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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비밀스럽기 때문에 성스러운 것이 아니다



2011.10.11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하나의 성역으로 대우받고 있다. 늘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종교이지만, 그것에 대한 논의는 지극히 제한되거나 폐쇄되어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종교와 정치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종교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종교는 종교 밖의 다른 주체에 의해서 논의되거나 재단될 수 없는 사회와 동 떨어진 독립된 영역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우리사회에서 종교는 늘 개방적인 논의와 대화가 차단됨으로써 잘 알 수 없는 먼 미지(未知)의 현상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수구적인 종교권력도 생기고 기괴한 음모와 비리들이 발생한다.


종교는 반드시 믿음을 전제로만 인지 가능하며, 종교 밖의 논의를 통해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종교 불가지론(不可知論)은 종교에 대한 탈사회문화적 관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종교를 인간 사회와 문화밖에 존재하는, 다른 것과 무관하고 하나의 자족적인 이념 또는 문화 실체로 전제하는 것이다. 또 종교는 개인의 내면세계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혹은 인간에 의해 도달할 수 없는 저 높은 하늘나라와 같은 신비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언어로 서술되거나 인지될 수 없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 때 종교는 그야말로 현실적으로 성역이 된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성역화는 건강한 종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사회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이성과 희생보다는 본능과 탐욕이 판을 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뤄질 때 종교권력의 음모와 비리가 사라질 것이며 종교도 사회문화도 그 만큼 건강해지고 투명해질 것이다. 종교의 성스러움은 인간에 감동을 주는 인간적 가치가 내재해 있어서 성스러운 것이지 종교 그 자체가 음모적이고 비밀스럽기 때문에 성스러운 것은 아니다.


종교는 한 개인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믿음과 관련되지만, 한 개인의 경험이나 믿음 자체가 종교는 아니다. 종교란 바로 그러한 개인적인 경험이나 믿음이 외적으로 표현된 것을 말한다. 그것은 언어적 주장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의례와 같은 행위의 형태로 표현될 수도 있다. 아니면 종교단체처럼 사회집단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수많은 종교 예술품처럼 예술적 활동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종교는 종교적 경험과 믿음이 언어적이든, 행위적이든, 사회적이든, 예술적이든 모두 같은 경험적인 현상으로 표현된 것이다. 따라서 종교인이 아니라도 종교에 대한 객관적 인지와 공적인 논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신과 같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실재나 존재와 관계있지만, 역시 절대적 실재나 존재 자체가 종교는 아니다. 종교는 그러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실재나 존재에 대한 인간의 발언, 그와 관련된 인간의 활동과 행위가 종교인 것이다. 그것은 관찰될 수 있고 서술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인간의 사회문화적 활동의 소산이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바로 종교적이라고 불리는 특정 종류의 인간 활동을 대상으로 한다. 이처럼 종교는 인지가능하고, 그에 대한 논의와 대화가 가능한 객관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인식과 논의가 필요한 현상이다.


흔히들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그냥 내버려두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어느 한 사회집단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집단의 종교에 대한 이해는 필수불가결하다. 문화의 측면에서도, 종교는 문화의 핵심으로서 특정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는 주요한 통로가 바로 그 사회의 종교이다. 예컨대 한국문화와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자 할 때 한국사회의 종교를 빠트릴 수 없다. 한국의 중요 문화재 대부분이 종교관련 문화재라는 사실도 한국사회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문화적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는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나 개인적인 삶의 차원에서나 아직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사회에서 종교의 향방은 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현재도 종교는 한 때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었으며, 또 2005년 사학법이나 최근 비영리 복지법인법의 개정을 좌지우지하는 것과 같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의 종교적 상황은 어느 종교도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하는 종교 다원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다종교 상황은 긍정적 가능성과 부정적 가능성을 아울러 갖고 있다. 종교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통합하는 역할도 하지만, 정반대로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관용과 자비, 사랑과 같은 종교적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하나가 되도록 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종교적 주장으로 말미암아 종교가 오히려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종교의 양면성은 한국의 다종교상황과 맞물려 정치권력의 종교편향은 물론 아주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전통적인 자생종교와 외래 종교를 포함하여 50여개 종교 500여 교파가 존재하는 다종교사회이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다종교 상황이 다양한 종교문화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문화창조의 기틀로 작용할 지, 아니면 한국사회의 대립과 분열의 소지로 작용할 지는 미지수이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종교적 상황을 고려할 때, 종교에 대한 사회전체의 관심과 아울러 객관적이고 공적인 논의가 더욱 더 필요해진다.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의 삶과 문화가 더욱 더 건강해 지고 풍요롭게 되는 것이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seyoyun@yahoo.co.kr


주요 논문으로〈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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