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세계유행에 떠오르는 생각


news  letter No.619 2020/3/24   

 

 

                                                                                                 [이미지출처: 도서 <돌봄의 기술>]   


보름 전 즈음에 미국인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이 시기에” 나와 가족의 안부와 근황을 묻는 짧은 내용이었다. 필시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유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취했을 터지만, 친구의 문자 메시지에는 그런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제 미국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4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니 이번에는 내가 친구의 안부를 물어야 할 처지이다.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으니 고령에 속한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마트에 생활용품이 바닥이 나고 의료 시설과 장비가 부족할 뿐더러 이러한 불안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기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대폭 늘었다고 하니, 나는 어떤 말로 “이 시기”를 견디고 있는 친구에게 안부를 물어야 할까?

전염병은 미생물 병원체, 숙주, 환경의 요인이 결합되면서 발생한다는데, 현재 벌어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세계대유행을 겪으면서, 인류 스스로가 쉽게 숙주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미생물 병원체, 특히 바이러스에게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대로부터 전염병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시를 중심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오늘처럼 메트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사회가 작동하고 세계 각국의 도시를 오가며 생활하는 환경에서 전염병의 완벽한 예방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문학 작품이나 역사서에서 접하는 전염병에 관한 이야기가 현실이 된 오늘날 새삼 전염병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오늘날보다 의료수준이 열악했던 과거에 그토록 끔찍한 질병에 맞서야 했던 사람들의 처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수전 손탁은 질병을 객관적인 과학의 대상으로 한정할 때만 비로소 질병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수십만 명 혹은 수천만 명의 생명을 쉽게 앗아가는 전염병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과학적 근거보다는 상황적 판단과 종교적 상상 속으로 미끄러져 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과 추측은 사람들로 하여금 질병에 대한 공포를 증폭시키고 감염자에 대한 격리와 감시, 그리고 추방과 배제의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을 확립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최선은 감염원을 차단하고, 감염된 자를 사회에서 일정 기간 격리하여 돌보는 것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근대의 시기에 접어들어 전염병은 ‘생명권력’의 활동 무대였고, 그 무대에서 감시와 처벌의 사회적 힘이 쉽게 작동할 수 있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측면은 대표적으로 하와이에서 찾을 수 있다. 1860년대 하와이 제도에서 어떤 병이 급격히 유행했는데, 하와이 사람들 사이에서 그 병은 ‘마이 파케(중국인병)’ 혹은 ‘마이 알리(요리사의 병)’으로 불렸다. 속설에 따르면, 대부족장 조지 나에아는 중국인 요리사로부터 이 병에 감염되어서 마우이의 와이루쿠로 유배되고 5년 후에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의 시중을 들던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면서 하와이 제도 전체에 그 병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오늘날에 그 병은 한센병으로 불린다. 그렇지만 공식 기록에 따르면, 1835년에 카우와이 출신의 카물리라는 여성이 처음으로 한센병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난다. 1861년에 102명의 한센병 감염자가 발견되고 점차 감염자가 하와이 제도 전체에서 급격히 늘어나자, 1864년 카메하메하 5세는 ‘나병확산방지법’을 공포하고 몰로카이 섬의 칼라우파파에 수용소를 설립하여 1866년부터 한센병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103년 동안 8천명 이상의 한센병자가 그곳에 격리되어 삶을 마감해야 했다. 한센병의 유행 초기에 하와이 토착민은 물론, 하와이 정부에 고용되어 격리수용 정책을 주관했던 서양 의사들도 이 병의 실체와 유입 경로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단지, 한센병이 사람간의 접촉에 의해서 전파된다는 점을 근거로 가족과 사회로부터 한센병 환자를 강제로 격리하여 외딴 섬의 거친 지역에 살아가도록 방치했던 것이다. 격리 수용 초기에 한센병자들은 칼라우파파의 수용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믿고 그곳으로 떠났지만, 실제 그곳에는 치료시설은 물론이거니와 거주할 공간조차 없었고 수용된 한센병자들에게 식량과 약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행정 당국에 의해서 스스로 생존하거나 죽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의학과 보건체계가 발전한 오늘날에도 전염병을 예방하고 전체 사회로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격리와 차단의 방역체계가 필수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질병의 격리와 차단이 사람에 대한 억압과 배제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특히 그 대상이 사회적 약자로 제한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2009년에 영국정부는 인플루엔자의 세계대유행과 관련해서 종교단체들에게 안내지침을 마련하여 제공한 바가 있다. 인플루엔자 세계대유행에 관한 정보 제공을 포함해서 인플루엔자에 직면했을 때 종교공동체를 보호하고 인플루엔자의 확산을 막기 위한 행동 요령 등을 상세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 지침서에서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종교집단 역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단체라는 점과 감염 통제 훈련을 받은 종교 구성원들이 전염병에 걸린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능동적인 돌봄 체계를 가동하도록 권고하는 내용, 그리고 정부의 방역 체계와 행동을 검토하여 그 필요성에 관한 합리적인 이유를 종교 구성원에게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불안과 긴장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을 주도록 권고하는 대목 등이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가 낳고 있는 적대와 환대 사이의 사회적·심리적 풍경에서 종교는 어느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 남게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박상언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생명윤리담론 분석: 한국 기독교와 불교를 중심으로>,<간디와 프랑켄슈타인,그리고 채식주의의 노스탤지어:19세기 영국 채식주의의 성격과 의미에 관한 고찰>,<신자유주의와 종교의 불안한 동거: IMF이후 개신교 자본주의화 현상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