 더불어 저자는 핫토리의 학문적 영향을 논하면서 김효경이 풍수의 사상적 측면에 관하여 서술할 때 핫토리의 저술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본지에서는 이 논문을 일부러 김효경의 조선 풍수신앙에 관한 논문 다음에 실리도록 배치하였다. 두 논문은 서로를 보완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독자들께 두 논문을 함께 읽으시기를 권한다.

 

부묘를 통해 본 종묘 이해는 종묘에 새로운 신주를 봉안하는 의례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의례의 절차, 의례 공간과 의례 물질들, 그리고 핵심 의례에 뒤따르는 여러 부가적인 의례들을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종묘에 새로운 신주를 모시는 경우는 대부분 돌아가신 국왕의 혼령을 신주에 실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공간에서 죽은 사람들의 공간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저자는 혼령이 인간의 모습을 완전히 벗고 조상신으로 거듭나는 통과의례라고 규정한다. 오랜 기간 유교의 종교적 성격을 연구해 왔으며, 특별히 조선 왕조의 왕실 관련 문헌 자료를 풍부하게 섭렵한 종교학자의 원숙한 연구 성과를 접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인종, , 공간의 종교사: 나치즘 시기 종교연구가 야콥 빌헬름 하우어의 사례는 하우어라는 인도학자 혹은 종교사가의 저술과 활동을 중심으로 나치즘 시기에 전개된 인종과 종교 논의를 다루고 있다. 특정 민족이나 인종에 적합한 종교가 따로 있다는 주장, 독일은 유대기독교의 유산에서 벗어나서 인도 아리안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 이런 언술들은 극단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처음부터 비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다루는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는 하우어의 주장들을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아마 나치즘 시기의 독일에서 진행된 종교학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하우어가 아닌, 다른 누구, 또는 다른 어떤 언술들을 통해서도 독일 종교학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유럽에서 인종과 민족주의 문제는 여전히 뜨겁고, 이를 깊이 들여다보려면 종교라는 매개항을 거쳐야 하는데 하우어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번 호의 설림으로 원로 종교학자가 쓴 초월과 예술의 만남과 대화는 그 여정을 마치게 된다. 마지막 대담의 제목은 초월은 맥락적이다: 음악학자 정경영 교수와의 만남이다. 그러니까 조각가, 건축가에 이어서 음악학자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초월은 음악 현상과 어떻게 만나는지, 음악학자는 음악이라는 현상 속에서 겪는 초월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묻고 답변을 듣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 대담에서는 지난 호의 대담들보다 더 강한 긴장이 느껴진다. 음악학자는 종교학자에게 공손하지만, 할 말은 다 하고 있다. 그러니 종교학자는 쫓아가고 음악학자는 자꾸 달아난다. 결국 종교학자는 음악학자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를 포기하고, 음악학자의 말을 경청하는 길을 선택한다. 아마 이런 것을 두고서 후생가외라고 하나 보다. 아무튼 숨바꼭질 혹은 대위법으로 읽으면 흥미진진한 글로 느껴질 것이다.

 

주제 서평으로 상재하는 글은 길희성의 불교-그리스도교 비교신학: 보살예수를 중심으로이다. 종교학자 길희성 선생께서 202398일 우리 곁을 떠났다. 1943년에 태어나셨으니 향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하신 것이다. 한국 종교학의 거목이었던 길희성 선생의 학문 세계를 어떻게 기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분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저자에게 연락하였다. 길희성 선생의 학문은 넓고도 깊으니 어떤 분야든 조명할 필요가 있겠지만, 불교 사상과 그리스도교 사상의 비교 연구에서 그분이 세운 학문적 업적을 주제서평이라는 방식으로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흔쾌히 수락하고 또 주어진 기한에 맞추어 옥고를 보내 주신 저자에게 감사 말씀 올린다. 서평의 내용을 따로 요약할 필요는 없겠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올 9월에 1주기를 맞아 길희성 선생을 기리는 학술 행사가 강화도 심도학사에서 열릴 것이라고 하니, 길희성 종교학에 관한 풍성한 연구 성과들이 발표되기를 기원한다.

 

이제 마무리 인사를 드릴 시각이 되었다. 이번 호를 내보내는 것으로 편집위원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돌아보면 부족했던 점이 많다. 능력이 모자란 탓이다. 자기들끼리는 온정이 넘치면서 남들에게는 가혹하다는 평을 받을 짓은 하지 않았는지 늘 반성하였다. 만약 그런 점이 있었다면 전적으로 편집위원장의 잘못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학술지 종교문화비평을 사랑해 주시는 많은 독자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북미 종교학계에 AAR과 함께 MTSR이 있다면, 한국 종교학계에는 종교연구와 종교문화비평이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만큼 종교문화비평은 가차 없이 선명한 종교학 연구를 표방하고, 젊고 패기가 넘치는 연구자들이 도전적인 시도를 얼마든지 펼칠 수 있도록 지면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문화비평이 지향하는 학문적 방향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으리라 믿는다.

 

 

 

 

조현범_
종교문화비평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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