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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92호-지령 32호를 맞이하여(종교문화비평)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10.17 19:53

 

          지령 32호를 맞이하여              


         news  letter No.492 2017/10/17

 

 

 

 


       종교 연구와 음식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처음부터 그랬다. 종교집단의 아이덴티티 형성과 유지를 위해 음식처럼 효과적인 것은 별로 없다. 음식 규제와 금기를 통해 집단의 안과 밖을 긋는 경계선이 마련된다. 음식은 음식 이외와 맺는 관계를 함축하면서 효과적인 상징으로 작동한다. 또한 음식은 그 집단이 그리고 있는 다른 세상 및 거기로 가는 여정(旅程)도 보여주고, 그 매체 구실도 한다. 그래서 음식을 빼놓으면 종교 집단의 우주관을 이해하는데 빈껍데기가 되기 십상이다. 집단과 집단 사이뿐만이 아니다. 집단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가지 구분선을 이해하는 데에도 음식은 훌륭한 통로 역할을 한다. 계급, 신분, 젠더, 세대, 인종, 그리고 성적 취향 등의 갖가지 차이 및 차별에 음식이 연루되어 있다. 딱딱했던 이런 문제에 음식을 통한 접근이 이루어지면 갑자기 활기찬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새롭고도, 생생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의 의미, 음식의 상징은 그동안 많은 연구의 초점이 되어 왔다. 음식과 언어의 관계가 부각된 까닭이기도 하다.


       먹는 입과 입 속의 혀(그와 연관된 말과 글)는 천생 가깝게 있을 운명인 셈이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와서 또 다른 입으로 나간다. 밖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밖으로 통과한다. 이질적인 것과 동질적인 것이 교차하고, 나와 남이 부딪히는 경계선을 넘나든다. 여기에서 음식이 섹슈얼리티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성적 행위는 나와 남이 붙어서 하나처럼 되었다가 다시 떨어지는 것이고, 섹슈얼리티는 수시로 이접(離接)의 나들목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음식 먹는다는 것과 성적 행위를 연결시키는 관점을 그저 음란한 시정잡배의 것이라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성행위가 종종 죽음과 연관되곤 하는 것도 소화과정을 통해 음식의 원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종교-음식 연구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 몸, 음식, 물질의 연관성이 전체적으로 주목될 필요가 있다.


      밖에 있던 물질은 음식이 되어 안으로 들어오면 나의 몸이 된다. 물질→음식→몸의 방향이다. 몸이었던 것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밖으로 빠져나와 자연의 물질로 귀속된다. 그 사이에 배출된 이전의 몸은 다른 생명체의 음식이 된다. 죽음은 몸의 일부가 아니라, 몸의 전체가 다른 생명체의 음식이 된 다음에 재(再)물질화되는 것을 가리킨다. 카니발리즘(cannibalism)은 우리 몸이 남의 음식이 되는 것으로 대부분 소름이 돋을 만큼 끔찍하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인간이 인간을 먹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피할 도리는 없다. 살아있던 것은 빠르든 늦든 몸→음식→물질의 방향으로 진행되기 마련이고 그래야 다른 몸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통해 종교를 보면 그동안 잊혀진 몸의 감각이 되살아남을 느끼며 새롭게 종교를 파악할 수 있다. 교리학습과도 같은 수업에 지루해 하던 학생들도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다른 세상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낼 수 있다. 종교문화비평에서 "종교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종교"라는 제목으로 특집을 마련한 것도 이와 같은 종교와 음식의 밀접한 관계와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 주제는 우리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


       이번 특집에 담은 주제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일본 신사의 마쓰리(祭), 유대교의 희생제의, 서양 중세의 성녀(聖女), 초기불교에서 마늘의 의미, 천도교에서 밥이 차지하는 뜻, 한국 굿의 의례음식, 그리고 한국불교의례에서 공양의 의미 등이 두루 다뤄지고 있다. 각 논문은 모두 매력적인 주제와 개성적인 서술 방식 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요약을 하거나 군더더기 말을 덧붙이는 것은 필요 없을 것이다. 이번에 각 필자들이 정성스럽게 마련하여 내놓은 논문이 독자들에게 훌륭한 음식으로 소화되어 독자들의 피와 살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다른 음 식으로 식사 초대가 이어져 우리들의 연구는 보다 풍성해 질 것이다.


      특집 이외의 논문은 두 편이다. 첫 번째 논문은 16세기 이후 유럽 천주교에서 불가타 성경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검토한다. 텍스트를 다루지만 단지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취급 방식에 주목한다. 저자의 관심은 이런 연구가 동아시아에 파견된 예수교 선교사와 결국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고자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논문은 현지조사를 통해 유교의 시제를 순례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근대 이후 한국 유교의 특징을 "조상종교"의 용어를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성스러운' 장소로서 묘소와 선영이 부각되고, 조상을 중심으로 종족 공동체가 유지되는 측면이 강조된다.


      종교문화기행은 일본종교 및 한일관계 연구자인 저자가 프라하, 드레스덴, 리스본 등 유럽의 여러 도시를 거닐면서 떠오른 생각과 피부로 느낀 점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우리는 그를 따라 걷다가 시간 여행을 하며 과거로 침잠한다. 저자는 자신의 유럽 여행이 문외한의 두서없는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여행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의 상상력은 저절로 풀어져서 날아오른다.


      설림(說林)은 독자들이 늘 그런 풀어짐과 분방함을 기대하는 곳이다. 이번 설림도 기대를 어그러뜨리지 않는다. 비교문학 연구자이자 한국문학 번역가인 저자는 우리에겐 낯설 수 있는 방글라데시 근대사와 종교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알려준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분리 독립에 따른 엄청난 갈등과 인명 살상의 맥락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많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뿐만 아니라, 서구 매스컴의 관점에서 보는 폐해의 탓이다.


      주제서평은 한국에서 발간되는 잡지 <스켑틱>을 살펴보고, 종교학자의 관점에서 평가한 내용이다. 대체로 과학적 회의주의자에게는 회의주의라는 말에서 풍기기를 기대하는 주저함이 없다. 잰 체를 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사이비 과학, 미신을 언급하면서 공격적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내세운다. 예컨대 무신론자 도킨스의 태도는 그가 비난하는 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일방적이다. 이런 면에서 저자가 "오십보백보"를 말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어디 그들뿐이랴! 그런 부류는 우리들 안에도 있을 터이다.


  한 마디로 이번 호의 내용은 풍성하다. 잔치 음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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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종교문화비평>32호(2017년 9월30일 발간) 권두언에 실린 글 입니다.

 


장석만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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