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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가르치기(teaching religion)의 안과 밖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년도 하반기 정기 심포지엄-
대학 시절 한 학기 동안 들은 강의를 통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에 관한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강의에 매료되어 자신의 인생 항로를 바꾸게 된 구체적 사연이 실려 있었는데 저절로 공감이 갔다. 사실 필자도 주변에서 대학 시절 만난 한 편의 강의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기사나 말을 접할 때마다 어깨에 식은땀이 흐를 것이다.
강의와 관련하여 가까운 동료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논문이나 책을 쓰는 것보다 강의가 더 어렵다는 볼멘소리로서, 아무리 오래 강의를 했어도 강의실을 들어설 때마다 두려움이 앞선다는 고백이다. 이는 겸사(謙辭)가 아니라 강의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진실일 것이다. 강의가 잘 풀리지 않았을 때 밀려오는 엄청난 절망감! 이는 감당하기 힘들다. 강의가 잘 되었을 때 밀려오는 뿌듯함! 이는 그 어떤 기쁨과도 비견할 수 없다. 이처럼 강의는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에게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만큼 매우 힘든 과업이기도 하다. 강의에 대한 이러한 일반론은 종교 가르치기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종교를 가르치는 일은 그 어떤 주제보다도 더 중요하고 그만큼 더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종교 가르치기의 개념과 성격을 둘러싸고 그 동안 다양한 논의가 있어 왔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종교교육(religious education)’이라는 용어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teaching of religion, 신앙교육, 종파교육)과 종교 일반에 관해 가르치는 것(teaching about religion, 종교지식교육, 종교문화교육)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어 다소 혼란스럽다. 이 두 용어로 포착하기 어려운 종교 관련 교육을 가리키기 위한 용어도 다수 있다. 따라서 용어 정리부터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외적으로 충분한 합의에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용어 사용을 둘러싼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든지, 일반대학에서 행하는 종교에 관한 강의가 ‘교양교육(liberal arts)’의 하나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양교육은 문자 그대로 ‘자유의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따라서 종교에 관한 강의(종교 가르치기) 역시 자유의 기술을 가르쳐야 할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타인과 함께, 다르게 사는 삶’(living together differently)을 지향하는 ‘시민교육’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이번 심포지엄은 종교 가르치기(teaching religion)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다섯 명의 연구자가 나누어 접근하였다. 첫 번째 발표자는 '종교 연구'와 ‘종교 가르치기' 사이의 괴리 현상에 주목한다. 연구실에서 생산되는 지식과 강의실에서 통용되는 지식 사이의 커다란 분열상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현상의 의미와 효과에 대한 나름의 진단과 해답을 모색한다.
두 번째 발표자는 종교 연구에서만이 아니라 종교 가르치기 영역에서도 지배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세계종교 패러다임’을 문제로 삼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의 세계종교 전통을 종교에 관한 연구와 강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기존의 학문적 풍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안적 논의를 모색하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종교를 가르치는 수업의 의미와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세 번째 발표자의 작업이다. 발표자는 ‘종교와 영화’라는 교양수업에서 활용되는 영화라는 매체가 단순히 텍스트의 대체가 아니라 종교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보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네 번째 발표자는 신화를 강의할 때 신화의 내용을 살피는 차원을 넘어 그 신화가 당대의 요청에 의해 어떻게 읽혔는가 하는 정치적 맥락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동아시아 근대의 ‘단일민족’ 신화가 내셔널리즘과 맞물려 출현하는 과정을 ‘신화 만들기’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이러한 신화가 국민교육의 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 온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마지막 발표자는 ‘종교와 인권’ 혹은 ‘종교인권’에 관한 강의의 한 사례로서 기독교 사학에서의 종교교육을 둘러싼 논쟁을 ‘종교자유의 정치학’의 자리에서 검토한다. 특히 이 논쟁에 개입하는 세 주체의 담론 전략, 즉 종교권력(학교당국)에 의한 ‘선교의 정치’, 정치권력에 의한 ‘묵인의 정치’, 시민단체에 의한 ‘인권의 정치’를 분석한다.
이처럼 이번 심포지엄은 종교 가르치기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를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써 종교연구의 기존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종교 가르치기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것과 같은 여러 분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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