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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에 나타난 포스트휴먼 시대 물질에 대한 상상력

               

 

                       
                              

 2014.11.11

 

 

 

        최근 본 두 편의 영화는 공교롭게도 인상적인 여주인공이 모두 스칼렛 요한슨이었다. 뤽 베송의 영화 <루시>에서 그녀는 두뇌 능력의 극한에 도달한 뒤 신체 없는 존재로 사라지고, 스파이스 존스의 <그녀>에서는 맞춤형 OS 사만다 역을 맡아 목소리로만 연기한다.

 

 

        “인간의 평균 뇌사용량 10%, 오늘 그녀는 100%에 다가간다”는 카피를 내세운 영화 <루시>는 우연히 범죄조직에 끌려가 몸에 특정약물이 퍼지면서 뇌가 점점 각성되어 가공할 능력을 가지게 된 루시의 복수과정을 속도감 있게 그린다. 뇌리에 남는 것은 뇌가 100% 활성화되어 자신이 알게 된 것을 후대에 남기기로 한 루시의 마지막 선택이다. 인류가 계속해서 유전자와 문화를 통해 정보를 후대에 전달해온 것처럼, 루시는 컴퓨터와 통신망으로 ‘물질화된’ 데이터와 융합하여 인류의 기억과 접속한 후, USB와 “나는 모든 곳에 있어”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사라진다. 광대한 정보, 물질화된 미디어와 융합된 루시는 개별성을 잃고 대신 인류라는 종의 대표, 초월적인 ‘루시’가 된 것처럼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신과 같이, 사라진 루시는 미래로부터 최초의 여자인 유인원, 과거의 루시에게 섬광과 같은 어떤 손짓을 한다. 신은 미래의 인간이고, 계시는 미래의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메시지라는 듯이. 어설픈 과학을 얼버무려 얼치기 철학 흉내를 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게 하는 영화였다. 뇌 과학과 진화생물학적 지식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소화하여 인류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는 ICT와 빅데이터 시대 버전의 창조신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그녀>는 2025년을 배경으로 손편지 대필작가 테오도르가 아내와 헤어진 상실감 속에서 맞춤형 운영체계 사만다와 대화를 시작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다. 스칼렛 요한슨은 목소리만으로, 루시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사만다를 연기해 언뜻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설득력을 불어넣었다. 운영체계인 ‘그녀’가 테오도르와의 계속된 대화, 즉 ‘경험’을 통해 점점 욕망과 감정을 가진 의식적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아날로그적 감성의 구현이라는 독특한 형식도 기술과 기계가 사라진 인간성을 회복하고 대체하는 아이러니, 기술과 그 구현물인 기계가 새로운 정신적인 것의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내는 역설을 잘 보여준다.

 

 

        자신의 최대치에 도달한 루시가 물질화된 정보와 접속하여 신체를 초월하는 것처럼, 테오도르를 사랑하며 몸의 부재를 고민하던 <그녀>의 사만다가 인간 테오도르와 자신(OS)의 공통점을 찾으면서 물리학 공부를 하고 ‘MATTER’라는 글씨를 띄워 보여주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두 영화는 최근 각종 스마트 기기와 빅데이터 기반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는 인간과 기술(기계)의 융합과 사이보그적인 인간조건, 그러한 조건에서 정보와 기억, 경험과 감정, 물질과 의식 등과 관련된 인간 정체성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보게 한다. 더 큰 존재와의 합일이라는 종교적 주제는 이러한 영화의 ‘포스트휴먼의 상상력’ 속에서 인간이 기계를 통해 물질세계와 접속하는 방향으로 그려지곤 한다.

 

 

        다나 헤러웨이가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라고 선언한 지 오래지만, 최근의 ICT와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도미니크 바뱅이나 캐서린 헤일스 등의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의 논의를 더 다양하게 활성화시키고 있다. 포스트 휴먼은 크게 인간의 몸에 기계가 결합된 사이보그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으로 구분된다. 사이보그와 인공지능 로봇 중에 현실로 다가온 것은 바로 사이보그다.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으로 시작되어 최근에는 사물인터넷, 스마트워치, 스마트안경, 스마트신발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 모바일 헬스케어 등으로 발전이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수퍼컴퓨터 대중화 시대'를 열고 있으며, '유진 구스트만'이라는 수퍼컴퓨터는 올해 심사위원 중 33%를 속이고 튜링테스트를 통과해 일각에서는 2014년을 인공지능 원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OS나 최근 정서적 인간적 기능을 대체하는 가족로봇의 출시가 시사하는 것처럼 기술은 이미 인간의 삶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앞서 말한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SF적 현실의 일부가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거나 근접 미래에 속한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우리의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존재의 의미에 대한 종교적 성찰과 상상력에도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양극화문제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도 요청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자신이 만든 기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포스트휴먼의 인간 조건에서는 아마도 초월적 존재가 된 루시가 결국 남긴 usb처럼, 사만다가 물질 속에서 인간과 자신의 공통점을 발견하려고 한 것처럼 물질에 대한 신화가 중요한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과학의 장에서, 혹은 영화적 상상력의 장에서 이미 그러한 물질의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안연희_
선문대학교 연구교수
chjang1204@hanmail.net
논문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원죄론의 형성과 그 종교사적 의미>, <“섹스 앤 더 시티”: 섹슈얼리티, 몸, 쾌락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 다시 읽기> 등이 있고, 저서로 <<문명 밖으로>>(공저), <<문명의 교류와 충돌>>(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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