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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09호-올림픽과 달력, 그리스도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02.13 19:05

 

                                        올림픽과 달력, 그리스도교              


 

 

   news  letter No.509 2018/2/13

 

 

 

  

     김연아였습니다, 예상대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두 선수로부터 성화를 이어 받아 성화를 점화하면서 개막식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의 ‘여왕’이 ‘동계 올림픽의 아이콘’이 되었다고 합니다. 동계 올림픽은 1924년부터 시작되지만, 피겨 스케이팅은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됩니다. 피겨 스케이팅 종목 때문에, 1908년 런던 올림픽은 여름과 가을 두 기간에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1908년 런던 올림픽은 피겨 스케이팅의 정식 종목 채택 말고,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정러시아 대표단이 12일이나 늦게 폐막식이 끝난 이후에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달력 때문입니다. 당시 서구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던 반면, 제정러시아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했습니다. 러시아는 1918년에 레닌 주도하에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입니다.


       다른 문화권도 마찬가지지만, 서구 문화는 정확한 달력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을 들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지배 종교가 된 이후 종교 전례, 특히 부활절을 정확히 지키기 위해 정확한 달력이 필요했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이 태양의 경로를 반영한 365.25일의 태양년과 달라서 128년 마다 하루가 남게 됩니다. 이로 인해 교회력에서 부활절을 정하는 춘분과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결과 부활절은 춘분일인 3월 21일로 정해졌지만, 거의 1200년 후인 1582년에는 점점 뒤로 밀려 3월 11일이 되었습니다. 태양년과 율리우스력의 차이로, 부활절이 원래 춘분 후 첫 보름달 이후 첫 주일이었는데, 점점 더 보름달 시기에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575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달력을 개혁합니다. 그는 누적된 오차를 해결하기 위해 열흘을 삭제하는 회칙을 내립니다. 그레고리력은 교회의 중요한 축일이 적은 달을 골라 10월 5일부터 14일까지를 삭제합니다. 10월 4일 목요일은 10월 15일 금요일로 바로 이어졌습니다. 한해의 길이를 365일 5시간 16초로 정하고, 오늘날 사용하는 윤년 규칙과 1년의 시작이 1월 1일이라는 내용도 함께 결정되었습니다. 율리우스력은 128년에 하루 오차가 발생하지만, 그레고리력은 4700년에 하루 오차가 발생합니다.


      1582년 정식으로 시작된 그레고리력은 전파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달력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가톨릭 국가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졌지만, 개신교 지역에서는 전파 과정에서 폭력을 동반한 충돌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독일과 덴마크는 1700년에, 영국은 1752년에, 스웨덴은 1753년에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입니다. 정교회는 새 역법을 받아들이는 것에 강하게 저항하지만, 불가리아가 1916년에, 루마니아가 1917년에, 그리스는 1923년에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입니다. 일본은 1873년, 중국은 1912년, 터키는 1927년에 그레고리력을 채택합니다. 그레고리력이 해외로 전파되고 확장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의 팽창이 촉매 역할을 했습니다. 그레고리력은 오늘날 거의 전 세계의 시간을 관장하는 공통 달력의 역할을 합니다. 이제 그레고리력은 우리의 일상을 규정하는 지침이 되었습니다.


       시간과 달력을 소유하고 관장하는 것은 권력의 구체적인 표출 행위이기도 합니다. 달력을 관장하는 사람은 시간을 소유하고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합니다. 역사 속에서 시간과 달력은 오랫동안 사제의 영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신을 위한 축제를 이어가는 데 달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종교력을 반영한 달력은 신에게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형상화된 지도이기도 합니다. 그레고리력에 대한 개신교와 정교회의 반대와 저항의 이면에는, 교황이 그레고리력을 수단으로 다시 종교 권력을 통일하고 장악하려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습니다.



       비록 그레고리력이 전 세계의 공통 달력의 위상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문화와 국가가 그레고리력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창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이 주간 2월 16일은 설날입니다. 우리는 그레고리력과 더불어 여전히 전통 태음력에 따른 삶의 주기를 살아갑니다. 또한 그리스도교는 2월 14일 ‘재의 수요일’을 지킵니다. ‘재의 수요일’은 예배나 미사에서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거나 이마에 재를 바르면서 참회하는 예전입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 40일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이 회개와 희생, 봉사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기간인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올림픽 주간에 일상의 달력과 음력, 교회력의 세 가지 다른 시간에 얽혀 삶을 살아갑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는 서로 다른 달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날도 다르고, 기원년도 다른 다양한 달력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무함마드의 히즈라를 기원으로 622년이 원년인 무슬림들, 새해 시작이 닛산월로 기원전 3760년이 기원인 유대인들, 석가모니가 입적한 기원전 544년을 기원으로 하는 불자들, 심지어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기준으로 주체력을 사용하는 북한사람들까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인류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한국 개신교인 일부가 올림픽 기간 동안 이슬람을 위한 이동식 기도처 설치를 적극적 반대하고 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생각납니다. 그는 393년에 올림픽을 이교도 행사라고 폐지시켰습니다. 2018년의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이교도의 흔적을 찾아내는 그들의 안목과 판단, 행동이 놀랍습니다. 2000년 전 한 지방에서 출발한 달력을 유일한 정통으로 확신하고, 다른 달력을 평가하고 재단하고 폐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세계 평화’를 꿈꾸는 올림픽 정신과도 사뭇 다른 행동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버리고 세상을 품었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신재식_
호남신학대학교 교수
저서로 《예수와 다윈의 동행》,《종교전쟁》(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 <그리스도교에서 본 마음과 몸: 정경을 중심으로>, <한국개신교의 현재와 미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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