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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새로운 자명함이란 무엇일까?

 

 news letter No.792 2023/8/22

 

 

최근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듬성듬성 공부하여 글을 써야 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 분야의 전공자에게는 상식적인 것조차 나에겐 완전히 낯선 내용이 많으리라는 불안감 때문에 관련 연구서나 논문들을 계속 검색하고 구하여 쌓아놓고도 결국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는 못하는 미련함과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그로부터의 구원은 항상 그렇듯이 제출 마감일로부터 왔는데, 그 억지스러운 구원 이후의 잔해물(?)을 정리하면서 들춰봤던 근대일본의 대학과 종교라는 책에 대한 생각을 작정하고 두서없이늘어놓으려 한다.1)

 

3인의 편자 중 대표인 에지마 나오토시(江島尙俊)의 서문을 읽고 흥미가 생겨서 찾아보니 그는 학부에서 기계항공공학을 공부한 뒤에 다이쇼대학(大正大學)에서 종교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한 젊은 연구자였고, 현재(2023) 덴엔초후가쿠엔대학(田園調布学園大学) 인간복지학부의 준교수(准敎授), 주요 연구 주제는 고등교육기관과 종교에 관한 연구대학제도사연구라고 되어 있었다.2) 에지마는 이 책의 제1근대일본의 고등교육에서 교육과 교화라는 논문을 썼는데, ‘고등교육제도에서 종교가 교화라는 면을 탈각하고, 연구의 대상이 되어갔던 과정을 밝히는것을 자신의 문제로 설정하고 있다. , 1990년대 중반-2010년대 중반의 약 30년 동안 일본의 종교학계에서 종교라는 개념의 근대적 생성에 초점을 맞추어 종교개념 비판이 이루어졌는데, 에지마는 ()개념으로서의 종교라는 개념이 서서히 형성되어갔던 과정에서 그 종교개념을 발신하는 데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고등교육기관(주로 대학과 전문대학을 말함)에서 어떻게 종교와 관련된 학문을 수용해갔으며, 어떠한 변천을 겪었는지그 실태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메이지 시기 일본을 대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의 다른 글인 왜 대학에서 종교를 배울 수 있는가?」3)에서는 현대 일본인들은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에서 종교를 배울 수 있고 연구할 수 있음을 자명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근대적인 대학제도가 없었던 메이지 이전에는 불가능했다고 하면서, 이를 새로운 자명함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가능하게 했던 제도적 조건을 설명하였다. 이 두 글은 일부 중첩되는 부분도 있지만 후자는 교육제도사나 정책사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전자는 일본의 종교학사를 기술하는 입장에서 극히 근대적인 조직공간인 대학에서 종교연구가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대학에서 행해졌던 종교인 교육은 또 어떠한 특징과 의미가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고 있다. 이하, 그 내용을 균형감 있게 소개하기보다는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던 사항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다.

 

일본의 고등교육에 관한 근대적 법규는 1870(메이지 3) 2월에 나타난 대학규칙이 효시였는데, 여기에는 법과 · 이과(理科) · 의과 · 문과 외에, 신교학(神敎學)과 수신학(修身學)으로 규정된 교과(敎科)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양학파(洋學派)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이들은 주로 서양, 그중에서도 독일의 대학을 의식하면서 실용적 학문을 중심으로 조직의 편제를 구상하였는데, 이 흐름을 이어 1872년에 공포된 학제 및 이를 대폭 개정했던 1879년의 교육령에서 대학은 법학 · 이학 · 의학 · 문학 등의 전문 학과를 가르치는 곳으로 규정되었다고 한다. 에지마는 과거의 교과(敎科)가 메이지 시기를 거치면서 대학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 데에는 당시 정부 기구가 새로이 정비 되었던 것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면서 18714월에 문부성을, 다음 해 3월에 교부성을 설치함으로써 국민교육과 국민교화를 관장하는 행정관청이 제도상 분리된 형태로 전개되었던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다만 대학에서 교화의 소멸은 관립(官立)대학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종교계 사립학교는 이와는 무관하게 종교인의 양성과 교육을 목적으로 운영되었으며, 특히 기독교계의 학교에서는 포교나 전도라는 측면도 교육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886년에 공포된 제국대학령은 제1제국대학은 국가의 수요에 응하는 학술기예를 교수하고, 이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조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학술이 국가에 종속되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고등교육의 모범을 제시한 셈이었으므로, 종교계 사립학교들은 이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지마는 그 반응으로 1887년을 전후하여 그리스도교와 불교계의 학교들이 고등교육기관의 설치를 구상하게 되었던 점을 지적하였는데, 예컨대 니지마 조(新島襄, 1843-1890)가 펼쳐나갔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설치운동 및 이로부터 촉발된 불교계의 대학설치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그 구체적인 사례다.

        1898년 메이지 정부의 조약개정 실시 이후 일본에서의 기독교 활동은 공식 인가되었으나, 이듬해 공포된 사립학교령[사립학교를 문부성 공인의 학교로 인가하고 특전을 부여함]’문부성훈령 제12[공인된 학교 내에서는 종교교육 및 종교의식을 금지함]’에 의하여 기독교계 사립학교는 근대교육제도 안으로 편입될 것인지, 아니면 종교교육을 계속할 것인지의 문제를 학교의 존속을 걸고 고민하게 되었던 반면, 불교 종문계(宗門系) 학교들의 경우는 승려 육성을 중심 목표로 삼으면서, 별다른 동요 없이 국가가 제시한 교육제도에 준하여 학교조직과 교육 내용을 정해나갔다고 한다. 에지마는 징병유예라는 특전을 얻기 위해서는 문부성에 의한 중등 이상의 학교라는 인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종교계 사립학교들이 학교 운영을 위하여 문부성에 인정 신청을 함으로써 훈령 제12호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여러 통계자료를 통하여 입증하고 있다. 또한 19034월부터 시행된 전문학교령은 제1조에 고등의 학술기예를 교수하는 학교를 전문학교로 규정하였고, 많은 종교계 학교들이 전문학교로서 인가를 받았으니, ‘사립학교령문부성훈령 제12전문학교령등을 통하여 종교계 전문학교들은 결국 근대교육제도의 틀 안으로 편입되어갔으며, 교육 내용도 근대적인 지식과 학문적인 종교 이해가 중심이 되었는데, 흥미롭게도 에지마는 이러한 배경에는 교육 행정과 무관한 징병유예라는 사항이 핵심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글을 읽고 나서 문득 한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작업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어진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여 찾다가, 한국종교학사를 정리하면서 그 과제와 전망을 논하는 글들을 훑어보게 되었는데, 논문 형식의 좋은 글들도 여러 편 있었지만 종교문화비평창간호에 실린 특별좌담회의 내용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4) 한국의 종교학사를 몸소 살아오신 분들의 회고를 접할 수 있어서 참 좋았고, 종교학 연구자들의 주된 문제의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어왔는지, 또 어떤 학회와 학술지들이 각각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 알게 되었다. 특히 경성제대 종교학과에서 공부하셨던 김종흡이라는 분이 해방 후에 국립서울대학교에 종교학과를 만들어 1946-1951년까지 교수로 계셨다는 사실도, 또 식민지 시대 경성제대 종교학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이는 한국학계의 경성제대 연구사에서 보면 상당히 이른 시기의 일이라고 생각된다도 이제야 내 시야에 들어왔다. 에지마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종교학 연구자의 논문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한국 근대의 기독교나 불교 등 개별종교의 교육()에 대한 연구는 꽤 진행된 것으로 보이며, 한국 근대종교와 학교교육」5)이라는 논문은 초기 원불교에 국한하여 진행된 연구였다.

 

기존의 연구 상황을 잘 모르면서 성급하게 말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특정 학교, 학과의 역사나 특정 종교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종교교육을 통한 포교, 종교지도자의 양성, 종교 관련 법규, 국가권력 혹은 특정 정부의 의도 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종교학도의 시선으로 이와 같은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어갔는지를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한국 근현대의 종교교육을 담당했던 교육기관에 관한 자료가 일본만큼 많지 않겠고, 식민지 시기 및 한국전쟁 등의 사정으로 연구가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에지마의 연구로부터 지금은 자명한 것이라고 해도 예로부터 항상 자명한 것이었을 리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또한 지나치게 최신의 이슈에만 발맞추어 따라가기보다는물론 최신의 이슈에도 통찰력 있는 발언을 할 필요는 있다새로운 자명함을 발견하고 이를 꾸준히 헤쳐나가는 진득하면서도 활발한 자세를 한국의 젊고 유능한 종교학도들에게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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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대학과 종교시리즈 3권 중의 제1(法藏館, 2014)이고, 2권은 전시일본의 대학과 종교(2017), 3권은 현대일본의 대학과 종교(2020)인데, 에지마 나오토시(江島尙俊) · 미우라 슈우(三浦周) · 마쓰노 도모아키(松野智章)가 공동 편집하였으며, 다이쇼대학 종합불교연구소 총서로 간행되었다.

2) https://www.dcu.ac.jp/school/welfare/psychology/teacher_detail.html?CN=264522 참조

3) 江島尙俊, なぜ大学宗教べるのか:明治期教育政策宗教系専門学校誕生過程から, 宗教研究883, 2014.

4) 정진홍 · 이민용 · 배국원 · 장석만 · 박규태 · 구형찬 대담, 창간호 특별좌담회: 한국 종교학의 회고와 전망, 종교문화비평Vol. 1, 2002.

5) 김귀성, 한국 근대종교와 학교교육: 원불교의 초기교단을 중심으로, 한국종교Vol. 32, 2008.

 

 

 

 

 

 

이연승_
서울대학교
논문으로〈서구의 유교종교론〉, 〈이병헌의 유교론: 비미신적인 신묘한 종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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