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letter No.549 2018/11/20
지천으로 쌓인 낙엽 덮인 길을 걸었습니다. 강을 끼고 뻗은 둔치길이라서 그런지 강물도 바람도 그 낙엽과 더불어 있었습니다. 하늘도 맑게 낙엽을 아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피곤했습니다.
점점 조용하게 살고 싶어집니다. 사람 만나는 것도 힘이 들고, 방송이나 신문을 보는 일도 힘겹습니다. 계절의 바뀜 또한 견디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시간도 너무 깁니다. 책을 읽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아직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서서히 무거워집니다. 일생 즐겨한 걷는 일조차 뚜벅거려집니다. 친구들의 부고가 문자로 전해집니다. 받은 것 다 모았다면 내 삶이 거기 차곡차곡 쌓여 벌써 내 삶의 거개(擧皆)가 다 묻혔거나 타 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내 부고는 언제나 전해질지, 왜 이리 그 일이 더딘지 망연해지기도 합니다. 조용하게, 홀로, 깊숙이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여의도에서 해마다 벌이는 불꽃축제를 보았습니다. 집에 앉아 창문을 통해 손에 잡힐 듯 터지는 불꽃의 찬란함에 나도 모르게 푹 빠졌습니다. 처음이 아닌데도, 작년에는 그 순간의 화려함에 경탄하는 탄성을 들으면서 슬그머니 경멸조차 품었던 광경인데, 올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의 작열(灼熱)이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바로 내가 경멸했던 그 찰나적인 희열이 내 것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불꽃이 아니라 찰나가 새삼 뭉클했던 거죠.
삶이 길면 소란함을 피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조용하게 살고 싶으면 삶을 찰나적으로 숨 쉬고 끝내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올해 불꽃놀이에서는 불꽃이 아니라 불꽃이 전해주는 찰나를 비로소 바라보게 되면서 문득 이제까지 스스로 겪지 못한 찬탄을 금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저도 언제는 삶이 찰나라는 사실이 아픈 적도 있었는데 그 찰나가 이제는 이렇게 부러워질 줄은 몰랐습니다.
삶이 길면 회한도 길어집니다. 부끄러움이 늘어가는 거죠. 치사하게 용열(容悅)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비겁한 침묵을 스스로 현명한 인내라고 우기던 모습도 새삼 떠오릅니다. ‘언젠가는...’하면서 기다리고 미루고 피하고 멈췄던,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일, 그러니까 용서를 구했어야 했던 일, 천착을 게으르지 말았어야 했던 일, 나를 열어놓지 못했던 일, 삭이지 못한 분(憤)을 끝내 버리지 못한 일, 사랑했어야 했는데, 그러나 참으로 나 자신을 사랑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해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렇게 질기게 이어 드러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어떤 순간 불현 듯 사라지면 그 순간이 그 나름의 내 온전한 모습을 지닐 수도 있었을 법한데 남보다 오래 삶은 그런 축복의 기회를 내가 차지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모자란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짙게 해줍니다.
하지만 오래 삶은 진정한 축복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용서받을 수 있는 유예된 시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겨우 깨닫는 이 긴 회한의 내용을 내가 미리 불꽃처럼 태워버렸다면 나는 나 스스로의 산화(散華)에 함몰된 어리석은 행복을 누리는 측은한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래도 길어진 회한을 되씹으면서 점점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지복(至福)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벌써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친구들은 그 지복을 나보다 먼저 누린 지복자 중의 지복자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따라 아픈 회한 속에서 그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단풍의 계절도 지고, 낙엽의 계절도 졌습니다. 이제 곧 침묵의 계절이 비롯할 터인데 아직 나는 낙엽의 계절을 조금은 더 길게 걷고 싶습니다. 더디고 뚜벅거리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