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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전쟁 시기에 나치즘 종교연구가의 텍스트를 읽으며

 

news letter No.802 2023/10/31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자 지구를 떠나서 남쪽으로, 이집트 국경으로 피난을 가고 있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폭격을 피해 집을 떠나도 안전한 곳이 별로 없고, 평생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유대인들이 오랜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통해서 더 잘 알 것이다. 이집트는 난민을 거부하며 국경을 피난민들에게 열고 있지 않다.

 

이런 시기에 우연히 1920년대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서 민족주의적 종교연구가로 활약했던 야콥 빌헬름 하우어(Jakob Wilhelm Hauer 1881-1962)의 글을 읽고 있어 기분이 묘하다. 물론 반유대주의적 시각을 지지하며 그런 글을 읽지는 않는다. 나치즘의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그 땅에 오랫동안 살던 원주민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모순을 오늘의 전쟁에서 목도한다. 박해의 시기 중부유럽에서 밀려나서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활을 곤경으로 몰아넣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용인하기 힘들다. 지금의 상황에 원인을 제공한 나치즘 종교론의 대표주자 하우어의 텍스트를 들여다보고 있다. 하우어는 원래 익히 알고 있던 인물이었지만, 몇 년 전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자료들을 보다가 그와 제자들의 글이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더 관심을 가지고 텍스트들을 읽게 되었다.

 

하우어의 종교론에서 공간과 대지는인종(Rasse)’과 맞물린 개념이다. 그 둘 다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종의 영혼(Rassenseele)’공간의 영혼(Raumseele)’은 상응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본래 풍요롭고 변화무쌍한 자연환경과 대지에서 출생한 인도게르만은 그에 상응하는 풍요로운 심성을 지니고, 가도 가도 끝없은 모래사막에서 유래한 근동-셈족은 거칠고 폭력적인 심성을 가진다. 이러한 심성은 종교에도 그대로 반영된다고 본다. 근동-셈족은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인간을 단일하게 규율하고 지배하는 신정 정치와 메시아 사상을 만들었다.‘오리엔트(Orient)’라고 지칭되는 이들의 공간에서 이슬람과 유대교가 탄생했다. 그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에 계시를 받고 구원받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반면 인도게르만은 비옥한 땅과 다채로운 기후 속에서 농밀하고 다양한 종교 세계를 구축했다고 주장한다. <독일 신관. 독일 신앙 개요(Deutsche Gottschau. Grundzüge eines Deutschen Glaubens)>(1935)에는 인류사를 투쟁(Kampf)의 역사로 보는 하우어의 시각이 담겨 있다. 그중 가장 격렬한 투쟁은 근동-셈족과 인도게르만신앙 세계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20세기가 되어서야 젊은 독일에서 인도게르만이 유대-그리스도교와 같은 근동-셈족적 요소에서 해방되는 중이라고 흥분한다. ‘인도게르만의 종교인 인도의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신, 그리고 이란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는 경직되고 무자비한 아브라함 종교의 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본연의 인도게르만적 신앙심을 되찾고자 하는 생각은 그 스스로 건립한 새로운 종교운동인 독일 신앙운동(Deutsche Glaubensbewegung)으로 이어졌다. 서인도게르만의 와 정신을 계승하는 민족을 독일인이라고 하면서, 에크하르트와 같은 신비주의자들, 괴테나 헤겔은 독일 민족, 그리고 인도게르만을 넘어서 서구 전체의 사상과 믿음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인도게르만을 수천 년간 언어와 종교가 밀접하게 연결된 세계로 본다. 산스크리트어는 인도게르만성스러운언어다. 공간과 언어와 마찬가지로종에 적합한 신앙(arteigener Glaube)’이 따로 있다는 하우어의 주장은 나치즘 사상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인도게르만에게 이슬람과 유대교, 더 나아가서 유대-그리스도교적 유산은 종에 부적합(artfremd)’하다는 것이다. 인종의 영혼과 공간의 영혼은 상응하기 때문에 어떤 인종이 타 인종이 속한 공간에 오래 거주하거나 정복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치즘 종교연구가의 생각에 유일한 예외는 유대인들로, 그들은 인도게르만의 영역에 침투해서 살아가고 있다. 유대인을 독일 땅에서 몰아내려는 독일 제3제국의 정치는 인도게르만의 공간에서 유대인의 영혼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연구가의 주장에 날개를 달아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하마스는 모든 무슬림들의 협력을 촉구하며 시온주의자들과 싸울 것을 촉구했다. 밖에서 보면 그 둘은 철천지원수다. 그러나 하우어처럼 요즘 내가 읽고 있는 나치즘 종교연구가들의 글에서 무슬림이나 유대인은 근동-셈족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인다. 물론 유대인에 대한 적개감은 더 심하게 텍스트에 표출된다. 무리한 적용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근동-셈족을 한 묶음으로 보는 시각은 현재 서구 주요 국가들이 이-팔 전쟁에 제대로 할 말을 안 하고 거리두기 하는 태도와 겹쳐 보인다. 현대 이스라엘 건국에서 비롯된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에 원인을 제공한 서구가 오늘날 이스라엘이 가자 시티에 전력을 차단하는 등의 살상행위를 묵인하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울러 하마스의 공격을 기회 삼아 가자 지구를 점령하려는 야욕을 드러내는 이스라엘은 과거 조상들이 겪었던 반인륜적 범죄의 역사에서 무슨 교훈을 얻었던 것일까?

 

 

 

 

 

 

 

 

최정화_
서울대학교
종교학의 역사와 방법론 위주로 공부하였고, 최근 논문으로 <기울어진 세속주의: 독일의 통일국가 만들기 과정에서 세속주의가 작동되는 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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