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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빛의 시선이 머문 길 위에 대한 단상

 

news letter No.789 2023/8/1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독일 철학이 실패했다고 하면서 그 비유로 당대의 독일 학계의 동료들이 쓴 글들이 그에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묵직한 삶을 요구하기에 너무 익힌 채소 내지 고기와 같다고 보고 자신의 글과 인성이 그 맛이 풍성하면서도 가볍고 섬세한 만족감을 통해 정갈하게 기운을 북돋는 맛있는 리소토(risotto)와 같기를 바랐다고 한다.

 

한편 이처럼 니체에게 부담스러웠던 헤겔(George Wilhelm Friedrich Hegel)이나 칸트(Immanuel Kant)의 논리를 당대의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lio Ficino)는 감각을 활용하여 풀어냈다. 그는 인간은 애초부터 논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회유를 통해 개념을 수용하는 감정적 동물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후 18세기 독일 바이에른(Bayern) 주의 가톨릭 교회지도자들의 야심찬 계획 하에 엄격한 설교 대신 오늘날 ‘14인의 원조자 성인 교회(Church of the fourteen Saints)’로 알려진 아름다운 건물의 건립으로 이어졌다.1)

 

이처럼 당시 교회지도자들은 감각의 도움이 없는 사상은 그 가치의 유무와 별개로 본래 의도한 바의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식했고, 신자들이 그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이웃을 용서하고 스스로 내면을 탐구하면서 더욱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종교 성지 공간 내부에 미술 및 건축이 지닌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SeMA)에서는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전시가 한창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 공동 기획한 호퍼의 첫 국내 개인전으로 기획자는 그 의도를 작가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의 작품이 여러모로 지친 우리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기를 기대한다로 전시 브로셔에 소개한다.

 

필자는 지난 718일 전시 관람을 하면서 호퍼의 시선이 머문 길 위에서그가 그려낸 치밀한 구조를 가진 공간에서 18세기 근대 계몽주의가 내건 이성 위에 쌓아 올린 이른바 근대 기획의 한 단면을 목격했다. 즉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일대, 케이프코드 등 호퍼의 65년간의 실제 여정을 따라가며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과 관련 아카이브 자료 270여 점에 조망된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마주했다.

 

호퍼는 그의 삶을 형성한 수많은 경험들을 함께 엮어 그의 서사를 전개하며 빛의 높낮이를 통해 관객들을 화폭 안으로 초대하여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어떤 것은 현세적이고 개인적이며 어떤 것은 우주적이며 제도적이다.

 

종교학자인 토마스 트위드(Thomas A. Tweed)는 종교 자체를 공간적 이미지로 정의한다. 그는 성지를 분화되는 것이며, 움직이는 것이고, 상호 연관된 것이며, 무엇인가에 의해 발생되는 동시에 무엇인가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보았다.2)

 

이러한 트위드의 관점에 의하면 미술관의 전시 공간에 머무는 시간은 화폭의 중심인물 내지다른 등장인물들과 자신을 친밀하게 만들고 동일시함으로써 우리 영혼의 균형을 잡고, 구체적 상황에서 각자의 삶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많은 인물 내지 환경 간의 상호관계를 깊이 응시함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반추하고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데 관심을 집중하는 일종의 종교적 경험과 유사하다.

 

한편 현대인들이 호퍼가 빛의 고도를 사용하여 화폭에 전개한 서사에 풍부한 지지를 보내는 이면에는 거대한 석재를 잘라 만든 대성당의 입구에 서서 멀리 있는 원형 창에서 스며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뿜어내는 위안과 희망을 그의 작품 앞에 서서 기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호퍼의 빛의 시선이 머문 길 위에 서서 누군가에게는 종교로 불리는 그 무엇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서 현대 제도 종교의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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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랭드 보통 · 인생학교 저, 이용재 역, 사유식탁, 오렌지 디, 2022, 11-12면.

2) David Chidester, Religion: Material Dynamics, Oakland, 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8, p. 39.

 

 

 

 

 

 

 

임복희_
前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상법영역에서의 입법의 흐름과 최근 동향: 기업지배구조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과 최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년도 상반기 심포지엄의 〈한국법원의 종교 성지공간에 대한 이해: 세종시 불교문화체험관 사건 등을 중심으로〉 발표논문이 있다. 법학자로서 종교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법과 종교’ 특히 한국 사회 종교 갈등을 둘러싼 제반 현상 및 관련 정책과 입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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