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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통념 파괴 TV 쇼 <아담의 팩트 폭격>에 대한 단상

 

news letter No.750 2022/10/25

 

                   

     최근 흥미롭게 보기 시작한 TV 프로그램이 있다. 국내의 한 OTT 서비스에 있는 <아담의 팩트 폭격>이라는 교양/오락 시리즈물이다. <아담의 팩트 폭격>은 미국의 한 케이블TV 채널에서 제작해 2015년 9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4년 동안 총 3개 시즌에 65개 에피소드가 방영되었고, 국내에서는 한 케이블TV 채널이 수입 방영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한 OTT 서비스에서 전체의 절반가량의 에피소드가 제공되고 있다. (티빙에서 시즌 2의 에피소드 16까지 제공되고 있는데, 아마도 이 시리즈물을 수입 방영했던 케이블TV 채널이 다른 채널에 인수 합병되면서 방영이 중단된 때까지의 분량일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시즌과 에피소드는 국내에서는 더는 접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담의 팩트 폭격>은 다큐멘터리 쇼와 코미디 드라마(가끔 애니메이션과 인형극도 활용)가 혼합된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에피소드마다 주인공 아담(Adam Conover 분: 코미디언, 작가, 성우, TV쇼 진행자)이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상식과 통념의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담은 모든 걸 망쳐>(Adam Ruins Everything)라는 본래의 영문 시리즈 제목과 주로 “아담은 OOO을/를 망쳐”(Adam Ruins OOO)로 되어 있는 에피소드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에서는 에피소드들의 제목을 주로 ‘OOO의 불편한 진실’로 번역했다),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은 몰랐던 사실을 끌어와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부숴대는 아담의 이야기를 불편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기존의 상식과 통념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화면 한쪽 구석에 정보 출처가 제시되며 (대개 엄밀한 학문적 연구 저작물들이다), 전문 연구자나 현장 전문가가 깜짝 손님으로 등장해 보완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편당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서너 개의 소재를 다루고, 내용도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에서 펼쳐지기에, 깊이가 없고 가벼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 시리즈물이 소재들을 묵직하며 이를 다루는 방식도 전혀 가볍지 않다. 또 단지 잘못된 상식과 통념을 부수려는 데 그치지 않고, 비록 작지만 나름의 쓸모 있는 대안을 제시하려 애쓰기도 하고, 금세 바뀌기 힘든 단단한 현실을 씁쓸한 웃음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즌 1의 첫 에피소드는 ‘다이아몬드’, ‘착한 소비’, ‘음식 기부’, ‘헌혈 행사’ 등 네 가지 소재를 다룬다. 이 시리즈물의 주요 등장인물인 에밀리와 브라이언이 다이아몬드 반지로 청혼을 주고받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처음 보는 아담이 끼어들어 다이아몬드의 허상을 폭로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드비어스라는 한 보석상이 어떻게 다이아몬드 유통을 장악해 희귀성을 창출하고, 영원성 이미지를 덧씌우는 광고전략으로 다이아몬드를 대중화했는지 하는 아담의 설명은 청혼에 들떠 있던 에밀리와 브라이언을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여자를 향한 남자의 반지 청혼’이라는 이성애적 젠더 역할극의 현실은 단단하다. 에밀리는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갖고 싶어.”라며 기대에 찬 얼굴로 브라이언을 종용하고, 브라이언은 ‘비록 국제 카르텔에 속아서 거금을 주고 산 쓸모없는 돌멩이지만, 받아줄래?’라며 떨떠름한 얼굴로 청혼을 계속한다. 에밀리가 행복한 얼굴로 “나한텐 쓸모없지 않아. 날 사랑한단 증거니까.”라고 하며 반지를 받자 (로맨틱한 배경음악), 아담이 또 끼어들어 “그것도 드비어스에 세뇌된 믿음이죠.”라며 팩트 폭격을 이어가려 하는데 (음악 중단), (음악 재개) 에밀리가 “상관없어요(Whatever)!”라는 말로 아담을 물리치고, 에밀리와 브라이언의 행복한 키스로 청혼이 마무리된다.

     잘못된 상식과 통념을 부수는 다큐멘터리 영화나 TV 시리즈물이 적지 않고 (대표적인 예로, 넷플릭스의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라는 시리즈물이 있다),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도 비슷한 성격의 국내외 영상콘텐츠는 매우 많다. 또 시청자에 따라 정보가 새로울 수도 있고, 친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담의 팩트 폭격>은 드라마라는 형식을 빌려 단순한 정보 제공 이상의 효과를 이뤄낸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즉, 대안을 제시하건, 현실을 수용하건, 이를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반응으로 처리함으로써 시청자에게 특정 입장을 강요하기보다는 시청자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현실을 성찰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어,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다루는 나머지 소재들은 모두 ‘기부’를 다룬다. 아담은 기부는 좋은 것이고 필요하지만, 때로는 기부가 기부받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에 근거하고, 그들의 현실을 무시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1+1 착한 소비 운동화’(고객이 하나를 사면, 회사가 다른 하나를 필요한 곳에 기부)는 아프리카 어떤 나라에서 신발이 없어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광고하지만, 실제 그 나라에는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게다가 그 나라에는 나름의 신발제조 산업이 있는데, 외국에서 기부 운동화가 쏟아져 들어오면 그 나라의 신발제조 산업에 타격을 주고 결국 나라 전체의 경제에까지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음식 기부’는 과도하고 불필요한 음식 구매의 부산물이며, 기부받는 사람의 음식 취향을 무시하고, 나아가 음식의 종류를 분류하고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상한 음식을 선별하는 추가적 인력이 필요하다. 또 ‘단체 헌혈’ 행사로 모아진 피는 상당량이 제때 쓰이지 못한 채 폐기된다. 그래서 아담은 현지인, 활동가, 연구자 등의 조언을 따라 기부는 물건이나 음식보다는 그냥 돈으로 하는 게 기부받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며, 헌혈은 평소에 자주 하도록 하고, 재난 같은 긴급상황 시에는 바로 그 당시보다는 시간이 좀 지나 수혈할 혈액이 부족한 상황이 생기면 그때 헌혈을 하라고 권고한다.

      간혹 미국의 특수한 상황에 국한된 소재들도 있지만 (미국의 건강보험과 병원, 대통령 선거제도, 느린 인터넷 속도 등), 한 번쯤 되짚어 볼 만한 흥미로운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크리스마스의 유래’, ‘미국식 장례문화’, ‘죽음의 의미’ 등과 같이 종교적 요소나 측면과 관련이 깊은 소재들도 흥미롭지만, 우리 일상에 가득한 흔한 상식과 통념, 즉 특정한 형태의 ‘믿음’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그 종류와 상관없이 모든 소재가 흥미롭다.

     그런데 시리즈를 시청하다 보면 계속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질 않는다. 상식과 통념이라는 믿음 현상에 관심 많은 나로서는 모든 소재가 흥미롭고, 작정하고 분석해보고 싶은 소재도 많다. 그런데 여러 명의 작가와 조사원이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집약해 집단 창작을 하고, 영상 기술자가 채워 넣은 다채로운 시각적 효과로 가득한 <아담의 팩트 폭격>이나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같은 TV 교양/오락 시리즈물과 비교해서 내가 더 잘, 아니 조금이라도 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얼까. 또 이런 종류의 시리즈물들이 주로 활용하는 학술적 저작물들은 대개 실험이나 통계 방법을 사용한 의학, 생리학, 뇌과학 같은 자연과학과 심리학, 사회학 같은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성과물들인데, 내가 그들과 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역사학 같은 인문학 분야의 연구성과가 중요하게 활용된다는 점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고나 할까. 상황적 강제와 자발적 선택이 뒤섞인 가운데 영상문화라는 낯선 영역을 공부하며 가르치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8년을 지나고 있다. 여전히 공부할 게 많고, 챙겨서 봐야 할 영화와 시리즈물의 목록도 끝이 없다. 종교학과 영상문화학을 접목하는 일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는 중에, 상식과 통념 파괴 TV 시리즈를 보면서 생각이 자꾸만 원점으로 회귀한다. 도대체 종교학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김윤성_
한신대 디지털영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공저로 <종교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역서로 <신화 이론화하기>, 논문으로 <종교학과 문화비평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전망>, <브루스 링컨의 방법 테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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