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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29호-불교와 물질의 이율배반(二律背反)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4. 5. 7. 15:54

불교와 물질의 이율배반(二律背反)

 

news letter No.829 2024/5/7

 

 

 

20여 년 전 <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 법인으로 그 기틀을 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졌던 선망(羨望)과 경의(敬意)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다. 또한 그 사이, 이를테면 학풍이 다른 불교학에 기초한 필자의 공부에도 여러 모로 신선한 자극을 주고, 학습의 영역을 확장교차시켜 보도록 의욕을 부르는 곳이 바로 한종연이었다. 소위 연구자로서 민망한 고백이지만, 종교학에서 새로운 쟁점이 소개될 때 그 독해(讀解)가 쉽지 않은 글들도 종종 여기서 만나게 되고, 그래서 더욱 촘촘한 읽기에 도전하도록 이끌린다.

 

우리에게 비교적 근년에 제기된 물질종교라는 개념어가 그 중 하나이고,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종교문화비평41(20223월 발간)의 특집주제로 물질종교가 지면에 오르기까지, 성체(host)와 성유물(relic)열리는 성모상(Vierge Ouvrante)제의(祭儀)와 음식과 몸성염(Holy Salt)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Theory)객체 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Ontology)사물의 행위성(Agency of Things)엑스-보토(ex-voto)아브젝트(Abject) 등 일련의 생소한 주제들을 대강이나마 공부해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동() <연구소> 연구원들의 역량 덕분임에 우선 감사할 따름이다.

 

종교학에서 믿음과 내면에 중점을 둔 개신교적 종교 개념에 대한 재고찰, 사상과 경전 중심의 종교연구 성향에 대한 비판 등에 이어서 나타난, 종교의 물질적 차원이라는 것에 대한 조명1)이라는 해설에 수긍이 간다. 종교적 신념 - 텍스트 - 물질이 서로 여하 간에 물질적 차원의 종교연구라는 과제의 타당성에는 충분히 동조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갈 길이 막연하다. “감각과 물질 · 장소 · 공간 등에 집중하는 종교학 논문들은 2010년 이후 국내에서도 꾸준히 나오지만, 서구의 물질종교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자신의 접근방식을 맥락화 하는 연구가 부재한 상황2)이라는 지적에 주목하고, 종교의 물질적 차원을 조명하기에 앞서서 연구자의 앵글(angle)을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불교계 연구자가 기본적으로 물질은 공[色卽是空]’이라는 특유의 관점을 견지하자면, 혹시 물질불교라거나 불교의 물질적 차원이라고 대입(代入)하는 서술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불교의 존재론은, 모든 사물에 독자적인 실재성이란 애당초 성립될 수가 없다는 인식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도 차별이 없는 구성요소(四大: 地水火風)가 관통하고, 주체와 객체가 어느 일방으로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본래 서로 의존하고 서로 관계하는 연기법(緣起法)에 의해서 만물만사가 생성 혹은 소멸되는 것이라고 본다. 대개 그와 같은 방향으로 사물을 조망하기 시작함으로써 경전과 사상에 치중하는불교환원론이 나올 수도 있고, 일반인의 현실적 보편경험과 교조(敎祖)의 초월적 특수경험 사이에서 중요하고 거대한 괴리(乖離)를 도외시하는 뜬구름잡기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다.

 

                         아무리 사소한 법(法)이라도 자성(自性)이 공(空)하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이 자성이 공함은....

                         보살이 지은 것도 아니요, 여래가 지은 것도 아니며.... 부처님께서 계시건 계시지 않건

                         그 성품은 항상 공하나니, 이것이 곧 열반이니라 (『대반야바라밀다경』 권397, 제76 무동법성품)

 

그런데 과거로부터 출가재가의 불자들은 비록 물질이 본래 공()이라고 인식하였더라도 한편으로 어느 사찰에나 흔히 있는 법당불탑불상범종기타 불교적 장엄물(莊嚴物)들을 끊임없이 조성하여 왔다. 각종 불사(佛事)와 불교의례에서 특히 재가불자의 축원과 공양물을 바치며 동참하게끔 공양물과 재물 보시의 공덕에 대해서 여러 경전과 법회가 가르쳐 온 것이다. 잠시 불교 역사를 소급해보자면, 초기불교 출가자들은 마을사람들이 주는 대로 음식을 얻고, 최소한의 옷과 약재방사(房舍)만으로 살아가는 청빈평등의 공동체였지만, 점차로 출가자들이 부유한 국왕과 자산가들로부터 정치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양(利養)을 얻었다. 그리하여 출가공동체에 재물이 늘어나는 문제와 함께, 공양물이 특정 출가자에게만 주어지거나, 혼자만 공양을 받으러 마을로 출타하거나, 오직 공양물을 탐하여 제자를 거느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설법을 하거나, 공양물의 여유분을 남몰래 비축하는 등등으로 출가공동체의 규율을 어기는 일들이 생겨났다(범망경2, 10 로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주로 불교계 현상과 불자들의 경험에 대한 관심이 큰 연구자로서, 서구의 물질종교 담론을 접하기 전부터 품어온 질문들이 있다. 불교의 가르침과 불교계의 실행력 사이에는 심각한 편차가 있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해묵은 이 문제의식이야말로 타 종교학자들의 입지와는 좀 다른 맥락에서 생겨나온 것 같기도 하다.

 

첫째, 공양물과 무소유의 원칙에 대한 점검. 불교경전은 도처에서 한편으로는 출가자와 그 공동체에게 무소유를 가르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재가자로 하여금 출가자와 그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양보시하도록 가르친다. 얼핏 이율배반적인 가르침이지만, 당연히 서로 충돌하지 않을 길은 있다. “이양(利養)이란 두려운 것, 적게 취하면 근심이 없다”(법구경권하, 33 이양품)는 가르침대로 사중(寺衆)에 필요한 만큼의 공양물만 받거나, 받은 공양물의 잉여가 생기는 만큼 그대로 어려운 이웃주민들에게 되돌려 보시[회향]하면 멋지게 해결될 일이다. 과연 현재 사찰들의 잉여 재물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실상을 알고 싶다.

 

둘째, 공양물 사용의 평등성에 대한 점검. 앞서도 인용했듯이, 불전에 올린 공양물과 보시는 승가구성원 모두를 위해 평등한 공여(供與)이어야 하고, 그 안에서 누군가의 독점이나 축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규율들은 오래 묵었어도 개정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서 공동체정신을 담보하므로 제대로 지켜져야 할 텐데, 최근 언론을 통해서 들은 한 가지 소식은 너무나 놀라웠다. 청년전법을 위한 기금이라고는 해도, 도대체 어떻게 해서 출가자 개인들이 수억 원, 수십억 원을 보유하다가 내어놓게 되는지, 감추어진 사정이 궁금하다. 해당 종단의 상당수 출가자들은 거처가 불안정하고 간병치료비를 걱정하는데도 그 심각한 부조리가 묵인되고 있다.

 

셋째, 불자들의 수행과 물질관 점검. 혹시 기독교의 대형교회를 선망하는 것인지, 사찰들의 장엄물이 갈수록 크고 화려해지는 감이 있다. 아마 거기에는 불자대중의 공양 수준과 물적 취향도 반영되는 것일 터이다. 불교야말로 소박함으로 더 충만해지는 삶을 알리는 가르침인데, 화려한 장엄물이 불자들의 수행과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알고 싶다. 지금은 어느 면에서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불자들의 정성스런 공양이 사찰의 단순한 재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찰의 상징물은 자본주의적으로 화려한 소비재가 되지 않도록, 엄정하게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제 곧 <부처님 오신 날>이다. 사찰마다 연중에 가장 성대한 행사로 기획을 하였겠지만, 남 보기에 화려하지 않아도 신실(信實)한 기념일이 되면 좋겠다. 모쪼록 진정으로 불교적인 봉축일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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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화선, 〈봉헌물과 물질종교: 엑스-보토와 사물의 행위성〉, 『종교문화비평』 제41호, 2022, 58쪽.

2) 위의 글, 59쪽 각주 9)의 내용.

 

 

 

 

 

 

이혜숙_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국제참여불교네트웤(INEB) 집행위원
논문으로 <종교사회복지의 권력화에 대한 고찰>, <한국 종교계의 정치적 이념성향 연구를 위한 제언>, <시민사회 공론장 확립을 위한 불교계 역할>, <구조적 폭력과 분노, 그 불교적 대응>등이 있고, 저서로 《아시아의 종교분쟁과 평화》(공저), 《임상사회복지이론》(공저),《종교사회복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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