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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접촉이 없으면 마음도 멀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Out of touch, out of mind


news letter No.733 2022/6/14

 



      나는 이른바 기러기아빠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기러기아빠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기러기아빠란 “자녀의 조기 유학으로 자식과 아내를 해외로 보내고 자신은 국내에 남아 돈을 벌어 보내는 가장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내 경우에는 ‘자녀의 조기 유학’이 아니라 ‘아내의 유학’에 해당하고, 돈을 벌어 일부를 보낸 일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또한 통상 기러기아빠는 사정에 따라 가끔은 가족을 보러 갈 수 있는 중산층 아빠를 의미하는 반면, 형편이 좋아서 언제든 외국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독수리아빠, 경제적 여유가 없어 국내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은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는 펭귄아빠라고 한다. 따라서 내 경우에는 아주 가끔은 부실한 기러기아빠가 되었다가 많은 경우 펭귄아빠로 살고 있다. 여하튼 아내와 아들은 2010년 8월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떠났다. 당시 아들은 만 네 살이었다.

    아내와 아들을 인천 공항에서 작별하고 돌아오던 날은 정말 슬펐다. 오히려 내가 유학을 온 것처럼 나 홀로 이역만리 외딴 섬에 버려진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스카이프(Skype). 스카이프는 2003년 에스토니아의 스카이프 테크놀로지사가 개발한 인터넷전화 프로그램인데 컴퓨터를 이용해 무료로 영상통화가 가능하였다. 아내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요일을 정해 영상통화를 하였다. 인근에 살고 계신 어머니도 함께 모셔와 이역만리 며느리와 손주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비록 10분 남짓한 시간의 통화였고, 화질도 좋지 않았을 뿐더러 가끔은 렉이 걸려 화면이 일그러지고 소리도 지직거렸지만, 음성 통화로는 대체할 수 없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저 먼 나라에서 실시간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2011년 3월. 더욱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애플(Apple)에서 아이패드2(iPad2)를 발표한 것이다. 전작인 아이패드1에 없던 카메라가 장착되었고, 페이스타임(FaceTime)이라는 영상통화 소프트웨어가 탑재되었다. 당시 나는 8개월간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아내와 나는 각각 아이패드2를 한 대씩 구매하였다. 페이스타임을 통한 영상통화는 스카이프와 질적으로 달랐다. 선명한 화질과 끊김 없이 부드러운 영상통화는 그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특히 아이패드의 이동성과 편리성은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잡던 것에서 매일 아침 저녁 통화를 가능케 하였다.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였다. 서울과 토론토 사이가 순식간에 압축되는 말그대로 시공간 압축의 경험이었다. 세계화와 지구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웃오브 사이트 아웃오브 마인드라더니, 멀리 떨어져 있어도 화면으로나마 매일 볼 수 있었기에 몸은 떨어졌어도 마음은 연결되었다. 게다가 최소한 일 년에 2주는 내가 캐나다를 방문하였기에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다.

    코로나19로 아내와 아들을 직접 못 본지가 3년째가 되었다. 그동안에도 여전히 매일 아침 저녁으로 페이스타임을 하고 있다. 하지만 화면을 통해 보는 것만으로는 마음의 연결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낀다. 어차피 화면은 전원을 끄면 곧바로 사라진다. 실시간이라한들 서울과 토론토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실제로 좁히지는 못한다.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불가능하고, 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이 있다는 것, 잠시라도 물리적으로 스치고 접촉하는 것만이 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영상통화의 시공간 압축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 직접 만나지 못한 사이 부쩍 커버렸음을 화면으로도 알 수 있다. 3년 전 나보다 작던 키는 이미 내 키를 넘어섰다. 아웃오브 터치, 아웃오브 마인드. 물리적 접촉없음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연결도 멀어지는 느낌이다.

    우주의 탄생에 대한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이고 지구의 나이는 대략 46억 년이라고 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지구에서 원시적 생물이 탄생한 것은 약 38억 년 전이고, 인류의 원조가 등장한 것은 최대로 해도 약 6백만 년 전, 초기 인류가 등장한 것은 약 250만 년 전이라고 한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정착한 것은 약 1만 년 전이라고 하며, 인류의 역사에서 문자가 등장한 것은 약 5천 년 전이다.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환산한다면, 태양계는 8월 31일에 탄생하였고, 지구는 9월 21일에, 인류는 12월 31일 밤 11시 59분 46초쯤에 등장하였다. 인류의 역사가 길어보여도, 우주의 역사에서 1만 년 전 인류와 우리는 그저 동시대의 한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컴퓨터의 원조격인 30톤짜리 공학용 계산기 애니악(ENIAC)은 1946년에 만들어졌고, 개인용 컴퓨터(PC)는 1970년대에 등장했으며, 영상통화가 보편화된 것은 2010년대이다. 인류사에서 인간이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것이 고작 100년 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 이후 종교 공동체의 행보에 대해, 특히 온라인 예배와 같은 비대면 모임에 대해 많은 가능성이 말해진다. 하지만 종교는 인간들의 공동체이고, 인간은 비대면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는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통해 피부로 느끼고 있다. 물론 종교 공동체는 앞으로도 디지털 매체와 비대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많은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다. 언젠가는 가상현실이 고도화 되어 디지털 매체를 통해 현실과 구별이 안 될 정도의 감각을 재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전망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안에는 물리적 접촉에 대한 인간의 강력한 갈구는 결코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 형성해 온 검증된 자신만의 물질적 신체와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종교는 바로 그런 인간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종교 역시 인간들의 직접적인 만남과 접촉을 계속 추구할 것이다. 올 여름에는 어떡해서든 가족이 직접 만날 계획이다. 내가 캐나다를 가든지 아내와 아들이 한국에 들어오든지 말이다. 화면을 뚫고 아내와 아들과의 물리적 접촉이 절실하다.

 

 

 

 

 

 

 

 

 


김재명_
건양의대 의료인문학교실 조교수
<종교의 지구지역화에 대한 이론적 연구: 한국개신교를 중심으로>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논문으로 <종교학과 의료인문학: 의학교육을 위한 종교학의 역할 모색>, <한국개신교의 ‘생명평화’ 운동과 사상>, 저서로 《죽음학교실》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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