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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1
《종교문화비평》 26호의 특집 주제는 “종교와 공공성”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한 채 공공성이 실종되어 가는 상황이다. 국가는 공공성의 담보자 역할을 방기하고 있고, 종교 역시 신자유주의 논리에 좌우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현재상황과 공공성은 한 사회의 유지에 필수적인 조건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호에서 종교와 공공성을 특집 주제로 삼은 것은 시의적절하다.
혹자는 공공성의 문제를 종교와 연관시켜 논의하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품을 수도 있을 것 이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사적 영역에서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여겨지는데, 이에 반해 공공성의 문제는 개개인의 삶의 영역을 넘어선 사회 일반의 공적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서 사적 영역을 담당한다는 종교와 공적 영역에 속한 공공성의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이번 특집의 기본 전제 가운데 하나가 종교를 사적 영역에만 한정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나 사회, 정치, 생태 등 공적 문제와 영역에 개입을 하고 그것과 관련을 맺는다. 다섯 편의 특집 원고가 이를 잘 보여준다. 특집 원고는 각 주제별로 종교가 공적인 문제나 영역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양자의 관련 양상과 그 성격을 설명하고, 공공성의 확보와 형성에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지 탐색하고 있다.
특집의 첫 번째 글인 〈생태적 불안사회의 종교: 생태 공공성과 종교의 자리〉는 공공성의 개념을 생태공공성으로 확대해서 생태공공성의 형성을 위한 노력에서 종교가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글이다. 이 글은 종교 가 닫힌 사적 종교의 환상에서 벗어나 대안적 생태공공성 형성에 기여하는 열린 종교를 지향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
두 번째 글인 〈한국교회의 과거·현재·미래, 공공성에 대해 묻다: 규범적 공론장의 형성과 변화를 중심으로〉는 한국 개신교와 공공성에 관한 글로서, 규범적 공공성의 관점에서 한국 개신교의 전개 과정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기로 나눠 살펴보고 있다. 이 글은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난 한국 개신교의 위기를 공공성의 위기로 규정하고, 탈성장주의를 추구하는 작은 교회를 통해서 위기의 탈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세 번째 글인 〈미국의 문화전쟁과 ‘기독교미국’의 신화〉는 현재 미국사회에 서 낙태, 동성애, 배아복제, 소수자, 총기사용 등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둘러싸 고 벌어지는 이른바 문화전쟁을 통해 개신교 보수주의가 어떻게 공적영역에 관여하였으며, 그러한 개입 양상과 성격을 ‘기독교미국’ 신화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글은 ‘기독교미국’의 신화는 특정 종교의 도덕에 근거하는 것으로, 다원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사회에서 공동선의 증진보다는 공공성의 훼손을 초래 한다고 말한다.
네 번째 글인 〈한국 신종교의 개벽사상과 공공성〉은 지구촌의 상황에서 세계보편 윤리와 공공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 신종교의 핵심사상인 개벽 사상이 그러한 보편성과 공공성을 갖추고 있음을 밝힌다. 이 글은 개벽사상에 나타난 공공성의 핵심주제가 자아에 대한 주체의식과 타자인식, 민족주체성과 세계인식, 개벽사상과 사회혁신, 상생의 철학과 실천윤리 등으로, 인류사회가 추구하는 사회적 정의와 상생의 평화를 구축하는 세계 보편적 가치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집의 마지막 글인 〈국가신도의 국체신학과 공사관념: 《국체의 본의》를 중심으로〉는 1937년 일본 문부성이 펴낸 《국체의 본의》를 중심으로, 그 기저에 깔린 멸사봉공적 공사관념에 입각한 국체 이데올로기를 ‘국체신학’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신화적 신학적 의미가 국가신도의 종교성과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를 규명한다. 아울러 국가신도가 수용되고 전후 일본사회에서 재생산되는 방식을 ‘공과 사의 공모’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기존에 공공성 일반이나 한국사회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여러 학문분야에서 행해졌고 연구성과도 상당한 수에 이른다. 그러나 공공성의 문제를 종교와 관련시켜 논의한 연구는 거의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번 특집은 나름의 연구사적 의미를 갖는다. 아쉬운 점은 종교와 공공성에 관한 개별 주제를 다루는 특집 원고의 내용을 수렴하고 각각의 위치를 규정하는, 종교와 공공성 일반을 다루는 총론 격의 글이 없다는 점이다.
특집이 공공성이라는 사회적으로 시의성이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편의 연구논문 중 두 편의 글 역시 최근의 한국사회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호는 종교와 관련된 한국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다루는 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재난: 자연의 타자화, 인간의 사물화〉는 국내 최악의 해상 참사인 ‘세월호 사건’을 염두에 두면서 재난이 재난이 되는 논리를 문명 비판적 차원에서 살펴보고 있다. 이를 통해 예외적이어야 할 재난이 사실은 자연을 타자화하며 건설 해온 문명의 본질이, 권력 역시 인간을 사물화하며 비인간적 예외 상태를 일상 적인 것으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근간이라고 말한다.
〈신종교는 언제 종교가 되는가: 통일교회에서 메시아의 죽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는 통일교회를 통해 근대 시기 창교자의 죽음을 극복하는 신종교의 일반적인 메커니즘을 살펴보고 있다. 이 글은 ‘세계종교’는 창교자가 이미 신화가 된 종교라는 전제 하에, 창교자가 생존하는 종교는 대단히 근대적인 현상이며, 창교자의 생존 자체가 신종교를 취약하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근대적인 의미에서 종교는 창교자의 죽음 이후에, 특히 메시아로서의 창교자의 소멸 이후에 비로소 형태를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연구논문 〈니클라스 루만의 종교이론: 지구사회의 자기생산적 소통으로서 의 종교〉는 루만의 사회체계 이론을 바탕으로 루만의 종교이론과 활용가능성을 살펴보는 글이다. 한국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루만의 종교이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글이다.
이번 호 성물 기행은 천주교 차례이다. 천주교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대표적 성물인 성화, 십자고상, 십자가, 성모상 등의 여러 유형과 유래 및 이러한 성물이 천주교의 성물로 의미부여되는 축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성물기행을 통해 일상에서 접할 기회는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하였던 천주교의 다양한 상징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설림은 죽음과 삶의 문제를 천착하고 있는 글이다. 삶의 자리가 바닷물에 의해 언제 잠길지 모르는 위기를 현실로 안고 사는 섬 피지에서 죽음과 삶의 문제는 더욱 각별한 주제로 다가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호 주제서평은 두 편이다. 이번 주제서평은 특별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종교학계에서 잘 알려진 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 편은 조너선 스미스의 《종교 상상하기》와 《자리잡기》 번역본을 다루고, 다른 한 편은 아돌프 엔젠의 《하이누웰레 신화》 번역본을 다룬다. 두 편의 서평 모두 책의 내용과 학계에서 갖는 의미는 물론이고, 저자와 책이 쓰여진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처럼 무게 있는 책들이 주제서평란을 채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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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종교문화비평>26호(2014년 9월30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 입니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교수
yybfolk@anu.ac.kr
논문으로 〈한국무속에 있어서 조상의 위치〉, 〈한국 무당의 유형구분에 대한 고찰: 강신무와 세습무의 구분을 중심으로〉등이 있고, 저서로 《죽음의례 죽음 한국사회》(공저),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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