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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46호-종교학자가 꿀벌을 키우면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9. 27. 17:25

 종교학자가 꿀벌을 키우면


news letter No.746 2022/9/27

 

                         

  1.
    요즘 이곳 농부들은 참깨를 수확한 자리에 다시 땅을 갈고 비료를 뿌려 마늘을 심고 있다. 지금 심는 마늘은 한겨울을 나고 5월경에 수확이 된다. 추운 겨울날 칙칙한 회갈색의 땅에 짙은 녹색의 물결을 이루다가 가끔씩 바람에 마늘 냄새가 실려 오는 날이면, 이곳은 전혀 딴 세상임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텃밭에 앉아 농부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한량의 전형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나는 그 손가락 앞에 조금은 의기양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도 한여름 땡볕에서 꿀벌을 지키느라 ‘헌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농부들의 몸에 배인 부지런함과 노동 강도에 비하면 그 발끝 만큼에도 미치기 어렵지만 말이다.

     꿀벌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수년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주위에서 양봉을 하는 분들께 그런 뜻을 내비쳤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책이나 뒤적거리는 ‘백면서생’이 무슨 양봉타령이냐는 마음이었을까, 아무튼 자신들이 걷은 꿀은 나눠주곤 하면서도 꿀벌을 키우고 싶다는 내 의사는 조용히 외면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올 7월 초에 내가 선생님으로 칭하는 분이 벌통 두 개를 내게 분양하셨다. 벌통을 가져오기로 한 날 아침에 미리 내 텃밭에 와서 벌통을 놓을 자리를 정리하셨고, 저녁 무렵에 벌통 두 개와 여분의 벌통 하나, 꿀벌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방충모자, 훈연기, 마른 쑥, 내검칼 등을 함께 가져오셨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그분은 훈연기에 마른 쑥을 넣어 연기를 피우는 법, 벌통 뚜껑을 열고 벌집(소비)을 벌통에서 꺼내는 법, 벌집과 꿀벌의 상태에서 눈여겨 볼 점 등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셨다. 그 자리에서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말과 손짓에 눈과 귀를 집중하면서 잘 키우겠다는 결의를 다져 보았다.

     그러나 이 각오를 한여름의 뙤약볕이 밀랍을 녹이듯이 녹여 버린 생명체가 있는데, 바로 말벌이다. 특히 8월 중순 어느 날에 불쑥 내 벌통에 출현한 장수말벌은 벌통 주위에 꿀벌들의 사체를 수북이 쌓아놓아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부랴부랴 말벌 방지용 그물을 구해서 벌통 주위에 설치하고 하루 종일 말벌들과 전투를 벌였지만, 꿀벌의 활동은 눈에 확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결국 선생님은 내 벌통들을 가져가고 다시 새 벌통으로 바꿔 주셨다. 그러나 새 벌통으로 교체한 바로 그 날에 다시 장수말벌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고, 여기에 꿀벌 진드기까지 가세한 탓에 벌통 한 곳의 꿀벌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남은 벌통 하나에 사생결단(?)을 해야 할 형편이니, 가뭄에 속 타는 농부의 마음과 비교한다면 너무 억지인가?

  2.
     꿀벌 실종 혹은 꿀벌의 집단 죽음과 관련해서 타부아요 형제(형은 양봉가, 동생은 철학자)는 그리스 신화의 아리스타이오스 이야기를 전해준다(프랑스와 타부아요·피에르앙리 타부아요, 《꿀벌과 철학자》, 배영란 역, 미래의창, 2018). 아폴론과 님프 키레네의 아들 아리스타이오스는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 가축 돌보는 법, 자기 몸을 스스로 돌보고 치유하는 법, 올리브 기름을 채취하는 법 등을 알려준 농사와 목축의 신이다. 게다가 아리스타이오스는 최초의 전문 양봉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님프들에게서 양봉 기술을 배웠고 사람들에게 그 기술을 가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꿀을 뜻하는 멜리사(Melissa)라는 칭호를 붙였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꿀벌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꿀벌을 잃은 아리스타이오스의 심정을 베르길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저 깊이 심연 속에서 지내시는 어머니 키레네여, 제가 비록 신의 핏줄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가혹은 운명을 겪게 되었으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아들의 하소연에 어머니 키레네는 프로메테우스를 찾아 그에게서 조언을 구하라고 권했고, 아리스타이오스는 우여곡절 끝에 프로메테우스에게서 꿀벌 실종의 전말에 대해 전해 듣게 되었다. 알고 보니 꿀벌의 죽음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아리스타이오스의 어처구니없는 행위가 가져온 두 신혼부부의 비극적인 죽음과 연관이 있었다. 피로연에서 아리스타이오스는 님프 에우리디케를 쫓기 시작했고 숲으로 도망가던 에우리디케는 물뱀에게 물려 죽음을 맞았다. 게다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던 오르페우스는 신들의 도움으로 지하세계에서 에우리디케를 밖으로 데려올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말을 걸어도 얼굴을 쳐다봐도 안 된다는 금기를 위반함으로써 그녀를 데려오는 데 실패했다. 지상에서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에 화가 난 바쿠스 여제들은 그의 몸을 찢어 땅에 뿌려버렸다. 그리고 자신들의 친구인 에우리디케가 죽은 소식을 접한 골짜기의 님프 나파에아스들이 그 보복으로 아리스타이오스의 꿀벌을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키레네는 아들에게 님프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할 것을 권했고, 아리스타이오스는 님프 나파에아스들을 찾아가 제물을 바치고 용서의 기도를 올리는 한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넋을 기렸다. 그리고 마침내 님프들의 용서를 받아서, 제물로 바친 소의 사체에서 엄청난 꿀벌 무리가 생겨났다고 한다.1)

  3.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에 벌통 하나를 또 잃었다. 내게 벌통을 분양해준 선생님과 함께 벌통 한 곳을 열어보니 여왕벌은 사라졌고 남은 일벌의 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말벌과 꿀벌 진드기의 협공의 위력인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리고 벌통 하나는 비우기로 했다. 선생님이 월동 직전에 벌통 하나를 다시 가져다주기로 했는데, 고마움에 앞서 무거운 마음이 든다. 알게 모르게 내가 지은 잘못의 대가를 애꿎게 꿀벌이 대신 치르고 있는 것일까. 하늘과 땅과 물의 신에게 속제라도 올려야 하는 것인지, 내 마음도 모른 채 꿀벌들은 9월의 높고 푸른 하늘 위로 춤을 추다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꿀벌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은 어느새 차분해진다. 이런 귀한 선물을 안겨주는 꿀벌을 말벌들로부터 지기키 위해 오늘도 벌통 옆에 앉아 한나절을 보낸다. 이 마음이 꿀벌에게 전해지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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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서 조금 더 아리스타이오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그리스 신화의 데메테르와 만나게 된다. 데메테르 여신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부분은 그녀를 기리는 제의인 ‘테즈모포리아(thesmophoria)’이다. 데메테르는 테즈모포로스(thesmo-phoros)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테즈모이(thesmoi: 법들, 제정된 것들)를, 포로스(옮기는, 실행하는)하는 자를 뜻한다. 곧 데메테르는 농경, 정착생활, 결혼, 문명 등을 제정한 자로 숭배되었고, 특히 아테네인들은 데메테르 여신이 아티카 출신 트립톨레모스라는 소년을 시켜 세상 사람들에게 곡물을 전하게 함으로써, 아티카가 문명과 법과 농경의 고장이 되었다고 믿었다. 데메테르 여신 축제인 테즈모포리아는 여성만이 참여할 수 있는 여신 축제였다. 남성은 축제에 필요한 경비를 제공하는 역할만을 수행했다(최혜영, 〈고대 그리스 사회의 종교: 여신과 여성〉, 《여성과 역사》 8, 2008). 흥미로운 점은 이 축제에는 기혼 여성만이 참여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당시 그녀들은 ‘멜리사이(Melissai)’, 즉 꿀벌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사제들도 멜리사이로 불렸다는 점에서, 꿀벌의 존재는 고대 그리스의 종교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상언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생명윤리담론 분석: 한국 기독교와 불교를 중심으로>,<간디와 프랑켄슈타인,그리고 채식주의의 노스탤지어:19세기 영국 채식주의의 성격과 의미에 관한 고찰>,<신자유주의와 종교의 불안한 동거: IMF이후 개신교 자본주의화 현상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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