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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43호-하반기 학술회의 참관기(이민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 2. 3. 22:08

                                하반기 학술회의 참관기

                

                       
                              

 2014.12.2

 

 

 

        11월이 되면 나는 바빠지고 긴장이 된다.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은 나 같은 은퇴한 사람에게 11월은 자극의 계절이기도 하다. 여러 학회들이 학술회의를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개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관심 있는 학술회의에 부지런히 참석한다. 나로서는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확이 좋았는지 어땠는지, 결실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묻지는 않는다. 어차피 한 학회 혹은 연구소의 학술회의는, 뚜렷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거나 종합적인 결론을 추구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로 학술회의는 발표자들의 몇 개월에서 수년간에 걸친 모색을 정리한 시안들과 그에 대한 논평자들의 관점을 내놓는 자리이지 명확한 결론을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는 학회 제출의 논문을 Proceeding paper라 호칭하기도 한다. 아직도 진행 중인 과제라는 말이다. 또 학회 참석 후에 만족감 외에 혼란스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발표자의 해당분야에 대한 뚜렷하지 못한 문제의식이나 주최 측의 무성의한 논제 설정 때문이다. 소위 방청하고도 ‘왜 그것이 문제가 되지’ 하며 되묻는 경우이다. 외국학회의 경우, 공감을 일으키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가 있으면 동참한 연구자들이 바로 하나의 연구그룹을 발주시키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학과 형성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학문 분류방식 또한 경직되어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이런 방식 곧 새 주제에 따라 연찬분야가 자연스레 분화되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를 주변의 몇몇 학회에서 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회는 주제 설정이며 운영방침에 있어서 관행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모로 시달리는 연구자들을 그들의 관심과는 동떨어진 주제로 내몰아 정작 시도해 봄직한 실험적 주제에 몰두시키지 못하게 하고 학문적 피로감만 쌓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에 본 연구소에서 “종교와 미디어”를 주제로 개최한 하반기 심포지엄은, 필자가 앞에서 지적한 장단점을 골고루 갖춘 전형적인 학술회의였다고 생각된다. 미디어라는 현대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주제를 설정하고 이 주제를 종교에 적용시킨 점에서 또 하나의 관행적 주제 설정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주제 선정 이유를 밝힌 장석만 소장의 발제문은 이 점을 극복하려 한다. 전달 매체라는 미디어는 화자와 청자 사이의 “사이의 기능”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의 현대의 삶의 양태이자, 독자성을 지니면서 오히려 우리를 규정하는 생명력-심지어는 파괴력-을 가진 고유한 영역으로 승화되고 있다고 본다. 한편 종교는 성과 속이라는 두 영역을 가로지르는 소통적 기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미디어와 닮아 있음을 지적하고, 미디어의 기능과 종교의 기능이 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는다. 따라서 단순한 비교이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통해서 드러나는 양태를 묻는 “종교와 무엇”이거나 “미디어와 무엇”이라는 두 영역의 단순비교론을 극복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미디어에서의 종교의 기능을 묻고 종교 속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도출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자칫 표면적인 접근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주제를 심도 있는 논의의 자리로 끌어올리고 있다. 무척 도발적이며 창의적인 설정이라 생각된다.

 

 

        그런 의도라면 임현수의 “종교와 문자”의 논제는 상대 갑골문을 종교적 미디어로 설정함으로써 발제문의 의도에 그대로 적중한다. 갑골문이란 가장 오랜 소재를 미디어란 관점에서 가장 현대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고고학적 발굴은 고대에 속할지 모르나 그것을 보고 이해하는 시각은 현대에 있다. 또 원자료에 의거해 종교적 소재를 이끌어내고 해석하는 작업은 현대 우리의 종교적 시각에 바탕을 둔다. 갑골문은 “점복(占卜)의 내용을 문자를 통해 가시화함으로 신(곧 天)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복사(卜辭)를 새기는 행위는 신(天)의 행위인 복조(卜兆)를 인간의 문자로 번역하는 작업이며... 또 하늘(신)의 뜻(계시)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는 일”이고 그 같은 효과는 “정치적 권위의 확대”로 이해된다고 주장한다. 논평자(홍윤희)가 지적하였듯이 갑골문에 대한 이런 해석이 효과적으로 논증되고 있지는 않으나 적어도 하나의 새로운 해석으로 참신하게 다가온다.

 

 

        도태수의 “한국 초기 개신교 문서에 나타난 문자성”이란 시안적 논문도 주목된다. 매체환경으로서의 디지털 종교에 대한 서구의 이론들을 근거로 하면서 우리의 근대기의 기독교 전도 문서가 어떻게 만들어져 기독교의 종교성을 표출시키고 신앙인으로 만들어 갔는지를 따진다. 교리 문답의 묻기와 답변이란 대담형식은 개신교 고유의 창안인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불교의 백교회통이거나, 천도교의 교리문답서에도 자주 나타나는 형식이다. 다른 종교와의 비교를 통한 자신의 종교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근대기의 모든 종교의 공통된 틀인 셈이다. 곧 초기 개신교 문서의 한 유형인 교리문답서는 근대기 한국의 대담형식 곧 한국적 매개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산물임을 보여준다.

 

 

        이창익의 “소리의 종교적 자리를 찾아서”라는 논문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현대의 매체가 어떤 형태를 취하건 그것들은 “보는 일”과 “듣는 일”을 통해서이다.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오감(五感)가운데 청각과 시각은 인간이 외부를 수용하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이다. 그는 “시각의 객체 중심성”에 대해 “청각의 주체 중심성”을 들면서 시각이 “겉의 세계”로 향하는 것에 반해 청각이 “속의 세계”로 향함을 말하며 일종의 시각의 존재론과 청각의 존재론의 차이를 논한다. 그래서 소리의 물질화라는 근대의 축음기의 발명, 그에 따른 영혼(종교)의 소리의 직접성(날 것)을 감지하게 됐고 축음기라는 소리의 직접성이 이제껏 경험치 못한 다른 세계를 현시한다고 말한다. 그 한 예증이 카세트테이프를 통한 이슬람교 신자들의 전혀 새로운 종교영역의 창안과 경험이라는 것이다. 카세트를 통해 반복적으로 설교를 들음으로서 기존의 종교적 세계와는 전혀 다른 종교 경험을 한다. 새로운 “종교적 소리로 충전된 육체”가 출현되고 종교는 소리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원일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한국종교 사진” 역시 근대기 서양인들의 사진기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된 한국의 종교 개념화를 짚어보는 글이다. 한 장의 사진이, 일정한 종교의 특성이나 면모들, 또는 특정 종교의 현장에서의 소멸을 설명하는 도구로 강한 설득력을 지닌 매체였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진은 논평자(김태연)가 요약하듯 선교사들의 종교개념화에 기여하여 철저하게 개신교적 시각으로 “구성된 진실”로 표현되고, 종교 물상화의 도구로서 한국의 종교의 부재까지 주장하며, 타자화된 피사체로서의 종교를 만들어 냈다고 말한다. 사진매체가 어떻게 현실과 현장을 “보는 시각”을 따라 표출시키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서구중심의 종교개념이 정착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화선은 “신화, 유령, 잔존하는 이미지”라는 제목으로 종교와 영화에 관한 연구 내용을 발표하였다. “영화라는 매체가 출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종교는 영화의 빈번한 소재가 되었다”는 연구자의 모두의 발언은 영화매체와 종교의 관계를 극명하게 나타낸다. 영화의 소재가 그대로 종교의 세계를 현시한다. 이런 시각에서 연구자는 아피찻퐁이란 영화감독의 이미지, 기억, 환화(幻化)의 세계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묻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시 영화는 보고 느끼는 일이지 말이란 매체를 통해 설명하고 이해하는 대상이 아님을 실감하게 한다.

 

 

        어쨌든 올해 하반기에 또 하나의 결실을 얻은 셈이다. 그러나 이 주제를 한 번 다루었다고 끝낼 것이 아니라, 이번의 성과는 단지 시안적 제시이자 Proceeding papers일 뿐이라 여기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천착하고 주변의 관심을 모아나갈 일이다. 아모쪼록, 한번 다룬 소재는 지나간 것으로 여기고 방기하는 다른 학회나 연구소들의 일회성적인 관행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이민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minyonglee@hotmail.com
주요 논문으로 <불교학 연구의 문화배경에 대한 성찰>,<서구 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고, 역서로《성스러움의 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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