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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몽주의 이후 유럽의 종교 창조성과 세속화

                   《세계종교사상사 III-2》 -여러 세계의 만남에서 현재까지-의 최종장

                

                                           


 

 2014.9.30

 

 

        《세계종교사상사》 전3권은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가 50여년에 걸친 학문의 여정을 집대성한 최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그의 저서 《성과 속》이 그의 종교관-모든 인간은 종교적이라는 것, 종교는 우리 삶의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종교는 인간 정신의 결정체라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는 책이라면, 이 《세계종교사상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세계 종교의 탄생과 발전사를 인류의 삶과 사상의 전환점을 중심으로 펼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이미 엘리아데가 1949년《종교형태론》을 출간할 때 이미 구상되었다. 그는 집필을 구상하면서 1973년 3월 25일자 일기에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읽기 쉬운 개설서로 쓸 것, 둘째 여러 종교의 '창조적‘ 순간을 포착하여 묘사할 것, 셋째 개별 종교 전문가의 미시적 해석과는 다른 종합적 이론가로서 거시적 관점을 제시할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원칙에 근거하여 처음 3권으로 기획되었으나 도중에 다루어야 할 내용과 자료가 늘어나면서 제3권을 두 권으로 나누어 집필하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는데, 그의 지병 악화에 따른 죽음으로 인해 3권 첫 번째 책(18세기 계몽주의 이전까지)에 그치고 말았다.

 

 

        엘리아데가 집필한 3권의 책은 이미 세계의 주요 언어로 대부분 번역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종교학을 하는 젊은 학자들(제1권 이용주, 제2권 최종성·김재헌, 제3권 박규태)이 프랑스 문화부의 출판 지원을 받아 6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번역 출판되었다.(《세계종교사상사》 1~3, 미르치아 엘리아데, 이학사, 2005.10) 그러나 엘리아데가 기획하고 제자들이 공동 작업한 제3권의 둘째 책(제4권이라고도 함)은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바가 없다. 아마 엘리아데가 기획은 했으나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탓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둘째 권은 《세계종교사상사》 전4권의 결론에 해당되는 책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엘리아데가 기획했던 제3권의 둘째 책(제4권)은 엘리아데 사후 그의 제자들의 공동 작업을 통해 출간되었다. 1986년 엘리아데가 죽기 전에 최종권의 편집을 부탁받은, 그의 애제자이자 학문적 후계자인 쿨리아누(Ioan P. Coulianu)는 스승의 정신과 구상에 기초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책을 완성하지 못한 채 중도에 불의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출판을 담당한 헤르더 출판사는 엘리아데와 쿨리아누의 뜻을 받들어 유명한 종교학자와 민족학자의 협조를 받아 1991년 제3권의 두 번째 책(Mircea Eliade, Geschichte der Religisen Ideen Ⅲ/2. Vom Zeitalter der Entdeckungen Bis zur Gegenwart, Freiburg/Br. U. A.:Herder 1991)을 출판하였다.

 

 

        엘리아데가 생전에 저술한 3권의 내용이 주로 근대 이전의 종교사상 전개를 서술하였다면 제4권은 이미 출판된 3권에서 논의하지 못한 여러 지역의 종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여러 세계의 만남에서 현재까지’라는 책의 부제가 시사하고 있듯이 근대 이후 여러 종교들의 만남과 현재 각 지역 종교들을 지역 특성을 드러내는 주제가 중심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아메리카의 여러 종교부터 중국 육조시대의 도교, 인도네시아 종교, 오세아니아 종교, 오스트레일리아의 종교, 서아프리카 종교, 중앙아프리카 종교, 남미 인디오의 종교, 북미 오구라스족 종교, 일본의 신도, 계몽주의 이후의 유럽종교 등의 특징적인 주제를 잡아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장은 ‘계몽주의 이후 유럽에서의 종교 창조성과 세속화’라는 소제목을 붙인 글인데, 이는 단순히 제4권에 연결된 하나의 장이 아니라 《세계종교사상사》 전체의 책 결론에 해당되는 장이다.

 

 

        이 장은 근대 이후 유럽의 종교 전개 과정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종교와 대립되는 현대 세속문화의 형성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엘리아데는 현대 유럽의 종교가 비성화(非聖化)의 궁극적 단계에 이르러 아주 독특한 세속문화(이미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전 세계 주류문화로 정착했지만)를 형성하고 있다며, 이를 계몽주의 이후 유럽에서의 종교적 창조성과 세속화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근대 이후 유럽의 종교 전개 과정들을 유럽의 문화사조와 대비하면서 성과 속의 성현의 변증법과 계몽(이성종교)의 종교사적 전개로서 풀어가고 있다. 특히, 세속화 프로세스는 ‘성과 속’의 경계가 지양(止揚)되어 성스러운 것의 ‘완전한 위장’, 보다 정확하게는 ‘성과 속의 일체화’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이 과정은 유럽에서 계몽시대 이후에 태동하여 마르크스와 니체로부터 프로이트에 이르는 환원주의의 대가들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 장을 이해한 바에 의하면, 종교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항시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에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만 종교는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엘리아데는 종교적 인간이 희망의 이름을 통해서만이 종교와 세속문화 모두가 찰나의 존재임과 동시에 모두 필요 불가결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순에 빠지지 않고 말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서구 세속문화는 이미 성속의 변증법을 상실함으로써 자폐적이고 독단적인 것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런 변증법적 지양이 정치와 문화 일반의 성화(聖化)라는 형태를 띄게 되든, 세속화된 종교가 포스트종교적인 형태로 자기 지양을 하든, 종교적인 것이 유사종교적 형태를 취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계몽주의 이후 근대 서구의 세속문화-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체-는 과학문화를 뒷받침하는 이성종교가 지배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러한 이성종교의 발생과 그 한계를 지적하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실천이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칸트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마지막 ‘회고와 전망’에서는 서구 세속문화의 병폐를 시정하고자 많은 학자들이 고대적인 혹은 동양적인 종교문화에 눈을 돌리고 있으나 그것은 부분적인 처방일 뿐 거대한 문화적 흐름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서구 세속문화와 정면 대결하지 않고 거부 또는 회피하는 방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장은 책 전체의 결론에 해당되는 만큼 글 내용이 단순치 않다. 근대 이후 유럽의 종교사를 이야기하면서도 근대 유럽사상사 전반을 전제하고 있어서 근대 사상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필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더구나 번역본이 없어 한 구절씩 읽어 나가다보니 결국 통째로 번역까지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사실 자의가 아니었다. 주위에 철학을 하는 친구가 종교학의 시각에서 현대사회 문화를 폭넓게 비평하려면 한번 쯤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가 있어서였다. 필자도 현대 세속문화의 형성과 전개에 대해 관심 있는 동학들에게 한번쯤은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번역본을 한종연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하였다.*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홈페이지 종교계·학계동향 게시판>에 《世界宗敎思想史》의 제4권 최종장 전문을 번역해서 올려놓았으니 관심이 있는 분은 참고하세요.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seyoyun@daum.net
논문으로 〈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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