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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진화하는가?
2014.10.14
지난 4월 라이덴대학에서 있었던 한 학술모임의 주제는 불교와 사회정의였다. 본 주제에 대한 발표자의 대부분은 인도, 동남아시아의 불교문화 전공자들이었다. 필자는 일본불교와 사회정의의 문제를 2차대전 당시의 일본불교의 전쟁협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불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 적을 죽이라고 고무하고, 일본제국의 타국지배를 찬양했는지를 되돌아 보는 내용이었다. 일본불교는 일본제국이 광분하던 시절 살인과 폭력의 전도사였다.
라이덴대학에서 3일간의 토론을 통해 안 것은 불교의 폭력전과는 일본불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더하면 더했지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불교도 대단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불교는 평화의 사도인가 아니면 폭력의 전위인가. 양쪽 모두의 요소를 갖는 있다는 것이 회의 참석자 모두가 공유한 결론이었다.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무엇을 선택하여 칼을 휘드르는가에 대해 불교는 양극단으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평화와 마찬가지로, 폭력은 불교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조선 5백년은 노비사회였다. 소수의 양반이 다수의 아무 죄도 없는 노비를 영구히 착취하며 호의호식한 세월이 조선이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유학자가 탄생되고 훌륭한 도인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유교적 교양의 화신이었고, 인간예의의 전도사였으며, 천리의 전파자였다. 하늘의 성을 따르고 인을 펼치며 민본을 이야기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위대하다는 유학자, 높은 사람들 가운데 노비제도를 없애려고 목숨걸고 노력한 사람이 있는가. 지난 몇 년간 노력했지만 과문한 탓인지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 고상하게 인의와 천리를 이야기하고 민본에 가슴아파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무도 없다니 의아하기만 했다. 가장 진보적인 유학자가 말하기를, 노비제도는 나쁘니까 없애는 것이 좋기는 좋은데, 갑자기 없애면 사회에 혼란이 오므로, 50년 뒤에 천천히 없애자는 선에서 멈추었다. 50년 뒤라. 그 뒤의 진보적 유학자도, 그 뒤의 사람도 모두 50년 뒤에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조선이 끝났다.
기독교가 노예제도의 철폐에 공헌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은 정설이다. 기독교가 거의 2천년간 존재했지만, 그 2천년의 끝자락에서 노예제도가 없어졌다. 노예제도를 없앤 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아니라, 인간이 발명한 증기기계였다. 증기기계를 써서 면화를 따는 것이 노예를 공짜로 부리는 것보다 싸고 편리하니까 노예가 필요없어진 것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는 끝없이 진화하는 생명체이다. 그 진화의 담지자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진화시키느냐에 따라 종교의 사회적 존재가 만들어진다. 폭력, 노비, 노예의 지난 역사를 생각한다면 정말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얼굴이 바꾸었을 뿐으로, 불행히도 폭력, 노비, 노예는 종교가 융성한 가운데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허남린_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NamLin.Hur@ubc.ca
논문으로 <종교와 전쟁: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일본에 있어서 불교와 불교학의 근대화>등이 있고, 저서로《Death and Social Order in Tokugawa Japan: Buddhism, Anti-Christianity, and the Danka System》, 《日本人の宗敎と庶民信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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