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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18호-설명적 종교연구에 대한 단상(구헝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7. 17. 16:25

                           설명적 종교연구에 대한 단상

               

                                                      

   2014.6.10   


 

    2014년 6월 6일에 국제인지종교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Cognitive Science of Religion, 이하 IACSR)의 총무인 예스퍼 쇠렌센(Jesper Sørensen) 교수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올해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체코의 브르노(Brno)에서 열리는 정기학술회의에 참가신청서를 접수한 인원이 너무 많아 아직까지 등록을 마치지 않은 IACSR 회원은 신청서를 보내지 말아달라는 브르노 측의 협조 요청을 전달하는 내용이었다. 2년마다 한 번씩 개최지를 옮겨가며 이루어지는 IACSR의 정기학술회의는 올해 5회째를 맞고 있는데, 매회 참가자의 수가 점점 늘고 있긴 했지만 이처럼 일찍이 만원사례를 이룬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개최지가 대체로 한국에서 멀다는 점 때문에 지금까지 2008년에 단 한 번밖에 참가하지 못했던 ‘게으른 회원’인 필자 역시 올해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가보고 싶었지만 결국 총무의 메일을 받고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국제인지종교학회 정기학술대회의 주제는 “설명된 종교? 인지종교학 25년(Religion Explained? The Cognitive Science of Religion after 25 Years)”이다. 이는 로슨과 맥컬리의 《종교 다시 생각하기: 인지와 문화의 연결》(Rethinking Religion: Connecting the Cognition and Culture)이 출판된 1990년을 인지종교학의 비공식적인 시발점으로 간주하면서, 지금까지 약 25년간의 주요한 성과를 검토하고 현재의 주요 연구 주제와 향후 전망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인지종교학에 핵심적인 논의를 제공해온 저명한 학자들이 대거 발표자로 참가한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는 미증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지종교학은 종교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설명을 추구하는 새로운 연구 흐름의 하나다. 오랫동안 반환원주의 혹은 현상학적 판단중지를 바탕으로 한 문헌학적, 해석학적, 사회학적, 역사학적인 탐구가 종교에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주된 방식들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진보와 더불어 종교에 대한 자연과학적 논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 속에도 상이한 관점과 접근법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종교를 인류의 집단 선택과 연계된 진화적 적응으로 간주하거나, 종교를 생물 유전자(gene)와 비슷한 문화 복제자(meme)의 일종으로 간주하거나, 종교적 체험이 뇌의 특정 부분에 나타나는 병변과 관련된다고 보거나, 뇌 속에 신을 믿게 하는 기능적 모듈이 있다고 하는 입장도 있다. 인지종교학 역시 이러한 자연주의적 종교연구의 일종으로서 상기의 논의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구별되는 양상의 논의를 주도해왔다. 그 기본적인 관점은 종교적인 생각, 행동, 표현이 발생하고 전수되며 문화적으로 널리 분포하게 되는 양상은 초자연적인 신비의 영역이나 종교만을 위한 특수한 인지체계, 혹은 뇌의 병리적 상태를 가정하지 않고도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적 종교연구의 흐름에 대한 학계의 평가가 모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종교를 자연현상의 일부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우려와 불쾌감을 표시하며 ‘과학주의적 환원론’이라는 비판을 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종교학을 중심으로 보자면 이러한 설명적 종교연구는 동시대 종교학자들이 주목할 만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첫째, 설명적 종교연구는 ‘종교’라는 범주에 규범적으로 얽매이지 않고도 인간의 종교적 삶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교’가 근대의 지적 전통이 만들어낸 개념적 범주라는 반성적 인식은 종교학에서 이미 충분히 전개되어 왔다. 거기에 설명적 종교연구는 ‘종교’ 개념과 ‘종교학’의 고유 영역에 대한 반성적 인식이 요청되는 실질적인 근거를 과학적 담론을 통해 제공한다.

 

 

   둘째, 설명적 종교연구는 ‘비교’를 넘어서는 ‘일반화’의 가능성과 지향점을 검토한다. 일찍이 인류학자 에드먼드 리치는 《인류학 재고》(Rethinking Anthropology)에서 대상의 비교는 분류를 생산할 뿐 과학적인 일반화를 낳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문화에 대해서도 수학과 같은 일반적 틀을 지닌 접근이 요청된다고 주장했다. 종교학에서도 ‘비교에는 주술이 살고 있다’라는 조너선 스미스의 말로 대변되어 왔듯이 ‘비교’는 중요한 반성적 화두였다. 종교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은 ‘비교’의 덫에 갇힌 종교학에 ‘일반화’라는 탈출구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일반화는 종교에 대한 보편적이고 단일한 설명체계를 추구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 자체가 잡동사니에 붙여진 개념적 범주이기 때문이다.

 

 

    셋째, 따라서 설명적 종교연구는 인간에 대해 축적되고 있는 폭넓은 과학적 지식과 종교학의 연계를 추구한다. 앤 테이브스(Ann Taves)는 《다시 숙고하는 종교경험》(Religious Experience Reconsidered)이라는 책에서 종교 경험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인간의 ‘경험’ 자체에 대한 과학적 발견에 의해 재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종교적이라고 간주되는 경험을 ‘종교의 독자성’에 대한 규범적 전제 없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어떤 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재구하는 인지적 과정에 대한 폭넓고도 일반적인 지식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설명적 종교연구는 종교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험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각과 행동 자체에 대한 폭넓은 과학적 지식에 비추어 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종교’가 개념적 범주라는 인식은 종교를 한 방에 설명하는 ‘마법탄환’과 같은 단일한 설명체계는 없다는 인식과 연결되고 인간에 대한 폭넓은 과학적 지식을 검토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설명적 종교연구’는 연구자들에게 부담스러울 만큼 많은 노력과 부지런함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연구의 흐름에 대해 눈감고 있을 수는 없다. 설명적 종교연구를 단지 지나가는 지적 유행이라고 간주하기에는 그것의 적합성이 너무도 크고 광범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구형찬_
서울대학교
koohc1@gmail.com
논문으로 <멍청한 이성: 왜 불합리한 믿음이 자연스러운가>,〈'인간학적 종교연구 2.0'을 위한 시론:'표상역학'의 인간학적 자연주의를 참고하며〉,〈다시 상상하는 마나: 그 역학(力學)과 역학(疫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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