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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88호-기후변화의 함의를 생각한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7. 25. 19:09

기후변화의 함의를 생각한다

 

news letter No.788 2023/7/25

 

 

 

 

요즘 뉴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이다. 과거의 기록을 깨는 고온과 가뭄, 그리고 재앙적인 산불이 빈번히 일어나는가 하면 일 년 치에 해당하는 분량을 하루 이틀에 퍼부어대는 폭우도 마치 흔한 일처럼 되고 있다. 태평양, 인도양, 지중해, 대서양을 빙 돌아가며 북반부의 바다가 빨갛게 익어감에 따라, 갈 곳을 잃은 물고기는 배를 드러내고 물 위로 떠오르거나, 육지를 피난처로 여겨 상륙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북극에 가까운 지역의 기온이 현재 40도에 육박하고 있다니, 시베리아 등지의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는 건 불문가지다. 그 밑에 저장되었던 대규모의 메탄가스가 분출하여, 온난화의 악순환을 가속화하는 것도 불언가지, 그리고 수만 년 동안 그 속에 잠들어 있던 각종의 바이러스가 풀려나 새로운 숙주를 기다리는 것도 불언가상(不言可想)이다. 게다가 빙하와 동토층이 녹으면 그로 인해 생기는 막대한 수량으로 해수면이 급상승하리라는 것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어떤 예측치에 의하면 지금처럼 진행될 경우, 해수면이 지금보다 50미터에서 100미터가량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수치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해안가의 대도시는 대부분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가올 일은 새로운 거주지역을 찾아 이루어질 대규모 인구 이동이고, 예측 불가능한 날씨 때문에 식량 생산에 불어닥칠 극심한 혼란이다. 식량의 생산과 분배에 조금이라도 불확실성이 감지되고,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잠재되었던 갈등이 폭발할 것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 먹을거리를 놓고 벌어지는 집단 간 혹은 집단 내부의 폭력이 극한의 참혹한 양상을 띠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날씨의 급변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일련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유례없다. 선례가 없다.”는 말로 놀라움을 표현한다. 하지만 유례나 선례라는 것도 그 성격과 기준이 어떠한가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예컨대 기상이변이라는 말과 기후변화라는 말은 비슷한 것 같아도 차이가 있다. ‘기상이변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기후변화는 틀이 바뀌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상이변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으나, 이제는 정상의 날씨라는 기준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관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분위기와 연관해서 등장한 단어가 바로 인류세.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자연 현상이라고 보았던 지구의 기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과학자 집단에서 이견이 없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체적으로 인정을 받는 추세로 바뀌었다. 다만 기후변화는 인간 모두의 탓이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특정 지역, 특정 집단의 가중 책임을 회피하는 일종의 물타기라는 비난은 여전히 유력하다. 다만 기후변화에 내포된 긴급성 때문에 내 탓, 네 탓의 논의가 부각되지 않을 뿐이다. 지금보다 1.5도 혹은 2도의 기온 상승이 일어나면 지구에 거주하는 수많은 생명체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며, 그런 파국에 대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긴박한 메시지로 인해 현시대의 인간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절대적 과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생소한 현상을 보는 태도라도 이전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경우와 틀 자체를 바꾸려고 할 경우가 전혀 다르다. 사람들이 웬만해서는 이전의 틀을 갈아치우려고 하지 않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관성을 장착한 습관의 막강한 힘이다. 특히 기득권과 연루되었을 경우에는 마이동풍, 오불관언이다. 극한의 날씨로 인해 농수산물의 수확 패턴과 거주지역의 급격한 변동이 야기되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속출해도 내 일상의 습관을 바꾸는 일은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공중을 맴돌고 있는 매를 보고서, 머리만 파묻고 있는 닭의 모습과 겹쳐진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학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상이변의 관점은 패러다임의 교체기에 가능한 한, 기존 패러다임에 의존해서 이변을 설명하려는 태도와 비슷하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함축하고 있는 혼란상은 근본적이다. 오랫동안 연구자에게 반석(盤石)과 같은 상식을 제공해 주었던 관점이 기후변화의 체제로 더욱더 흔들리게 되었지만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고 볼 수 없다. 세상을 보는 관점의 근간을 이루었던 인간 주체와 자연의 객체, 문화와 자연 등의 이분법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 생명과 물질 등의 관계 설정, 그리고 금과옥조로 취급되어온 성장과 인구증가에 관한 신조(信條) 등을 처음부터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학문 영역에 속해 있고, 지금 기후변화에 어떤 관점을 지녔는지에 상관없이 이렇듯 연구자는 현재 학문의 기본설정값을 다시 생각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즈음에 물음을 묻는 일을 본업으로 삼는 인문학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있을 것인가? 이럴진대 한종연에서 기후변화의 함의를 검토하는 일은 시의적절할 뿐만 아니라, 후속적인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작업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기후변화의 문제는 감자의 뿌리 덩굴 같아서, 다른 중요한 문제의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삶과 죽음을 새롭게 보는 문제, 지구 거주 생명체와 연대감을 느끼고 표현하는 문제, 있음과 없음, 현실과 환()의 연관성 문제, 그리고 포스트-성장 시대에 지금과는 다른 삶의 양식을 상상하고 구현하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1)

 

앞으로 기후변화가 함축하고 있는 이와 같은 연구 주제에 대하여 한종연 회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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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라지만, 혹시 이런 문제가 종교연구자의 본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기독교, 불교 등의 세계종교라는 견고화된 영역도 있고, 아직 여물지 않았지만, 신종교라는 영역도 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런 것을 연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이겠다. 그 이점(利點)은 이해할 만하다. 연구자끼리 영역 다툼의 시비도 없을 것이고, 사회 권력의 인정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종교연구자의 기득권을 즐기겠다는 자세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자신이 안락하다고 해서 다른 이들도 편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독단의 횡포는 쉽게 시작된다.

 

2) 연구소의 집행부와 상의한 후, 9월 중에 기후변화 관련 워크숍 개최를 계획 중이다. 구체적인 날짜와 시각은 나중에 공고할 예정이다. 이번 워크숍은 인류학, 문학, 여성학, 종교학 등의 발표자와 함께 초학제적 영역의 문제 제기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석만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한국근대종교란 무엇인가?》의 책과 <두 가지 몸의 늙음: 한국 근대 노년 관점의 변화>, <식민지 조선에서 여자가 운다>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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