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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48호-기후절망 시대의 기쁨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10. 11. 17:59

기후절망 시대의 기쁨


news letter No.748 2022/10/11

 

 



 1. 어느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

     예전에 대학원에서 <종교와 생태학>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수업을 듣는 6명의 수강생 모두가 서로 다른 교단에 속한 개신교 목사였다. 어느 날 나는 인도 종교 전통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 이야기의 여러 버전 가운데 7세기의 자이나교 사상가인 하리바드라의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어떤 사람이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배고프고 목마른데 무서운 짐승들까지 몰려들었다. 허겁지겁 도망가는 그의 뒤를 미친 코끼리 한 마리가 끝까지 쫓아왔다. 그는 보리수나무를 보고 달려갔지만 나무가 너무 높아서 올라가지 못하고 주위의 오래된 우물에 무작정 뛰어들어서 우물 벽에 자라는 갈대를 붙들었다. 그런데 갈대에 매달려 아래를 보니 우물 바닥에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고 무서운 전갈도 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흰쥐와 검은쥐가 번갈아가며 그가 잡고 있는 갈대의 뿌리를 갉아먹고 있었다. 때마침 성난 코끼리가 보리수나무를 들이받는 바람에 벌집이 떨어져서 성난 벌들이 그를 쏘아댔다. 그 와중에 벌집에서 흘러내린 꿀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내려와 그의 입술에 닿았다. 그 맛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그는 자신이 처한 진퇴양난의 상황 자체를 망각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다.1)

     하리바드라의 해석은 명쾌하다. 길 떠난 사람은 영혼을 의미한다. 그 이야기의 목적은 청자로 하여금 잠깐의 쾌락에 도취되어 영혼을 위태로운 상태로 놓아둔 채 자신의 상태를 망각하는 파멸의 길에서 떠나 현재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직시하고 그러한 위태로운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오늘날 생태위기의 맥락에서 이 이야기는 현대문명이 주는 쾌락에 빠져 우리가 처한 위기의 현실을 망각하는 현대인을 가리키는 비유로 종종 사용된다.

     나는 이 이야기와 그에 대한 하리바드라의 해석을 소개하고, 생태위기 상황에서 이 비유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의 말이 끝나자, 한 수강생(개신교 목사)이 말했다. “이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만약 이 이야기가 설교 예화로 사용되었다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을 것 같습니다. ‘코끼리와 전갈과 벌들과...이렇게 힘들고 비참한 가운데 꿀을 내려주시다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이렇게요.”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단 한 번도 그 이야기를 그렇게 해석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강생들과 함께 그날의 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토의가 계속 이어졌고, 수업은 재미있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거의 10년 전 강의실에서 그 수강생이 했던 이야기는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2. 기후우울, 기후절망

     기후변화는 더 이상 과학자들의 회합이나 국제회의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라 공중파 뉴스에서 매일같이 다루어지는, 그리고 보통 사람들 모두가 느낄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 가뭄, 죽어가는 생명들, 산불 등 빠르게 악화되는 오늘의 상황과 기후 종말론이라 할 법한 암울한 미래상이 여러 경로를 통해 숨 가쁘게 제시되고 있다.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그러한 정보들은 보통 사람들이 너무 늦기 전에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위해 행동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그러한 정보를 확산함으로써 인간이 처한 현재의 위기 상황을 직시하고 돌이켜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대한 수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무력감을 느끼고 절망하기 십상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불안, 기후우울, 나아가 기후절망을 호소한다. 그리고 인간은 무력감과 절망감이 지속되는 상황을 견디기 어렵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현실, 즉 생태계가 파괴되고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기후난민이 생겨나고 있으며 곳곳에 사회적으로 생태적으로 갖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절망감이나 무력감에 빠져서 그것이 나를 휩쓸어 가도록 놓아두지 않고 어떻게 힘을 얻어서 살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이 생겨나게 된다.

     나는 10여 년 전 수강생이 했던 이야기를 통해 문제의 꿀물 한 방울을 ‘순간의 쾌락에 빠져 위기 상황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는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힘’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2)

     기후절망의 시대에 심리적으로 마비되거나 단기적 쾌락에 눈이 멀어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이 세계에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 기쁨과 경이감, 설렘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감정은 이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인간이 인간적인 것보다 더 큰 세계, 이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것을 오감으로 생생하게 경험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충분히 절망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연결, 연대를 통해서 긍정적인 감정의 경험이 가능해진다. 생명 감수성, 생태 감수성을 키우는 일과 동시에 함께 둘러 앉아 우리의 절망과 우리의 무력감과 두려움을, 그리고 우리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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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기쁨,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한신대학교출판부, 2013 참조.

2) 이와 관련해서, 노르웨이 철학자 아느 네스는 일찍이 “사실의 세계에서 기쁨의 자리”(Arne Naess, “The Place of Joy in a World of Fact,” The North American Review, Vol. 258, No. 2 (Summer, 1973))라는 글을 썼고, 나는 약 7년 전에 “절망의 시대에 어떻게 기쁨을 말할 수 있을까”
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53

 

 

 

 

 

 

 

 

 

 

 

 


유기쁨_
서울대학교 강사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아픔 넘어: 고통의 인문학》(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원시문화》,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문화로 본 종교학》 등이 있다. 최근 논문으로 〈‘병든지구’와 성스러운 생태학의 귀환〉, 〈인간적인 것 너머의 종교학, 그 가능성의 모색: 종교학의 ‘생태학적 전회’를 상상하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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