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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이제 ‘국가유산’으로 불러주세요
news letter No.831 2024/5/21
“5월 17일부터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래 지난 60여년간 이어져 온 ‘문화재’ 명칭과 분류 체계도 5월 중순부터 ‘국가유산’ 체제로 탈바꿈한다. 국가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나누고 각 유산의 특성에 맞는 보존·전승 활동도 지원한다.”(「‘문화재’의 새이름 ‘국가유산’」, 『경기일보』 2024.05.05.) 필자는 몇 주 전 우연히 앞의 기사를 접하고, 뜨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드는 생각은 “왜 갑자기.. 이런 명칭을?” 그러나 관련 기사들을 찾아 읽고 보니 이 계획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것으로, 단순히 명칭 변경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 명칭 및 분류체계 - 유형문화재(국보·보물), 무형문화재, 기념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 민속문화재 - 를 계속 유지해왔다. 그러나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2005년부터 이에 대한 개선을 위해 연구와 논의를 진행해왔다고 한다. 이는 「문화재보호법」이 (1950년 제정된)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을 일부 원용해 만들어진 이후, 오늘날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문화재’ 용어가 일본 제도에 근거할뿐더러 해당 용어는 유물의 재화적(물질적) 성격이 강해 무형유산이나 자연유산까지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재’라는 용어를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이며, 자연물(천연기념물, 명승)과 사람(무형문화재)을 문화재로 지칭하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되고, 별도의 협약으로 무형유산을 정의하고 있어 국제적으로 ‘문화재’보다 ‘유산’ 개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과도 괴리가 있어, ‘문화재’를 역사와 정신까지 포함한 ‘유산’ 개념으로 확장해 계승과 전승 의미를 확대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에 문화재청이 2005년, 2008년, 2017년 명칭 변경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문화재위원회 단계에서 좌초되었다 한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확대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22년 초 문화재청은 태스크 포스를 구성, 개선안 마련에 박차를 가해 문화재위원회의 결의를 끌어냈다고 한다. (「국가유산으로 60년 만에 정책방향 대전환」, 국가유산청, 보도/설명 2022.04.11.)
이렇게 정부는 2022년 초부터 개선안을 마련한 뒤 각계의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개선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를 추진해 왔다고 한다. 문화재청에 의하면 2022년 3월 실시한 1,000명 대상의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문화재’ 명칭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국민 76.5%, 전문가 91.8%이었고, ‘유산’ 개념으로 변경하는 데에는 국민 90.3%, 전문가 95.8%가 찬성하였으며, 통칭 용어로서 ‘국가유산’이 적절한가에 대한 질문에도 국민 87.2%, 전문가 52.5%가 동의하였다고 한다. 2022년 4월에는 문화재 관련 조사·심의 기구인 문화재위원회와 무형문화재위원회가 문화재 명칭 및 분류체계 전면 개선안을 확정하고, “미래지향적 국가유산 보호와 가치 증진” 촉구 결의문을 채택해 문화재청에 전달한다.(「‘문화재’ 용어, ‘국가유산’으로 바꾼다…분류체계도 대폭 개선」, 『KBS뉴스』 2022.04.11.) 이어서 2022년 8월에는 “일본식 문화재체제 60년, 국가유산체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주제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국가유산체제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린다. 이 토론회에서 배현진 의원은 개회사에서 “우리 문화재보호법상 명칭지정이 일본식 문화재 분류체계를 그대로 따라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한 국제기준과의 간극은 지속적으로 커져 왔습니다. 실제 우리 정부는 이러한 문화재체제로 인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와 보호·관리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정문화재로 선정되지 못한 수많은 비지정문화재들이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부작용 또한 적지 않습니다.”라고 발언하였다.(‘국가유산체제’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료집 2022.08.11.)
드디어 2023년 5월 문화재청은 기존 문화재 관련 법령을 재편한 「국가유산기본법」을 제정했고, 2023년 8월에는 관련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었으며, 본격 시행되는 2024년 5월에 맞춰 시행령과 시행규칙, 행정규칙 등 하위법령이 일괄 정비된다고 한다. 이로써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등록유산과 목록유산의 대상 또한 문화유산에서 무형유산과 자연유산으로 확대된다고 한다.(앞의 국가유산청 보도문) 앞의 논의에서 보았듯이 「국가유산기본법」의 제정은 무엇보다 국내 문화재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확대)와 보호·관리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금의 문화재 정책변화는 1972년 제정된 유네스코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의 정의 및 분류체계가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문제는 분류체계의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유산’이라는 새로운 포괄적 명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차지하더라도, 이 명칭이 주는 전체주의적 인상을 떨쳐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유산기본법」에서는 “‘국가유산’이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앞의 정의 내용과 ‘국가유산’이란 용어 사이의 부조화는 뚜렷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문화재청 측은 ‘국가유산’의 ‘국가’는 ‘중앙정부’가 아닌 ‘우리 겨레가 만든 유산을 총칭하는 개념’이라고 변호한다.(「‘문화재’ 명칭 ‘국가유산’으로 바뀐다...불교계도 찬성」, BBS뉴스 2022.04.11.) 필자가 특별히 흥미롭게 관찰한 것은 ‘국가유산’이라는 명칭에 대한 불교계의 반응이다. 문화재청 또한 국내 문화재 70%를 보유한 불교계의 반응에 유의하여, 이미 2022년 4월 정책총괄과장이 조계종을 방문하고 총무원 측에서 ‘국가유산’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발표한 바 있다.(앞의 BBS뉴스)
그러나 ‘국가유산’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교계의 의견은 갈리는 듯하다. 예를 들어 『현대불교』는 2022년 4월 기사에서 불교학계와 문화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가유산’이라는 통칭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한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국가유산’으로 통칭하는 것은 한계점이 명확하다. 여기서 ‘국가’는 ‘정부’로 이해되며 ‘국가 및 정부로 귀속된 유산’으로 이해된다”라면서 “국가 소유 문화재는 실제 얼마 되지 않는다. 사찰과 개인이 소장한 문화유산을 어떻게 ‘국가유산’이라고 볼 수 있나”라고 반문하고, “‘국가유산’으로 문화재의 통칭명이 변경되면 수많은 불교문화유산들은 일순 ‘국가유산’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고 비판했다. 한편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국가유산’이라는 명칭이 “전체주의적 행정 발상”이라며 “문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생활양식과 상징체계를 의미한다.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이라는 범주에 현재 문화유산체계가 포함될 수 있다”라며, “국가유산(National heritage)은 예전 제국주의·전체주의 국가가 할 수 있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도 “‘국가유산’이라는 통칭명을 듣고 1980년대 군사 정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며 “국가의 사전적 정의는 ‘통치조직을 가지고 일정한 영토에 정주(定住)하는 다수인으로 이루어진 단체’다. 우리의 전통문화유산들에 ‘국가’라는 주체가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밝혔다.(「‘국가유산 명칭 변경, 전체주의적 발상’」, 『현대불교』 2022.04.15.)
유사한 맥락에서 『법보신문』의 2022년 4월 12일 기사는 ‘문화재’의 새 명칭을 두고 언론 브리핑 직전까지 ‘국가유산’과 ‘문화유산’이 경합을 벌였음을 언급하고, ‘국가’라는 명칭은 사찰·개인의 유산까지 국가로 귀속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고, 개선안 추진과정에서 국민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후자와 관련하여 문화재청이 실시한 설문조사 과정이 부실했다며,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는 ‘문화유산’을 제외한 채 ‘국가유산’만 넣은 설문조사를 진행해 “국가유산 명칭으로 유도했다”, “공론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 등 비판이 제기됐다고 보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당 기사에서는 문화재청이 2022년 3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학자들의 비판적 의견을 싣고 있다. 예를 들어, 정상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국가유산’ 용어는 반시대적 발상으로 “국민 참여를 이끌어야 할 풀뿌리 문화정책에 반(反)하는 용어로 한계가 있다고 비판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해당 기사는 이들 학자를 인용하여 이 용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해외사례가 드물다는 것 또한 지적한다.(「‘문화재→국가유산’ 변경 추진에 ‘세계유산 시대 역행’ 우려」, 『법보신문』 2022.04.12.) 이러한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국가유산’이라는 용어를 관철시킨 것은 – 문화산업의 핵심 요소로 부상한 – 문화재 혹은 문화유산이 국가의 자산이며, 결국 관리 주체가 국가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자 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사회구성원 전체가 만들어가는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문화유산으로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보임이 틀림없다. (이현경 외, 「문화재에서 문화유산으로」, 『문화정책논총』 33/3, 2019. 5쪽)
여기서 필자의 주의를 끈 것은 2022년 불교계 일부에서 - 조계종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다르게 - ‘국가유산’이라는 용어에 매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었으나 이후에는 이런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찾아보던 중 문화재청이 2023년 5월 1일 대한불교 조계종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사찰 65개소에 대해 문화재 관람료를 지원하기로 함에 따라 관련 사찰의 관람료가 폐지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3년 해인사 등 65개 사찰의 관람료 감면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업비 419억 원을 반영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일반 국민이 관람료 형식으로 직접 부담하는 비용은 없어지게 되었으나, 정부 예산이 투여된다는 점에서 조삼모사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물론 필자가 불교계의 ‘국가유산’ 체제/용어의 수용과 국가 예산이 투입된 사찰 관람료 보전 사이의 상관관계나 거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금의 중대한 문화유산 정책변화에 대하여 관련 정책으로부터 적지 않은 혜택을 받는 불교계의 발언권이 어떻게 담보 받을 수 있는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순례와 ‘다크 투어리즘’의 교차지점에 대해서: 천주교 해미순교성지를 사례로>, <한국의 현 종교지원정책과 문화자본주의>, <한국 불교계의 ‘마음치유’ 사업과 종교영역의 재편성>, <한국 신종교의 조직구조>, 〈현대사회 성물(聖物)의 유통방식에 대하여>, 공저로는 <한국사회와 종교학>,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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