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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th”에서 “神話”로, 그 굴절과 영향

                

                       
                              

 2014.5.27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일본인들의 단군 연구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단군전설’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그들은 단군의 존재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지만 그렇다고 ‘단군신화’로 본 것도 아니었다. 일단 그들의 정치적 편견에 사로잡힌 주장의 구체적 내용은 접어두고, 단군전설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시사하는 바에 대해서 우선 짚어보고자 한다.

 

 

        오늘날 신화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약간 웃도는 시기에 수입된 외래어이다. 그 말은 그것이 생겨난 서구 지역에서의 특정한 문화현상을 지칭하는 전문용어였던 셈이다. 따라서 그 말에 상응하는 현상을 우리 전승에서 찾을 수 있을지라도 신화라는 말은 근대 이전에는 없던 용어이다. 신화라는 번역어에는 한국의 이중적인 근대성 형성과정이 그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즉 한국 신화라는 말에는 “myth”가 함축하는 서구의 신화 개념과 “神話”라는 말이 내포하는 일본의 신화개념이 함께 작용하였다.

 

 

        동아시아에 처음으로 “myth”라는 용어를 소개한 일본에서는 “神話”라는 말을 정치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에 따라 소위 신대사(神代史)라고 하는《고사기》와 《일본서기》해석의 이데올로기로서 신화 담론이 형성된다. ‘신대’라는 관념에는 정치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신대’는 황조신의 시대를 의미하며, 그것은 인대(人代)에 해당하는 천황가의 신성함을 주장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알려진 대로 《고사기》는 고대 일본의 왕권 경쟁에서 승리한 텐무 천황이 천황중심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명하여 편찬된 최초의 역사서이면서 문학적 가치가 돋보이는 사료이다. 《일본서기》는 중국에 일본의 우수함을 알리려는 취지에서 겐쇼 천황의 명에 따라 편찬된 역사서인데, 일본에서는 이 책을 일본 최초의 정사(正史)로 간주한다. 기기신화라고 불리는 이 두 책의 내용은 천황의 신성성을 천명하는 왕권 기원신화이다. 따라서 근대 일본의 신화연구는 그 출발부터 정치적 의미가 뚜렷했던 바, 초기 연구자들은 신화가 곧 역사라는 식으로 양자를 불가분의 관계로 이해하였다. 이와 같은 사정을 볼 때, 영어의 “myth”와 “神話”에는 양자를 등치시키기 어려운 굴절의 과정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10년대 당시 조선인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신성한 단군’, ‘단군성조’라고 외치며 단군이 민족의 구심점으로 형성되는 상황이 되자, 일본인들은 단군부정론을 더욱 신랄하게 펼쳤다. 이 시기에 일본학자들이 ‘단군전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은 그들이 왕권의 신성성과 역사성이 내포된 일본식 “神話” 개념에 학습되어, 단군이야기가 우리 고대사를 알려주는 민족의 신화가 아니라 평양 주변에서 전승되는 일개 지역단위의 이야기라고 격하시키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육당 최남선을 비롯한 국내 사학자들이 국가의 총체적인 위기상황에서 민족적 정체성 형성과 기존의 집단적 아이덴티티를 대체하려는 욕망에 따라 신화 만들기 작업을 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당시 육당계열학자들이 ‘단군신화’라고 했던 것은 민족 개념과 결합되어 정치적 맥락에서 특별히 선택된 용어였다. 하지만 1930년 이후 과학적 신화관의 등장으로 신화에 대한 부정적 관점이 작용하면서 단군신화는 고조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어 더 이상 민족 정체성의 구심점으로 논의하기는 어려워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내부에서 ‘역사냐 아니면 신화냐’의 택일적인 답을 요구하는 물음 자체가 계속 내분을 낳았고, 그런 현상은 지금도 거듭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소모적인 물음을 던지기에 앞서 우리는 신화라는 말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가 신화라고 하는 말은 그렇게 표상되고 인식되기 때문이지 본래적인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공동체의 위기상황에서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되어 신화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역사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jhha797@naver.com
논문으로 <1920년대-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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