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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804호-사회적 참사와 한국의 종교학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11. 14. 18:13

사회적 참사와 한국의 종교학계

 

news letter No.804 2023/11/14

 

 

 

필자의 지난 뉴스레터 -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잔상: 순례지가 된 어느 영국 축구 경기장2023/6/6, 781의 내용이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염두에 둔 것이었듯이, 어느덧 반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이들 참사는 여전히 필자의 머리를 맴돌고 있다. 그 이유로는 같은 시기를 사는 대다수 한국인에게 그렇듯이, 예기치 못한 연이은 대규모 참사가 남긴 깊은 충격과 아픔을 비롯하여, 처벌 없는 진상규명과 함께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애도 공간 구축의 어려움, 피해자 가족과 시민들의 연대를 저지하는 부당한 공권력 행사 등에 대한 분노가 차곡차곡 쌓인 것도 한몫한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에게 한 가지 더 좌절감을 선사하는 것은 이들 사회적 참사에 대한 한국 종교학계의 침묵이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물론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 참사의 원인이나 이와 관련된 책임자들에 대한 연구자들의 공개적 비판이나 집단적 성토가 아니라, 참사 이후 관찰되는 여러 현상에 대한 종교학적 접근이나 분석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한국 종교학계의 낮은 관심은 또 다른 중대 재난이었던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하여서는 거의 모든 관련 학술단체들이 (비대면) 학술대회를 열고 위드/포스트 코로나 시대 종교의 역할(변화)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를 이어나갔던 것과는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물론 사회적 참사를 포함한 여러 유형의 재난과 재해를 다룬 종교학 학술대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10월 종교학회와 종교사회학회가 [글로벌 시대의 재난과 죽음 그리고 종교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공동 주체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주최 측은 세월호를 비롯해 일본의 후쿠시마와 동남아시아의 쓰나미와 같은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21세기의 글로벌 재해재난 상황에서 종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러한 재난에 대한 사전 및 사후 대책과 관련하여 종교의 의미와 역할에 대하여 새로운 인문·사회과학적 성찰의 장을 펼치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학술대회에서 정작 한국 사회에서 근래 발생한 재난이나 그 이후 현상은 조사 대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앞에서 언급한 국제학술대회를 비롯하여 이후 코로나 사태를 주제로 삼았던 일련의 국내 종교(사회)학 학술대회에서 지속하여 제기되었던 종교 역할론이다. 물론 재난과 같은 사회적 위기에서 종교의 순기능을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팬데믹과 같은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에서 의례, 공간(인식), 공동체, 성직자의 권위 등 - 여러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종교의 변화를 기술하고 분석하는 것을 넘어, 종교학이 언제부터 종교(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여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종교의 새로운 역할을 제언하는 임무를 자처하게 되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재난에 대한 종교학 담론 역시 제도종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마저 한국 사회에 커다란 상처와 균열을 가져온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는 - 다른 인문사회학과 다르게 종교학계 연구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나마 종교사회학적 시각에서 사회적 참사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을 다룬 장형철의 세월호 참사 사건에 대한 기독교 담론 분석 - 성명서들과 선언문들 그리고 공식입장 표명들을 중심으로(2016)와 박진우와 오세일의 공공 영역에서 종교의 역할과 갈등: “세월호 특별법제정에 대한 그리스도교 찬반 논쟁(2016), 그리고 교육학자 고진호의 사회적 추모 과정(애도-기억-성찰)에서 (종교적) 의례의 중요성을 다룬국가적 재난에 따른 사회적 추모와 종교교육학적 성찰(2023)을 언급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이후 진행되었던 그리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여러 현상이 다분히 종교적으로 보이는 것은 단지 필자의 풍부한 상상력 때문은 아닐 것이다. 참사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시작된 시민들의 참사 현장 방문과 사자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애도/추모 행위/의식 등은 타인의 죽음과 고통의 현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다크 투어리즘의 특징과 함께 - 비종교적 맥락에서 전개되는 - 새로운 (세속적) 순례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기억 공간과 순례는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4.16 팽목기억관은 전남 진도 팽목항에 있던 팽목분향소가 지난해 9월 초 희생 학생들의 사진과 유품을 정리하면서 이름이 바뀐 것으로, 기억관에는 단원고 10개 반 단체 사진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조형물과 기록 등이 남아있다. 순례와 관련하여서는, 팽목항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기억예술마당과 함께 팽목 기억 도보순례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20147월부터 현재까지 매달 기억과 약속의 길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는데, 이는 희생자 가족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이 함께 단원고 학생들이 걸었던 등하굣길, 학원 오가던 길, 산책길 등을 같이 걸으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도 4·16재단은 목포신항, 세월호 기억의 숲, 진도 팽목항을 잇는 - ‘4.16 기억순례길을 중요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해당 재단은 홈페이지에 4.16 세월호 참사 온라인 기억관도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생존자와 남겨진 이들에게 희생자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복수의 장소를 순례하고 이들에 대한 기억을 지속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공간(기억관/추모관)이 중요한 것은, 사회적 참사의 경우 장소 혹은 흔적이 사라지면 이에 대한 대중의 기억도 사라지고, 기억이 사라지면 희생자의 존재마저 부정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 공간의 확보/선점은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를 위한 지난한 투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참사 이후 애도/순례 공간/장소의 역할과 의미를 다루는 장소의 종교학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주제로 보인다. 이는 무엇보다 종교학 연구가 우리가 겪는 현실을 설명하고, 더 나아가 사회비판적 시각과 시의성을 놓치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순례와 ‘다크 투어리즘’의 교차지점에 대해서: 천주교 해미순교성지를 사례로〉, 〈한국의 현 종교지원정책과 문화자본주의〉, 〈한국 불교계의 ‘마음치유’ 사업과 종교영역의 재편성〉, 〈한국 신종교의 조직구조〉, 〈현대사회 성물(聖物)의 유통방식에 대하여〉, 공저로는 《한국사회와 종교학》,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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