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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Halloween) 축제
- 한 수상한 외래 풍속의 한국 정착기
2015.11.24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할로윈(Halloween) 축제는 그 유래가 모호할 뿐 아니라 그 전개/전파방식도 매우 ‘수상한’ 축제이다. 할로윈 축제는 외래 축제가 한국사회로 유입되고 전개되는 과정을 관찰하고 그 종교적 요소를 분석할 수 있는 흥미로운 조사대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의 할로윈 축제를 일부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과 유치원 아이들의 전유물로, 특히 이태원이나 홍대의 거리나 클럽에서 관찰되는 청년문화의 하나로 단순히 생각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할로윈이 대중적인 축제로 정착한 데에는 미국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물론 할로윈은 미국의 토착문화는 아니다. 할로윈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원전 500년경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인 삼하인(Samhain)제에서 유래한다고 하며, 켈트족의 달력으로 새해(11월 1일) 전날 밤에 해당하는 10월 31일에는 일종의 임계 상황이 발생하여 죽은 자들이 산 자의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켈트족은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1년 동안 다른 사람의 몸속에 있다가 떠난다고 여겨, 이날 죽은 자들의 영혼이 앞으로 1년 동안 머무를 상대 내지 육체를 택하는 날로 생각하여, 이를 막기 위해 사람들이 귀신 복장을 하고 집안을 차갑고 어둡게 하는 풍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로마가 켈트족을 정복한 뒤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교황 보니파체 4세가 11월1일을 '모든 성인의 날‘ (All Hallow Day)로 정하면서 그 전날인 10월 31일은 '모든 성인들의 날 전야’ (All Hallows' Eve)가 되고, 후에 '할로윈(Halloween)' 즉 현재의 용어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1840년대의 대기근을 피해 온 아일랜드계 이주민에 의해서 할로윈은 미국에 전해졌다. 20세기 이후 할로윈 밤에 유령과 마녀 등으로 가장한 아이들이 이 집 저 집을 돌면서 “과자를 안주면 못된 장난을 칠거야” (trick or treat)라고 하면서 사탕과 과자를 얻어내는 풍습이 미국에 정착되었으며, 할로윈의 상징물이 된 ’호박초롱‘ (jack-o'-lantern) 또한 미국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최근 조사 - Lifeway Research (9.14.~28, 2015) - 에 의하면 미국인의 59%가 할로윈을 즐긴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할로윈이 미국에서 대중화되고 축제화된 것에는 미국의 상업주의와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영향이 크다. 미국에서 할로윈데이는 이미 추수감사절을 앞질러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큰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날이 되었다. 올해 미국의 ‘전국 소매연합’ (Alliance Data Retail Services)은 1억5천7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할로윈을 기념할 것이며, 1인당 평균 74.34 달러, 총 69억 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으며, 이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할로윈 복장과 사탕 구입에 각각 총 26억 달러와 20억 달러를 소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할로윈 상업주의와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결합된 것으로, (좀비)공포영화의 소재가 할로윈 축제문화의 한 부분을 구성할 뿐 더러, 다양한 영웅 캐릭터들 -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슈퍼맨 등 - 과 애니메이션 주인공들 - 겨울왕국의 엘사, 백설공주, 라푼젤 등 - 이 할로윈 코스튬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현 할로윈 축제는 켈트족의 습속이 미국의 상업주의, (대중)문화산업, 소비문화와 결합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즉 '재창조된’ (reinvented)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할로윈 축제는 단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미 글로벌한 축제로서 새로운 면모를 더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할로윈 축제가 그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으로 역수출되었으나 크게 환영 받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일본과 같은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기념일 협회’는 2014년 할로윈 관련 제품 시장이 1100억 엔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였고, 이로서 일본에서 할로윈 시장은 밸런타인데이를 앞서 크리스마스에 이은 2대 기념일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참고로, 일본에서 할로윈데이는 여러 세대가 어울리는 가족중심의 이벤트로 자리 잡으면서 대부분 자택에서 치러진다고 한다.
한국에서 할로윈 축제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들어왔으며 현재 관련 매출액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으나, 2000년대 들어 유치원, 초등학교 등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하였고 2010년대 들어서는 성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가 놀이공원/테마파크 주최로 열리고 클럽 등에서는 관련 파티나 행사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대중매체가 할로윈 축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2013년에 많은 매체들은 “할로윈(데이) 광풍”이란 제목 하에 지나친 소비주의, 청년층으로의 빠른 확산과 이들의 일탈을 지적하면서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기사는 할로윈 축제를 소비하는 이들의 행동방식에만 주목할 뿐, 진작 이러한 소비를 유도하는 다양한 이벤트와 캠페인을 전개하며, 할로윈 시장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집단들에 대해서는 커다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할로윈이 친숙한 축제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주체에 의한 다양한 형태의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행사나 클럽단위의 행사를 제외한 2015년에 열린 비교적 큰 규모의 할로윈 축제를 열거하고자 한다: (1) 지역사회 관련 - ‘이태원 할로윈 축제’, ‘신촌 할로윈 축제’, (마포) ‘망원정 할로윈 축제’, 파주영어마을의 ‘Spooky Encounters', 중구와 서울시가 공동주최한 ‘남산도깨비 할로윈’, 영등포문화재단의 ‘할로윈 축체’,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주최의 ‘한강해피 할로윈’, 춘천시(축제조직위원회) 주최의 ‘강촌할로윈축제’, (재)광주비엔날레 주체의 ‘부리브라더 할로윈 페스티벌’ 등; (2) 테마파크/놀이공원 - ‘서울랜드 할로윈 페스티벌’, ‘롯데월드 할로윈 파티’, ‘에버랜드 할로윈 & 호러나이츠’, ‘삼정더파크 할로윈 페스티벌’ 등; (3) 대형 호텔 - 쉐라톤 ‘블랙할로윈 파티’, JW 메리어트 호텔 ‘섹시 호러 할로윈’ 파티, 서울팔래스호텔 ‘패밀리 할로윈 파티’, 그랜드 하얏트 인천 ‘할로윈 키즈 파티’ 등.
위에서 언급한 행사와 함께 올해에도 할로윈 특수에 편승하여 국내 식음료/외식업계, 유통업체들의 소비촉진을 위한 관련 마케팅과 이벤트성 행사가 봇물을 이루었음은 물론이다. 2015년의 상황에서 보듯이 한국사회에서 할로윈 축제는 개인적인 이벤트의 차원을 넘어 그 규모를 확장하며 빠르게 상업화, 엔터테인먼트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할로윈 축제가 대도시(특히 서울)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도시형 축제’라는 점은 이 축제가 소비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사업체 뿐 아니라 다양한 자치단체들이 (국적불명의) 할로윈 축제를 주최 혹은 후원하고 있다는 것으로, 새로운 축제가 지역사회나 지역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축제는 관광산업과 직결되는 것으로 지자체의 할로윈 축제에 대한 투자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관찰되는 할로윈 축제는 다른 곳에서도 그러하듯이 종교적 성격이 거의 사라져 더 이상 죽음이나 이에 대한 실존적 공포를 대면하고 극복하는 기재도, 기존질서를 뒤엎고 카오스 상태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의식도 아니다. 오히려 할로윈 축제는 변장을 통한 일시적인 자기변환의 오락성이 극대화되면서 자신의 일상적 스트레스를 방출하고 일탈을 꿈꾸는 기회로 소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할로윈 축제는 여전히 지역공동체의 축제로 기능하고 있는 미국의 할로윈 축제와도, 일본의 가족중심의 이벤트성 축제와도 차이를 보이면서 아직은 정체가 모호한 축제로 남아있다. 이로서 한국의 할로윈 축제는 오히려 상업주의의 좋은 타깃이 되어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종교현상>,<New Age in South Korea>, 〈젠더화된 카리스마〉, 〈현 한국사회에서 합동천도재의 복합적 기능에 대하여〉, 공저로는 《Religion in Focus》,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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