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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63호-두 연구기관과의 인연을 회상하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5. 1. 1. 14:46

두 연구기관과의 인연을 회상하며

 

 

news letter No.863 2024/12/31

 

 

 

 

 

 

얼마 전 나는 한국불교연구원 5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한 편의 글을 발표했다.1) 이 연구원과 나의 인연은 깊다. 요즘 유행어처럼 말하는 내 인생과 얽힌 하나의 카르마()이었다. 나를 학문적으로 개안(開眼)시켰고 종교학/불교학으로 방향도 잡게 해 주었다. 연구원 자체가 그랬을 리는 없고 그곳의 프로그램과 창설자인 불연 이기영 교수의 학문적 영향 때문이었다. 나는 학문적 정향(定向, orientation)에 관한 한 이 연구원의 이념이나 현장에서 일탈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파행을 거듭한 우여곡절의 긴 과정을 겪은 연구원이었지만 말이다.

 

한국불교연구원은 서구적 방법론으로 불교학을 이끄는 동시에 우리 문화의 틀의 하나인 사찰과 한국 승려에 대한 연구로 한국의 사찰시리즈를 발주시켰다. 좀처럼 하나로 묶을 수 없고 상반되기까지 하는 서구적 불교학 방법론동양적 전통의 유물인 사찰/승려를 함께 추구한 것이다. 창설자인 이기영과 우리 연구원들2)은 급했었던 듯하다. 근대불교학의 성과를 빨리 흡수해야 하니 서구 불교학의 이해는 급선무이었지만, 내 문화의 뿌리인 한국의 사찰 역시 급히 정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외형상 남의 새로운 것과 내 것의 해묵은 유산이란 두 마리 토끼를 추적한 셈이었다.

 

한국불교연구원의 역사는 나의 학문의 경력과도 상응한다. 흔한 말로 나만의 학문적 짝사랑일 수 있겠지만 그곳에 실려 학술 활동을 한 나를 생각하면 이 연구원의 우여곡절의 모순적 행태는 그대로 나 자신이기도 하다. 50주년 기념행사는 언필칭 반백 년이고 그곳에서 지난 역사에 대한 주제를 발표했다면 나와 이 연구원의 상관관계는 기막힌 얽힘일 수밖에 없다.

 

심포지엄의 주제로 삼은 불교의 미래, 불자의 길은 난감하게 보일 정도로 포괄적이었다. 일견 진부한 주제로도 비친다. 오늘의 불교 현장과 현실이 하도 어수선하니 미래에 대한 희망적 전망을 시도하는 의지로도 비친다. 우리는 종교영역을 소중히 여기나 역설적으로 이 영역으로부터 소원(疏遠)하게 된 종교인/학자들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된다. 그동안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진지하게 다루어 왔던 세속주의탈종교가 피할 길 없는 우리의 종교현장이다. “세속주의란 우리가 헤엄치는 물”(Charles Hirschkind)이란 언표는 앞으로 종교학/불교학이 우리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현장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고 어떤 행위가 이에 상응할 수 있는지를 물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나의 학문적 형성기의 한국불교연구원을 회상하는 지금, 우리 한국종교문화연구소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스스로를 재수(再修)하는 학자로 치부한다. 집안 사정으로 훌쩍 미주 이민을 떠났다 다시 학계로 복귀했고 이 재수의 복학생을 받아들여 준 곳이 바로 한국종교문화연구소다. 나로서는 두 번째의 학문적 모태이기도 하다. 문자 그대로 부활(復活)”을 가능케 한 장소이기도 하다. 학자란 홀로 가는 황야의 이리같은 존재이고 불경(佛經)외뿔소일 수밖에 없지만 외뿔소와 이리들도 무리를 짓는다. 그러나 종교에 관한 연구는 광범위하여 무리를 짓기도 힘들다. 무엇보다도 종교별로 나누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러나 신통하게도 이 연구소는 종교문화란 표제로 하나의 학술단체를 이룩하였고 공동연구를 펼쳐 왔다. 무수한 종교, 그리고 이에 딸린 수많은 전통, 거기서 파생한 갖가지 종교이론의 전개를 생각하면 다양함과 혼잡의 표본이 종교 연구라 생각된다. 그런 모든 잡다함과 다양함을 껴안고 함께 해 온 것이 우리 연구소라 생각된다. 포용의 표본이랄까? 잡다함, 다양함을 그대로 인정하며 어떤 이념적 통일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이런 학문적 정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만하다.

 

나는 일찍이 우리 연구소를 돌국 끓이는 솥으로 비유했다. 솥 가운데 돌 하나를 놓고 한 사람씩 나름의 식재료와 양념을 치면 훌륭한 돌국이 된다는 민화(民話). 우리는 절기 따라 학술회의를 개최하며 학술지를 편찬하며 돌국 한 그릇씩을 끓여 냈다. 복학한 재수학자인 나로서는 더 할 곳 없는 연구소이었다. 나의 전문분야가 불교이므로 여타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직접 참여하거나 그 주제들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마 이런 부분적 이해와 제한된 참여의식은 나뿐만 아니라 회원 각자가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결함의 부분들이 전체를 형성시킨다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는 완성의 틀을 지향하고 있다.

 

이 격변의 시대를 맞아 우리 연구소가 앞으로 어떤 뉴노멀의 진로를 향할 것인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이 암울한 새해를 맞으며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돌국회원들 각자의 새로운 식재료와 레시피를 묻고 싶다. 우리 연구소의 새해를 희망으로 맞이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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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의 미래, 불자의 길], 이민용 교수, "지금 우리는 어떤 불교()를 말할 수 있는가", 한국불교연구원 창립 50주년 심포지엄 강연(1), 2024111.

 

2) 당시 연구원들은 이기영(원장), 서경수, 장충식, 김상현, 정병조, 이민용이었다.

 

 

 

 

이민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주요 논문으로 <서구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학문의 이종교배-왜 불교신학인가>, <불교에서의 인권이란무엇인가?>, <백교회통-교상판석의 근대적 적용> 등이 있고, 저서로 《말로 말을 버린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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